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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란 한자 뜻 그대로 늙은 가게를 뜻한다.
그런데 늙은 가게는 늙은 사람과 좀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여전히 맛있고 인심도 변함없고 단골들도 함꼐 늙어가는, 윤기 있는 연륜 느낌이랄까?
 
을지로 노포 하면 식당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은 세운상가를 축으로 하는 오래된 골목의 모든 밥집, 철공소, 구멍가게, 조명가게들이 모두 노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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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를 찾아간 것은 요즘 ‘노포식당’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싶은 게 일차 목적이었지만, 사실은 그 동네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1970년대 세운상가 알바 세대였다. 가판에서 <플레이보이>와 <펜트하우스> 등을 팔았다.
가판 사장은 세운상가 건달 넘버 투 ‘히피 사장’이었다.
그는 세운상가 일대 누드 잡지 및 가짜 성인비디오(사서 틀면 일본에서 만든 유아용 만화영화가 나오기도 하는, 속았다는 걸 알아도 항의하지 못했던 게 대부분) 유통 ‘나와바리’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 밑에는 많은 행동파 똘마니들이 있었지만 나는 영업 현장 알바로 폭력과는 다소 거리를 둔, 평범한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간이 작은 나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히피 삼촌은 친구의 외삼촌이었는데, 친구로부터 내 가난한 형편을 전해 듣고는 ‘사내 새끼는 열 다섯 살이 되면 집을 나가는 게 효도’라는 심오한 말씀을 들려주며 가판 직원으로 채용해주었다.
방학 때만 일을 하는 조건이었고 월급은 ‘정규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챙겨주던 고마운 분이었다.
히피의 빨간책, 성인비디오 유통 영역은 그 누구도 기웃거릴 수 없었다.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노점상들에게 삥을 뜯어 집까지 산 양아치 삼촌들도 히피 가판에 삥을 뜯어가지는 못했다.
한번은 철부지 양아치 하나가 히피 가판 3호점 정규직에게 소주 한 잔 값을 빼앗아 갔다가 온몸이 밧줄로 돌돌 묶인 채 동대문경찰서에 배달되는 참사를 겪기도 했었다.
 
삼촌들의 영역은 명료했다. 곱슬머리 삼촌은 컴퓨터 박사이자 세운상가를 세계적(?)인 전자상가로 만든 주인공이었다.
도박장용 파친코,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점령한 오락기, 동네 오락실 벽돌깨기 기계 등 ‘곱슬 삼촌’이 만든 최첨단 오락기계들은 매일 수십 대씩 제작되어 전국에 팔려나갔다.
그때 세운상가는 전 층이 전자상가로 성시를 이루던 진짜 전자제품의 메카였다.
그리고 늘 정장 차림이었던 ‘말쑥 삼촌’은 평소에는 극장식 맥주홀의 진상 고객을 정리해주는 대가로 주류 납품을 독점했었다.
그러다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정치깡패로 변신, 김두한 같은 복장에 수십 명의 꼬붕들을 이끌고 세운상가에 나타나기도 했었다.
유세 일정에 없는 상가에 말쑥 삼촌이 나타난 이유는 그때도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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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운상가와 을지로 일대는 대단했었다.
세운상가뿐 아니라 을지로 쪽 대림상가, 충무로 쪽 풍전상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상가 양쪽으로 개미굴처럼 이어져 있던 골목에는 기름때를 온몸에 묻히고 사는 ‘공돌이들’로 가득했다.
직원도 공돌이, 사장도 공돌이였던 시절이다.
또 당시 풍경의 특징 중 하나는 눈에 보이는 남자 열 명 가운데 아홉은 젊은이라는 점이었다. 행색이 남루할 뿐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자신만만했고 생기 발랄했다.
월급 500원 차이에 직장을 옮기는 지조 없는 인간들이었지만 친구가 건달에게 얻어터지면 웃통을 벗고 육교까지 올라와 삼촌들에게 덤비다 피투성이가 되어 내려가는 의리의 사나이들이기도 했다.
깡다구를 인정받아 삼촌 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금세 목돈을 챙기거나 ‘행님’ 도움을 받아 골목 한 구석 ‘빽판 가게’ 사장님이 되기도 했다.
을지로 뒷골목에는 철공소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공구상, 플라스틱, 조명, 전기, 화공약품 등 산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가 모여 서로에게 납품하고 수금하며 살았다.
마음만 먹으면 수소폭탄,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없는 게 없는 때였다. 

