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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부터 고구마튀김, 고구마 라테까지 감자와 달리 고구마는 가벼운 간식으로 먹는다. 이런 고구마가 사실은 아시아를 굶주림에서 구했던 음식이다. 그 과정이 한편으로 치열하고 눈물겹다. 

고구마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가 아이티 섬에서 발견한 작물이다.
귀국길에 유럽에 전했지만 널리 퍼지지 못했다.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작물이었기에 재배에 실패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은 유럽에서 고구마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자 종자를 인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퍼트렸다. 동남아에 퍼진 고구마는 1593년 중국 푸젠성에 전해졌고, 일본에는 1597년 오키나와를 거쳐 1753년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국에 퍼졌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1763년 부산 동래에 고구마를 심으면서 재배를 시작했다. 단순하게 연도별로 나열했지만 한·중·일 세 나라가 고구마 종자를 얻는 과정과 전파하려는 노력이 각별했다. 

고구마는 16세기 동남아에서 식민지 확장 경쟁을 벌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널리 퍼트렸다.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은 스페인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1565년 필리핀에 고구마를 심었다. 그리고 중국은 필리핀을 통해 고구마 종자를 들여왔는데 고려 말, 문익점이 붓 뚜껑에 목화씨를 숨겨온 것만큼이나 과정이 극적이다. 

16세기 말, 명나라 때 남쪽 푸젠성에 천쩐롱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중산층 집안이라 벼슬길 나가기가 쉽지 않았기에 공부 대신 장사를 배웠다.
당시 푸젠성은 중국인의 해외 진출 관문이었다. 그런 만큼 천쩐롱 역시 해외무역, 필리핀 무역에 종사했다. 현지에서 고구마를 처음 본 천쩐롱은 고향으로 가져가면 돈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식량난으로 허덕이는 사람에게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고구마를 심어 팔면 큰돈을 벌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필리핀의 스페인 관리는 고구마 종자의 국외 반출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지금의 육종 산업처럼 옛날에도 종자는 그 자체가 소중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관리의 눈을 피하려고 천쩐롱이 꾀를 냈다. 고구마 줄기를 밧줄처럼 엮고 그 사이에 고구마를 숨겼다.
얼핏 보기에는 고구마 줄기로 엮은 밧줄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렇게 필리핀 루손섬을 떠난 천쩐롱은 7일간의 항해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고구마를 심었다.
이때가 1593년이다. 고구마 종자를 가져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푸젠성에 큰 기근이 들었다. 

당시 성장에 해당하는 푸젠 순무 진쉐정(金學曾)이 천쩐롱 집안에 기근에도 잘 자라는 종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종자를 구해 퍼트렸다.
하지만 아열대 작물이었던 고구마는 이 무렵까지만 해도 남쪽 지방에서만 재배했다. 그러다 18세기 중반, 베이징을 비롯해 산동성과 허난성 등 중북부 지방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가뭄에 잘 자라는 고구마를 심고 새로운 재배법을 연구해 구황식량으로 삼았다. 중국에 고구마가 퍼진 배경이다. 

고구마는 이렇게 구황작물로 퍼졌는데 고구마 덕분에 중국 인구가 증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족한 식량해결에 고구마가 기여했기 때문이다.
1587년 푸젠성 인구는 173만 명이었는데 200년 후인 1834년에는 1500만 명으로 10배가 늘었다. 식량난 해결이 인구증가로 이어진 것인데 고구마가 큰 역할을 했다. 

일본어로는 고구마가 사쓰마 이모(さつま いも)다. 사쓰마는 남부 규슈 지방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가고시마 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모는 토란이나 마 종류의 식물이니 고구마가 사쓰마를 통해 보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는 고구마가 중국을 거쳐 오키나와를 통해 전해졌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병합되기 전인 류큐(琉球) 왕국 시절 명나라에 갔던 조공선 책임자가 돌아오는 길에 푸젠성에서 고구마 종자를 얻어다 심었다.
일본 본토인 사쓰마에서는 1705년에 처음 고구마를 심었다. 사쓰마 지역 어부가 오키나와인 류큐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외국의 토란이라는 뜻으로 가라이모(からいも)라고 부르며 재배를 시작했다. 

