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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가 파주출판도시에서 ‘타문화권의 문학 감상’을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섰다.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로,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불리는 그를 파주에서 만났다.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작가

스웨덴 한림원은 2008년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2)를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하면서 그 대상작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의 대표작이 너무 많고 화려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 납치됐다가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황금 물고기>의 라일라와 <홍수>에서 12일간 방황을 거친 프랑수아 베송이 그랬듯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은 세속적 가치와 제도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매 순간 모험을 시도하며 덜 문명화된 곳을 찾아간다는 점에서는 작가 자신도 비슷하다. 르 클레지오 역시 서구적 사유의 틀을 버리고 멕시코와 인디언 구역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세계를 추구했으니까.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로, 국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가 지난 9월 아시아 최대의 책 축제 ‘파주북소리’ 특별강연으로 한국을 찾았다. ‘마르셀 프루스트를 찾아서 : 문을 열기’라는 주제로 문학과 민족주의, 타문화와 타문학을 이해하는 사유방식에 대해 독자들과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 유럽소설의 결정체로 완성까지 13년이 걸린, 독서가들에게도 도전하기 힘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강연 주제로 삼은 것도 그 이유. 파주북소리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러 간다는 72세의 노작가는 아직도 눈빛 형형한 청년 그대로였다.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남긴 어록을 소개한다.

읽다 보면 작품을 무장해제시키는 열쇠가 있다


 


지난번에 한국을 찾았을때 문학에 대한 열띤 토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 기억에 따르면 약간 과격한 방식으로 ‘민족적 문학’ ‘국제적인 문학’으로 나누어 토론을 했던 것 같아요. 문학은 그 문학을 생산한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만을 뜻하지는 않아요.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윤동주, 황석영 같은 작가는 그들의 고민을 위해서만 글을 쓰지 않았죠. 번역된 책들은 타문화권에서도 읽힙니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인문학을 통한 소통이죠. 그 열쇠와 문은 문학 안에 다 들어있어요. 프루스트의 작품이 침투 불가능한 이유는 작가가 심어둔 장애물, 함정 같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역전에다 문장도 길고 묘사도 길죠. 줄 바뀜이나 장의 나뉨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저는 드디어 그의 작품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발견했습니다. 10~20번 계속 노력했지만 안되던 것이 하나의 결정적 문장을 발견하자 길이 열린 거죠. 매혹적이고 마술 같은 경험이었어요. 제 혈관이 작품 속의 수로 시스템과 연결되면서 제 심장이 작품에 펌프질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진실의 전율로 몸은 떨렸고, 소설 속 장치들은 현실로 확장됐죠. 나를 침범하고, 고립시켰지만 마지막엔 알 수 없는 감미로운 기쁨을 느끼게 됐어요. 실제 삶의 참담함은 잊을 수 있었죠. 내가 사소하고 별볼일 없다는 사실까지도요.

문학은 타자를 이해하게 하는 가장 큰 가능성

의도적으로 책 속에 적대적인 요소를 첨가하는 경우도 있어요. 동물을 죽이고 술을 많이 마시는 장면을 많이 썼던 헤밍웨이처럼요. 샐린저나 헤밍웨이를 읽을 때는 작가는 잊고 작품 속으로 푹 빠져들어보세요. 작품이 가진 이국적인 세계에 몰입하면 더욱 좋습니다. 열쇠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사실은 비밀번호가 미끼일수도 있어요. 단 하나의 비결이나 열쇠는 없어요. 책을 읽다 보면 쉽게 피로해하고 쉽게 지쳐 하는데, 그러한 경우 흐름에 이끌리도록 놔두세요. 저항하지 말고 그냥 따라가서, 스스로가 길을 잃도록(그때 문지방을 넘었다는 것을 깨닫죠) 따라가세요.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도덕적 성찰과도 통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을 중요치 않게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거부하고 타인과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거부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요. 그리고 보편적인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명목 하에 약한 시민들이 살고 있는 국가에 가서 폭탄을 던지고 생활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소수자들은 결과적으로 더 극단적이고, 불안해지고, 범죄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타문화·타문학에 대한 문을 더욱 크게 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르 클레지오와 한국 독자들과의 대담


 


당신은 인터뷰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전에 비해 인터뷰에 많이 응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에서 많이 하고 있는 것뿐이다(웃음). 말은 오해를 낳는다. 작가는 무엇보다 글로써 말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 어렵게 느껴진다. 하이쿠의 경우 길이가 정말 짧고, 한국 역시 손바닥에 쓴 단편시 등 아주 짧은 시들이 있다. 소설의 경우 길이가 길기 때문에 독자들이 적응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채식주의자> <붉은 닻>의 작가 한강의 경우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한 것 같다. 좀 더 내밀한 면이 있다. 폭력적이라기보다는 내면의 성찰이 강하다. 한국문학은 개방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세계를 구가한다. 자연스럽게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승우 작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을 정말 좋아한다. 어떻게 읽어도 고갈되지 않는 무궁무진한 작품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사실적이고 자유와 다양성이 있는 것 같다.

고은, 황석영 등 한국작가들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노벨상은 스웨덴어와 영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물론 정말 명예롭고, 독립성을 확보한 심사의원들이 상을 수여한다. 황석영은 충분히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표현이 강렬하다. <황금물고기>에 대한 평은 그가 최고였다.

프루스트를 좋아하는 평범한 주부다. 문학은 왜 필요한가?중국 작가 ‘유순’은 글을 쓰는 이유를 ‘아름다운 삶은 너무 짧기 때문에’라고 밝혔다. 때론 참담한 현실도 아름다울 수 있다. 문학은 그런 감동을 가져다 준다. 실제 삶을 변형해 자전적인 삶을 표현한 것이 바로 내 아버지의 삶을 표현한 <아프리카인>이었다. 삶이나 생각에 반향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문학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만나서 영광이다. 난 문예창작 전공자다. 당신을 보기 위해 수업을 빼먹고 왔다. 문학이 현실을 구원할 수 있을까? 당원증을 가진 작가들이 참여문학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오스카 와일드는 “문학은 완벽하지만 무용지물이다”라고 한 바 있다. 19세기는 아니지만 우린 여전히 불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다. 진실이 여러 개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없다. 문학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한강 작가가 다루는 소통의 어려움이나 이승우 작가의 장애인 사회부적응 등 소설이 현실반영에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존 스타인벡이나 조이스 시대에는 혁명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었지만 이제 더 이상 ‘혁명’을 통해 해결할 수는 없다. 문학은 좀 더 깊이 있는 진실을 추구한다. 현재의 작가들은 또 다른 방식, 예를 들면 스탕달 시대에는 없었던 작품 속 여성의 위치를 통해 진실을 추구할 수 있다.

문학의 매력은 뭘까? 음악을 들을 때 전율이 이는 것처럼 여러 감각이 종합적으로 움직여 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문학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처럼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감동은 달라진다. 이것이 문학의 매력이다.

 

박찬은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2.10.11기사입력 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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