충무로 명보극장 앞 뒷골목에는 종이 파는 지업사와 인쇄소가 24시간 돌아가고 있었다.
소규모 공장들이었지만 그래도 사업은 잘 되는 것 같이 보였다.
직원들도 많았다.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장님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회사가 망하기 전에는 ‘식구들’을 함부로 자르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사람이 넘쳐나니 식당도 많았다.
이곳엔 백반집이 제일 많았고 곱창집이 그 다음으로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방 수도 엄청났다.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면 쇳가루 투성이 작업복 차림으로 다방에 갈 수 없었던 그들은 늘 커피 배달을 시켰다.
그때는 우래옥 냉면값도 굉장히 싸 우래옥 사장(사장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몰랐지만)이나 세운상가 노점 사장이나 사는 형편이 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평소에는 거의 팬티 바람에 쇳밥이나 인쇄밥 먹고 살던 사람들도 월급날이면 목욕하고 구두 신고 국도극장,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서울극장, 피카디리, 단성사에 몰려가 영화 한 편 보고 청계천변 술집에 모여 나훈아의 ‘고향역’을 부르며 청춘의 뜨거운 심장을 식히곤 했다.
세운상가 알바 생활을 고2 겨울방학 때 끝낸 나는 군대에 다녀 온 뒤 가끔 육교를 찾아갔다. 이제 후배들에게 밀려 다방이나 전전하며 사는 삼촌들을 모시고 천엽에 두꺼비소주를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직장에 들어간 뒤에는 아주 가끔이었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갔었다.
절박했던 내게 꼭 필요한 돈을 준, 당시로서는 유일한 은인이 바로 히피 삼촌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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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그 세운상가와 을지로 뒷골목을 찾아가는 심정은 다소 복잡했고 촉촉했다.
어떻게 오랜 세월 동안 골목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않은 채 그 골목 풍경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아직까지 만연한 궁서체 간판들의 글씨는 도대체 누가 써주는 것일까.
닷새를 근처 레지던스에 묵으며 을지로 골목을 돌아다닌 결과 ‘답이 없다’가 답이었다.
개발을 취미로 알던 그 많은 정치가, 기업인들도 을지로 골목만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서 너 평 공장에 대여섯 명이 일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사장 혼자 북과 장구를 동시에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다. 두 집 건너 하나씩 있던 포장마차는 완전히 사라졌고 그 많던 식당들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노포 식당들은 주로 1980년대에 문을 연 집들이다. 물론 우래옥 등 북한에서 내려와 식당을 차린 경우는 그 이전인 1950년~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골목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옛날 북적북적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니 ‘도대체 이 동네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렇게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을까’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을지로 뒷골목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 골목이 자신을, 가족을 먹여 살려주기 때문이다.
규모는 작고 다소 너저분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작은 공장, 가게 사장님들은 나름 ‘공돌이’로 시작해 열심히 돈을 모아 독립하고 가게를 키워 일가를 일군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을지로 뒷골목이 이제 전문성을 지닌 소규모 공장으로 나름의 수요를 만들어내며 예전보다 오히려 탄탄한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렇게 ‘버티며 조성한 뒷골목’은 이제 문화유산급 존재가 되어 골목 여행가들과 노포에 관심 있는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딱히 여행이랄 것도 없는 을지로 뒷골목 기행은 오랜 시간 남아있는 서울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골목을 관찰하노라면 현대화된 도심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사람 하나 다니는 것도 만만치 않는 좁은 길, 출구가 없을 것 같은 불길함, 독특한 간판, 중세 길드를 연상케 하는 수공업 현장 등을 목격할 수 있다.
때로는 먼지 투성이 공장 문턱에 앉아 시뻘건 짬뽕 국물을 들이키고 있는 사장겸 공장장겸 직원인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을지로 여행에서 주의할 점은 ‘사진 막 찍기’이다.
사전 양해가 예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설득해도 그들은 사진 찍히기를 거부한다. 

▷을지로 오래된 이야기와 함께하는 해설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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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골목 투어는 혼자 하는 게 정서적으로는 제일 좋다. 몰려 다니며 수다 떨기에 그 골목에는 ‘오래되어 더욱 새로운 것들’이 너무도 많을뿐더러 사생활이 노출된 채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가게 하나하나가 역사의 산물이지만 그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해줄 사람도 없다. 중구청은 을지로 일대를 특화거리로 지정, 전문 해설사가 함께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랜 세월 골목골목에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와 미래를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프로그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최소 4인의 참가자를 만들어 전화로 신청하면 되고 비용은 무료이다.
한국어 운영 시간은 매일 오후 3시로 을지로3가역 3번 출구 지하광장에서 만나 2km의 거리를 약 90분 동안 여행하게 된다. 8월 혹서기, 12월~2월 혹한기, 추석 연휴는 휴무이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이용은 불가하다. 예약·문의 02-3396-5085 

