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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 년간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전복을 꿈꿨던 `화단의 여전사` 이불(48)의 화업을 중간점검하는 회고전이 열린다. 무대는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에 위치한 도쿄타워 53층 모리미술관. 한국 작가로는 처음 초대받은 회고전일뿐더러 여성 작가로는 프랑스 아네트 메사제(2008년), 일본 구사마 야요이(2003년)에 이어 세 번째다. 2009년에는 중국 유명 설치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전시를 열었다. 거장들의 전시 무대인 모리미술관에서 40대 나이에 회고전을 연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존재감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난조 후미오 모리미술관 관장은 개막 전날인 3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세계 미술계에서 아주 중요한 작가인 이불 작품을 모리미술관에서 한꺼번에 전시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가타오카 마미 모리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이불은 지난 20여 년간 인간의 불완전한 존재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을 던졌던 작가"라고 평했다. 전시 제목은 다소 시(詩)적이다.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From me, Belongs to You Only).` 작가는 "20여 년간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다 보면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3년 전 연인으로부터 선물과 함께 받은 편지에서 차용한 제목"이라고 말했다.

회고전에 출품한 작품은 대형 조각과 설치물 40여 점이다. 서울 성북동 작업실을 본떠 만든 스튜디오 공간에는 드로잉 150점과 다양한 소재로 만든 개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설치물 대부분은 세계 각처 소장자에게서 공수한 작품들이다. 신작은 한두 점뿐이지만 국내에서 보지 못한 작품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전시장은 크게 연대기적으로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1980~90년대 퍼포먼스 때 입었던 괴물 복장을 본떠 만든 조각들로 그로테스크하다. 1990년 김포공항, 일본 나리타공항과 도쿄 등을 활보하며 12일간 벌였던 기괴한 퍼포먼스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MoMA에 짧게 전시됐던 생선 `화엄`은 큼지막한 영상 사진으로 선보인다. 두 번째 섹션은 2001년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출품됐던 비닐과 구슬로 제작한 웨딩드레스 `환영(Apparition)`이 걸려 있고, 카프카 소설 `굶주린 예술가`에서 영감을 얻은 조각상도 놓여 있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1998년 서울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사이보그 시리즈와 거울 속에 건축 형상이 무한히 반복되는 `인피니티(infinity)` 시리즈가 전시장을 꽉 채운다.

전시의 압권은 마지막 전시실이다. 통유리벽으로 도쿄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시실에는 깨진 유리와 구슬로 조각한 설치물이 놓여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개의 형상인데, 먹었던 것을 토해내는 장면이다. 제목은 `비밀의 공유자(The secret sharer)`. 바닥에는 개가 구토한 토사물을 표현한 듯 유리조각과 구슬이 즐비하다. 유리들이 서로 이중 반사하면서 이미지와 개념을 확장시킨다.

"15년간 키우던 개가 2년 전 죽었어요. 개가 늙으면 어느 순간 자기가 먹는 것을 토해요. 그걸 보면서 착잡하고 애틋한 기분이 들었죠. 30ㆍ40대 내 젊은 시절을 같이 보낸 그 개를 냉정하면서 따뜻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개는 흡사 이전 작품을 게워내고 새로운 것을 꿈꾸는 예술가와 닮았다.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토하는 개의 형상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는 한때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홍익대 조소과 시절에도 그는 늘 튀는 학생이었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 때문인지 그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젊은 날의 뜨거운 열기가 식은 그 자리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허심탄회하게 말한다. 예전에는 야심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오늘의 이불을 키운 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였다. 부모는 반정부 인사로 회사에 취직할 수 없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는 집에서 구슬을 끼우는 저임금 노동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구슬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작품을 한자리에 놓고 보니 예전에 몰랐던 것이 보이네요. 지난 세월 동안 한결같이 물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접근이었어요. 예술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출구가 없고, 계속 절망이 반복된다 해도 실패와 좌절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저항이자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가 반드시 행복해야 하고 비전을 가져야 할까 묻게 돼요."
전시는 5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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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휘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2.02.10기사입력 201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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