우리에게 별 의미도 없는 일본 고구마 전래과정을 소개하는 이유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당시 류큐 왕국인 오키나와를 포함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고구마가 들어왔다. 하지만 처음 전해진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퍼지지 않았다. 당시 일본이 봉건시대였기 때문이다.
영주가 백성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양식인 동시에 전쟁이 났을 때 중요한 군량으로 쓸 수 있는 고구마가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사쓰마 이모라는 이름의 어원이 된 사쓰마 번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마는 사쓰마 지역 이외에는 반출이 금지된 작물이었다. 그런데 1711년 전국의 절을 순례하던 아사미기초로라는 승려가 잠시 머물던 농부의 집에서 고구마를 알게 됐다.
번외 반출금지령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나라의 법을 어기는 것쯤은 두렵지 않다”며 목숨을 걸고 고구마를 숨겨 고향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1732년 일본에 대기근이 들었다. 이때 다른 곳에서는 수천 명이 굶어죽었지만 고구마를 심은 곳에서는 아사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고구마의 유용성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
농민들이 보리를 수확한 후 그 자리에 고구마를 심으면서 식량사정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옛날 일본에는 기근이 들었을 때 가난한 농촌에서 먹는 입을 줄이기 위해 부모가 갓난아이를 죽이는 마비키(間引き)라는 악습이 있었는데 고구마 덕분에 이런 악습이 사라졌다.
그러자 쇼군이 사쓰마에서 모종을 가져다 지금의 도쿄에 심으면서 일본 전역으로 고구마가 퍼졌다. 일본 역시 근세 후기 고구마 주요 재배지역의 인구증가율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고구마를 재배한 시기는 조선 영조 때인 1763년 이후다.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구입해 부산으로 가져온 것이 고구마 재배의 시작이다. 조엄이 쓴 해사일기(海槎日記)에 고구마 전래과정이 상세히 나오는데 요약하면 “맛은 밤과 비슷하다. 날로도 먹고 구워도 먹으며 삶아도 먹고 곡식과 함께 죽을 끓여도 되고 과자인 정과(正果)와 떡도 만들 수 있고 밥으로도 먹을 수 있어 구황작물로 좋다”고 했다.
이어 “육지에도 고구마가 있지만 대마도에 특히 많다. 작년 초 고구마를 보고 부산진으로 보냈는데 돌아가는 길에 또 구해서 동래에 심을 예정이다. 듣자니 제주도 땅이 대마도와 비슷해 옮겨 심으면 풍성하게 열릴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해사일기 1764년 6월 18일자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고구마 도입 시기를 1763년으로 보는 것도 이 책에 “작년에 고구마를 부산으로 보냈다”는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렇게 들어온 고구마는 조선 후기 뜻있는 실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전국적으로 재배가 가능하게 됐다. 그중에는 벼슬도 마다하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혹은 학문적인 연구에 힘을 쓴 여러 사람의 노력을 거치면서 고구마 재배기술이 전국으로 보급됐다.
별것 아닌 고구마가 이렇게 동북아시아의 식량난 해결과 인구 증가에 크게 한몫을 했다. 덧붙여 흥미로운 것은 한·중·일 삼국의 고구마 어원이다. 고구마는 토종 순수 우리말 같지만 뿌리는 일본어다. 

빵이 일본을 거쳐 전해진 포르투갈 말인 것과 비슷하다. 고구마 전래과정이 적힌 해사일기에 이름의 유래도 나온다.
고구마를 대마도에서는 감저(甘藷) 혹은 효자마(孝子麻)라고 부르는데 왜 발음으로는 고귀위마(高貴爲麻)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효자마의 일본 발음 고우시마(こうしま)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고구마의 어원을 대마도에서 별명으로 부른 효자마, 즉 고우시마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말로 고구마는 사쓰마 이모인데 왜 대마도에서는 엉뚱하게 효자마(孝子麻), 고우시마라고 불렀을까? 기근이 들었을 때 효자가 고구마를 심어 늙은 부모를 봉양했기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중국어로 고구마를 홍수(紅薯)라고 하지만 옛 이름은 진수(金薯)였다. 푸젠성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한 푸젠성 순무 진쉐정(金學曾), 즉 김학증의 이름을 따서 진수가 됐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사쓰마 이모 역시 사쓰마의 토란 같은 작물이 대기근 때 일본을 굶주림에서 구했기에 생긴 이름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구마 이름에는 모두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한 사연이 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6.10.12기사입력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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