▷세운상가, 도시 재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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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타워에서 촬영한 2008년 세운상가 일대의 모습. ①번부터 세운전자상가, 청계상가, 삼풍상가, 진양상가

 
 
세운상가는 세상의 기운이 이곳에 모였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세운상가 건설을 밀어붙인 1960년대 서울시장 김현옥이 지은 이름이다.
통칭 세운상가로 불리는 이 일대의 주상복합건축물들은 오세훈 시장 때 헐린 종묘 공원 바로 앞 ‘현대상가’를 필두로 아세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상가, 신성상가, 진양상가 등의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한국의 현대 건축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축가 김수근, 윤승중 등은 남산 북녘에서 종묘 앞까지 이어지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프로젝트였던 이 건축을 통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해보려 했다.
하지만 건축을 주도한 기업들에 의해 그 꿈들은 미완으로 남겨졌고 훗날 세운상가는 철거, 이전, 뉴타운, 재개발의 대명사가 되곤 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세운상가 일대를 종합적으로 정리할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하고, 소유권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금씩 개선되야 하는 게 정답이었고 그렇게 세운상가의 기운은 흘러가고 있는 듯 보인다. 

최근 서울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준비, 곧 착공에 들어간다.
10월까지 종묘공원 앞에 3층까지 쉽게 오를 수 있는 경사 형태의 ‘다시세운광장’이 조성되고 있으며, 건물 양 옆쪽 3층 높이에 보행 데크를 마련했다.
또한 30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 문화공간, 전시실, 휴게실, 화장실 등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세운상가는 현재 월세 20만원 미만의 공간이 꽤 많이 나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울시와 상가 주인 사이에 맺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상생 협약’을 통해 계약갱신일로부터 5년 동안은 임대료 상승폭을 9% 이하로 한다는 협약도 맺었다.
일 년 뒤에는 서울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디자인의 결과물을 세운상가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IT 인력이 이곳에 입주하고, 관련 부품 회사들이 전시장을 만들고 있다.
곧 다가올 미래를 보고 이곳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가게를 알아보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도 눈에 띈다. 재생된 세운상가의 아름다운 미래를 기대해 본다. 
 

대를 잇는 골목 안 식당들 

▶을지로 노포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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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집 

고기 빛깔과 맛에 감탄하며 한참 먹고 있는 데 사장님이 물어본다.
“오늘 고기 어때요? 마블링이 좀 적어서 어떨지 모르겠네.” “마블링이 없으면 좋죠.” “그게 혈관에 쌓이는 거라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맛은….” 통일집은 암소등심 딱 한 가지 고기만 파는 집이다.
 
마블링이 몸에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그게 있어야 고소한 냄새가 배는 것도 사실이니 그날그날 고기에 대한 손님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이 집의 키워드는 등심, 숯불, 드럼통, 노상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거의 노상 분위기인 실내와 초입 골목에 드럼통을 놓고 구워먹는 등심의 때깔과 맛이 삼삼하다.
마무리는 꼭 된장찌개로 한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 6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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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갑산 

이러다 대한민국의 모든 식당이 맛집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노포식당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름 좀 있다 싶으면 모두 유명 프로그램 출연 사진이 등장한다. 산수갑산도 마찬가지. 점
심 피크타임이 지나서 갔는데도 두세 팀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대표 메뉴는 순대국밥과 순대.
둘이서 순대정식을 시켰는데, 맛과 양에서 부족함은 없었으나 순대국 국물만 나와 조금 섭섭했다. 역시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고 정식 순대국, 그리고 순대 한 접시를 시키는 게 진리인 듯.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하건만, 친절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보여 더욱 정이 가는 집이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20길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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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식당 

칼칼할 것 같지만 부드러운 생태탕과 오징어볶음으로 손님 줄 세우는 집이다.
이 집에 들어가면 그 옛날 인심 좋았던 을지로 뒷골목이 생각난다. 주방에 아줌마 세 명이 있고 홀에는 두 사람의 직원이 쟁반을 나른다.
배달을 다니는 또 한 사람의 남자 직원까지 합해서 테이블 열 개도 되지 않는 이 집에서 먹고 사는 사람이 대여섯 명에 이른다.
둘이 가든 셋이 가든 주문은 두 가지를 하는 게 정답이다. 생태탕과 오징어볶음이다.
어쩐지 한 잔 하지 않으면 죄짓는 느낌이 든다. 낮술이 댕기지만 기다리는 손님 생각으로 눈치껏 마무리 해주는 게 의리. 

