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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4월 어느 날. 다시 심한 소화불량 증세가 왔다. 20년간 펀드매니저로 생활하면서 누구보다 건강을 잘 유지했던 그였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건강도 철저하게 관리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펀드 수익률이 급락하고, 이어 지수가 회복되며 이어진 펀드 환매 행렬이 그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다. 여기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 운용을 담당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도 한몫했다. 결국 2009년 하반기부터 2010년 그는 몸무게가 10㎏이나 빠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왜 살이 빠졌냐고 물으면 일부러 뺐다고 대답했다. 가까운 지인들조차 그 말을 믿었다. 평소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도 3921억원이 빠져나갔다. 1027억원이 새로 들어왔지만 결과적으로 2894억원의 자금이 순유출된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코스피가 대폭 하락하면서 50% 넘게 급락했던 수익률이 많이 회복됐지만 한 번 공포에 빠져 펀드에 대한 신뢰를 놓아버린 투자자들의 마음을 다시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그가 맡고 있는 운용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모든 국내 운용사들이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점은 그가 운용하는 펀드의 자금 규모가 다른 곳에 비해 크고 그가 관리하는 펀드가 한국을 대표하는 펀드라는 사실이다.

`3억만들기 적립식 시리즈,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 그리고 인사이트 펀드….`

국내 주식투자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법한 이 펀드를 만든 주인공, 바로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얘기다. 1997년 박현주 회장을 도와 미래에셋을 출범시킨 후 그에게는 몇 번의 시련이 있었다. 2001년 9ㆍ11테러와 신용카드 사태 때도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이어졌던 대량 환매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코스피 수익률이 좋아지고 있는 데도 이어지는 환매 때문에 계속 주식을 팔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스트레스를 줬다. 공모펀드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환매 그 자체보다 더 송구한 일이었다. 박 회장과 그가 미래에셋을 창업한 뒤 10년 이상 불철주야 뛰면서 키워놓은 펀드 시장이 아닌가. 금융위기 초기였던 2008년 9월 50조원이 넘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국내외 주식형 펀드 자금은 2010년 30조원대로 주저앉더니 작년에는 22조원대로 줄었다. 그나마 채권형 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 부동산펀드를 비롯한 대체투자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총 운용자금은 60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자들이 코스피 2000선에서 많이 환매해 손해를 보지 않았고 일부 장기 적립식 투자자들은 수익을 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수하동 미래에셋 본사인 센터원 빌딩에서 구 부회장을 만났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는지 표정은 매우 밝았다. 평소의 강건한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강등 여파로 작년에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냈지만 새로운 변신으로 더 강해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강했다. "올해도 헤지펀드 출시와 미래에셋맵스와의 합병, 해외사업 확대 등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려운 시기를 맞아 투자자에게 더 많은 수익을 주고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그는 이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올해 투자전략을 묻는 질문에는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반복했다. 올해는 `소수게임`이 유효할 것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소수게임은 역발상 투자의 다른 말이다. `소수게임`은 미래에셋 출범 직후 박현주 회장이 거듭 강조했던 말이다. 구 부회장은 현금성 자산을 가급적 많이 확보해 놓고 지수가 빠졌을 때 저가 매수하기에 딱 좋은 시기가 올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금융위기 몸살을 겪은 미래에셋과 구 부회장에게 딱 맞는 격언이다. 고난 속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로 더 예리해진 그의 눈으로 올해 증시와 투자전략을 보았다.

 

구재상 부회장 '2012년 투자노트'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의 멘토이자 인생과 직장 선배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얼마 전 주요 일간지에 투자자에게 보내는 사과 편지를 썼다. 여기에는 구 부회장 마음도 담겼다. 저조한 수익률에 대한 송구함과 앞으로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정성은 미래에셋 창업 멤버이기도 했던 박 회장과 구 부회장을 묶고 있는 끈이다. 구 부회장은 1990년 박 회장과 처음 만났다. 20년 넘게 운용업계에서 동고동락한 셈이다. 남들은 미래에셋그룹 운용부문의 2인자라고 말하지만 박 회장과 그는 1인자와 2인자 관계 이상이다. 두 사람의 끈끈함과 은근함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위기는 두 사람의 끈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투자자에 대한 책임감과 운용전략의 지평도 넓혔다. 지난 9일 미래에셋 본사인 센터원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박 회장이 사과 편지에 미처 담지 못한 사연과 투자 이야기로 2시간 넘게 이어졌다. 구 부회장은 먼저 글로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을 전제로 몇 가지 투자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모두 약세장을 싫어합니다만 지수가 빠진 후에는 더 큰 기회가 옵니다. 다만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클수록 투자 원칙이 더 중요해집니다."

 

-투자원칙이라면.

▶경기는 순환하게 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2012년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의 한 해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럴 때는 소수게임이 필요하다. 지수가 일정 수준 밑으로 빠졌을 때 여러 번 분산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다. 다만 기대수익률은 낮춰야 한다. 저금리 저성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시중금리 대비 꾸준하게 2~3%포인트 초과수익을 올리는 것이 좋다. 올해도 변동성이 클 것이다. 시장이 요동치면 투자자들은 흥분한다. 흥분하면 투자에 성공하기 어렵다. 자신의 투자성향을 파악한 뒤 원칙을 정해야 한다.

 

-과거 어려운 시기엔 어떻게 했나.

