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우한 가정사와 천재성 그리고 요절.` 그는 스타 작가로서 갖춰야 할 모든 요건을 갖췄다.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시련을 겪었고 그 역시 결혼에 실패했으며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여기에 `양념`으로 나치의 탄압이 있었으며 미모의 여성 작가라는 점도 그의 이름에 전설적인 기운을 더한다.

바로 독일 출생의 유대인 미국 작가 에바 헤세(1939~1970)다.

미술학도들에게 전설적인 존재지만 국내 대중에게는 낯선 그의 전시가 국내에서 두 번째로 열린다. 2004년 첫 전시를 열었던 국제갤러리는 신관 1층에서 에바 헤세의 두 번째 전시를 마련했다. 8년 전 전시가 작가의 1960년대 중반 작업을 대거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는 그의 짧은 화업(畵業) 10년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전시 성격을 띤다.

갤러리 1층에는 회화 20점이 걸려 있다. 그가 예일대 졸업 직후 뉴욕으로 건너가 작업했던 1960년 초기작들이다. 작가는 그해 무려 유화 48점을 그렸는데 이 가운데 20점이 이번에 소개된다. 4호부터 100호까지 크기는 다양하다. 그는 주로 인물과 풍경을 그렸는데 경계가 흐릿하다. `윌렘 드 쿠닝` 등 당시 미국 화단을 주름잡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짙다. 작품 속 인물은 마치 유령처럼 모호한 형태를 띤다. 눈은 흐릿하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흐느적거리는 인물에서 내면의 혼돈과 고통을 엿볼 수 있다.

초기 페인팅 작업에 주력하던 그는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조각에 매진했다. 갤러리 2층에 전시된 작품은 그가 화가보다 조각가로서 더 유명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작가는 생전에 "페인팅은 어디서 끝나고 드로잉은 어디서 시작하는가. 내 많은 조각들은 페인팅이라 부를 수 있다"며 미술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했다.

작가는 플라스틱, 섬유유리, 라텍스를 비롯한 공업용 재료를 미술 소재로 적극 끌어들였다. 당시 이 같은 재료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재료들이었다. 이어 미니멀리즘의 딱딱하고 엄격한 형태에 반기를 들고 이른바 `부드러운 조각`이라는 작업 세계를 선보였다.

조각품 `인사이드`(1967년)는 크기가 다른 회색 사각통 두 개를 여러 재료로 섞어 만든 작품이다. 언뜻 보면 판에 박힌 단색조의 모노크롬 작업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딴판이다. 복잡하게 와이어로 얽힌 구조물들이 들어앉아 있고 보자기처럼 꽁꽁 묶인 타원형의 오브제가 놓여 있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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