서울시 중구 을지로15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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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장 

1948년에 시작한 화상 중국집이다. 보다 중국집스러운 맛을 느끼고 싶다면 짜장은 간짜장으로, 짬뽕은 매운송이짬뽕을 먹는 게 좋다.
물론 입맛에 따라 담백한 그냥 짜장,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송이 등 건강식 재료와 굴 등 계절 식재를 즐겨 사용한 요리도 이 집에 손님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겨울철이면 굴짬뽕이 미친듯이 팔리는데, 서울에서 굴짬뽕 맛집으로 순위권 안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낮술족들도 많이 몰리는 편. 특별한 요리를 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식사 메뉴 자체가 훌륭한 편이라 반주로만 즐겨도 손색없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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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집 

1957년에 안성에 문을 연 후 을지로로 진출한 갈비와 한우육개장 맛집이다.
사장님이 홀에서 초벌구이를 해서 테이블에 갖다 주는데 태우지 않아 맛있고 냄새도 나지 않아 깔끔한 식탁을 즐길 수 있다.
이제 노인이 된 여사장님은 지금도 창가에 앉아 열심히 갈비를 굽고 있고, 가게를 물려받은 아들은 홀을 담당하고 있다.
대를 잇는 모습이 정겹기도,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이 집에 가면 꼭 먹어줘야 하는 메뉴 두 가지도 잊지 말자.
갈비탕과 육칼이 그것. 갈비탕에는 두툼한 고기가 듬뿍 들어있고 당면도 많아 그거 한 그릇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육칼은 한우 육개장과 수타면의 조합이다. 생각만해도 침을 삼키는 메뉴들이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15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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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옥 

청계천변에 있는 콩비지집이다. 콩비지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베스트 메뉴.
이 집은 콩비지와 김치콩비지와 콩국수 세 가지 뿐이다.
이제 콩국수 계절은 끝났으니 콩과 김치 두 가지만 남았다.
1958년에 문을 연 이 집이 청계천변 노포로 남은 결정적 이유는 순수한 맛 때문이다.
비지만 먹으면 천하의 비지일 뿐이다. 그래서 양념장을 넣기도 하는데, 살짝 간을 한 양념 콩비지에 조밥을 섞어 한 입 뜨면 뱃속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다.
거기에 밑반찬으로 나오는 김치 국물 한 숟가락 넘기면 완벽!
비지 내리는 날이 따로 있으니 처음 갔을 때 확인해 다음에 갈 땐 그날을 택일하면 더 신선한 비지를 즐길 수 있다.
천 원을 더 내면 양이 엄청 많아진다. 서울시 중구 청계천로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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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동부산숯불갈비 

이곳은 오래 전 유난히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들락거린다는 소문을 듣고 갔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저녁 혼술을 하러 갔는데, 이제 일본인 모습은 거의 볼 수 없고 중국인 여행자와 한국사람들이 테이블을 꽉 채우고 있었다.
고전적, 서민적 양념갈비의 생명은 달큰한 양념맛.
불판에 올리면 홀 직원이 타지 않도록 고기를 몇 번 뒤집어 주지만 그 뒤로는 손님이 알아서 관리하며 먹어야 한다.
혼자서 2인분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맛이다. 또 하나의 인기 메뉴는 갈비탕.
맑은 국에 송송파, 당면의 조화가 신비롭다.
냉면 맛도 건너편 냉면 고수집들에 비해 밀리지 않는 수준이지만 그냥 패스! 1970년에 문을 열었다. 서울시 중구 마른내로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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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집 

점심 시간이 지나 이 집에 들어가면 반주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는 혼밥족들과 함께, 가운데 테이블에 떡 하니 올라와 있는 삶은 닭고기의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노포스러운 장면이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닭곰탕, 닭칼국수, 닭도리탕, 닭떡국이다.
중닭을 황기, 엄나무와 함께 가마솥에 고아 각각의 메뉴에 찢어 넣어준다.
한약재가 들어갔지만 맛은 맑고 순수한 편이다. 필자는 닭곰탕을 먹었는데, 바닥까지 싹 비운 뒤에도 자꾸 더 먹고 싶어서 참느라 고생했다.
닭떡국 주문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다음 방문 메뉴는 닭떡국 예약이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20길 10-13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서울시청, 중구청] 

 

이영근 여행작가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9.21기사입력 201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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