▶한국 시장은 글로벌 위기 때마다 기업이익의 변동성과 외국인 수급에 따른 시장 부침이 컸다. 미국 9ㆍ11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9ㆍ11테러 때는 코스피가 480선까지 하락했다. 금융위기 때는 20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가 1000선 밑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운용사나 투자자들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고민한다. 하지만 위기가 지나면 기회가 온다. 9ㆍ11테러 6개월 후 코스피는 1000까지 도달하는 상승세를 보였다. 당시 큰 변동성으로 악화된 투자 심리 속에 `길게 보며 소수게임`을 한 결과 좋은 성과를 냈다. 금융위기 때는 투자자들이 절망할 수 있는 시점에서 한국 기업의 강화된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신뢰성을 보았다. 삼성전자와 LG화학, 현대모비스 등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주식 비중을 확대한 적이 있다. 어떤 날은 오전장에 외국인이 내놓은 주식 1조원어치를 매입하기도 했다. 이 판단으로 2009년 이후 상승장에서 덕을 봤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사고에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

 

 

-그럼 올해 기회와 위험 요인은.

▶풍부해진 유동성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업들은 많은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시중에 돈이 본격적으로 풀리면 의외로 시장이 좋을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가격 대비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좋아진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투자할 만한 대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회복이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편한 마음으로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적절한 투자 시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렇지만 불확실성이 큰 것만은 사실이다. 유럽 문제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미국처럼 양적 완화가 이뤄져야 위기가 해소될 수 있는데 정치적 문제로 당장 이것은 힘들어 보인다. 미국은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지만 복병이 있다. 재정긴축이다. 이 이슈가 부상하면 하반기에도 만만치 않은 시기가 될 수 있다. 이란의 핵 개발 문제로 불안해진 국제 유가도 잘 봐야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것을 얘기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역시 개별 투자에 대해선 대답을 회피했다. 펀드매니저와 개인투자자는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구 부회장도 대한민국 대표 펀드매니저가 되기 전엔 한 명의 투자자였다. 개인투자자 구재상의 통찰력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주식 운용을 처음 해봤던 1980년대 말 증권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왜 증권주 투자를 했냐고요? 간단하지요. 증권사 객장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봤던 것이지요. 미세한 변화에 주목하면 의외로 좋은 투자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또 투자하기 전에는 경제도 분석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막상 투자 시점에서는 문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 변수에만 집중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미래를 보는 안목도 중요합니다. 저는 투자할 때 현실 분석에 시간의 30%를 쓰고 70%는 미래 예측에 할애합니다. 결국 부가가치는 미래에 창출되니까요."

 

-금액별로 투자 방법이 달라야 하지 않나.

▶다를 것 없다. 다만 위험을 분산하는 비중이 조금 다를 수 있다. 여윳돈이 1억~5억원대라면 절반은 채권형펀드나 특판예금, 부동산펀드와 같은 안정형 상품에 넣어 두고 절반은 세 번 정도 나눠 지수 하락 시기에 맞춰 위험자산인 주식형 펀드에 넣으면 된다. 5억~10억원은 안정형 상품 비중을 60%로 늘리고 나머지 자산을 3~4번 나눠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물론 위험 분산을 위해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10억원이 넘으면 안정형 금융상품 비중을 더 늘리도록 한다. 고액 자산가라면 보수적으로 운용되는 헤지펀드를 찾아 보자.

 

-올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종목이나 금융상품은.

▶불확실한 시장에선 성장 스토리가 있는 종목의 주가가 더 오른다. 유럽 재정위기에도 BMW 등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좋은 실적을 올렸다. 미국 애플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LG화학, 현대중공업 등 한국 대표기업도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중국 소비 증가세를 생각하면 아모레퍼시픽이나 엘지생활건강도 스토리가 있는 기업에 속한다. 증시가 불안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식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 브라질 채권과 같은 해외채권이나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주는 부동산펀드와 국공채도 좋은 투자처다. 다만 회사채는 개인이 투자하기에는 정보 비대칭성과 유동성에 문제가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미래에셋의 대표 펀드인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는 어떤가.

▶금융위기 이후 환매 영향으로 단기 성과가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10년 누적수익률이 각각 792.14%와 950.93%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 236.45%와 265.76%를 압도적으로 초과하고 있다. 긴 시야에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투자자들에게 장기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주도록 노력하겠다.

투자자들이 봐야 할 지표는 무척 많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너무 많은 지수를 고려하다 보면 정작 투자할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구 회장은 요즘 무슨 지표를 보고 후배 펀드매니저들과 무슨 얘기를 할까.

"10년 전엔 선진국에 대한 수출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기에 OECD 경기선행지수가 중요했습니다. 지금은 신흥국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선진국이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그 위상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개별 기업 이익 추이를 더 집중적으로 봅니다. 거시경제가 불확실할 때 기업 이익을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기업 이익 관련 지표는 더 중요한 것이지요."

인터뷰를 끝내기에 앞서 이제 막 투자 세계에 첫발을 딛는 젊은이를 위한 충고 한마디를 요청했다. 대답은 "사물의 본질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라"는 게 요지였다. 투자의 길이 삶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자본시장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세상의 변화를 인지하는 능력입니다. 지금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정관념만으로 접근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 변화와 관련된 서적들을 읽어보고 그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과 인문서적도 접해 사고를 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위기 속에 숨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He is…
△1964년생 △1988년 연세대 상경대 경영학과 △1988년 동원증권 입사 △1996년 동원증권 압구정지점 지점장 △1998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운용담당 상무 △2000년 미래에셋투신운용 대표 △2002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 △2010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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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박원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2.01.27기사입력 201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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