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책장 정리를 하는데 문득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이 눈에 잡힌다. 울컥 당신이 그리워진다. 조금 더 살피니 황순원 단편집도 보인다. 윤초시네 증손녀, 파리한 소녀의 모습이 울렁거리며 애틋한 감정이 밀려온다. 교과서에서 읽었든 소설책으로 만났든 우리의 삶에는 문학 작품, 시인, 소설가 한 두 사람 정도가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게 사실이다. 그들을 기념하는 곳으로의 여행…어떨까? 

경기도 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황순원의 소나기는 뭍 사내녀석들에게 생애 최초의 격한 감정을 가르쳐주었다. 이성에 대한 ‘두근거림’, ‘소름 끼침’, 또는 ‘애틋함’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작가는 소나기에서 윤초시 댁 증손녀의 외모나 성격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묘한 매력을 뿜어주는 문장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단편 `소나기`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몰라도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눈이 반짝이게 되는 것은 아마도 얼굴 하얀 소녀가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황순원이 이 소설을 빼어나게 완성했고 독자들도 그 뜻에 동의했다는 말이다.

어느날 양평 일대를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황순원의 소나기마을’이라는 간판을 보고 당장 핸들을 돌린 적이 있다.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 속에는 온통 ‘황순원과 양평이 대체 무슨 인연이 있는 걸까?’라는 의문으로 가득했다. 황순원 선생의 고향은 평안남도 대동이고 소나기의 배경이 양평이라는 확실한 근거도 없다. 도착해서 알아보니, 전상국, 김종회, 박덕규 등 후배나 제자 문인들이 ‘고향에 묻히지 못한 황순원 작가에게 문학의 고향을 만들어드린다’는 뜻으로 머리를 모아 양평에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적 근거는 몇 줄의 짧은 문장에서 가져왔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만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황순원의 문학 고향이 양평으로 결정된 인연은 이게 전부다. 2009년에 개관을 한 ‘소나기마을’은 서종면의 야트막한 산기슭에 있다. 초입에서 척 보아도 건축의 동기가 소설에 등장, 어린 가슴에 불을 질렀던 ‘소나기 대피용 수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나기마을’은 굉장히 큰 규모다. 중앙 건물이라 할 수 있는 황순원문학관을 중심으로 야외전시장, 황순원 묘역, 수수단오솔길, 고향의 숲, 해와 달의 숲, 사랑의 무대, 들꽃마을, 소나기광장, 고백의 길, 학의 숲, 송아지들판, 너와 나만의 길 등 크고 작은 공간들이 있다. 문학관에는 두 곳의 전시실과 휴게공간 등이 있다.

제1전시실에는 황순원의 유품,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고 선생의 집필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도 있다. 선생의 작품 관련 주제는 제2전시실에 있다. 선생의 묘역은 원래 천안 풍산공원묘역에 있었는데 소나기마을 건립과 함께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야외 시설은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주제로 했다. 수수단오솔길은 소설 속 소년과 소녀의 즐거운 오후 한때의 시작을 재현했다고 한다. 소나기를 피한 소년이 소녀를 업고 도랑을 건너던 장면은 ‘너와 나만의 길’이라는 이름의 공간으로 꾸며졌다. 소나기 이외의 작품 몇 가지도 주제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고향의 숲’은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를 배경으로 조성했다. 백정 출신 주인공의 고독한 내면을 그렸다고 평가 받는 장편 `일월`은 ‘해와 달의 숲’이라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세미나실과 멀티미디어 상영관도 있는데 일반 대여도 하고 있다. ‘소나기마을’에서는 매년 9월 ‘황순원문학제’를 통해 세미나, 백일장, 그림 그리기 대회, 작가와 함께 하는 문학촌 기행, 인형극 등을 갖고 문화 예술 애호가와 만나고 있다.

주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 산74 / 6번국도 양수IC – 문호리 버스종점 - 352번 지방도 – 황순원문학촌
전철 중앙선 양수역 – 문호리행 버스
관람 시간 09:00-17:30 관람료 어른 2000원, 청소년과 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31-773-2299

주변 여행지

조선말기 성리학자 이항로 선생 생가
조선말기 성리학자였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생가가 있는 벽계마을은 서종면 노문리 535번지에 소재하며 주변에 작은 개울을 끼고 산속으로 들어와 있다. 마을의 명칭이 벽계(蘗溪)인 것은 벽진 이씨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에는 이항로 생가 외에도 경기도 기념물 제43호인 ‘노산사’가 있어 이항로 선생의 높은 학식과 유학을 전승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535 벽계마을 문의 031-770-2894

세미원 
수생식물 테마 사계절 식물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양수로 93
문의 031-775-1834 사진 | 세미원 홈페이지

두물머리 
양평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문의 031-773-5101 사진 | 양평군청

강원도 원주시 박경리문학공원

그것은 숙제였다. 대하소설을 읽어낸다는 것이, 특히 처음에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토지`를 읽어냈다면 `태백산맥`, `장길산`, `임꺽정` 등을 읽는 것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다.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의 일이다. 그리고 1994년, 그러니까 집필을 시작한지 25년만에 탈고한 것이다. 그는 `토지`라는 대하 소설로 우리 사회에 각인되었지만 토지 이외에도 `김약국의 딸들`, 시집 `못 떠나는 배`, 그리고 숱한 산문을 통해 독자들의 가슴을 적셔준 영원한 어머니였다.

박경리의 부음이 전국을 뒤덮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친어머니,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흐느꼈다. 그런데 그게 벌써 2008년의 일이라니, 세월의 덧없음에 새삼 놀랄 뿐이다. 박경리의 유산은 책 밖에도 몇 곳 있다. 선생의 고향 통영의 ‘박경리기념관’이 박경리 선생을 만날 수 있는 첫번째 공간이다.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군 악양 평사리 너른 들판과 최참판댁, 그리고 인근에 조성된 ‘토지길’이 두번째 유산이다. 최참판댁은 지금도 여행자가 줄을 잇는 문학 답사 일번지가 되어 있다. 세번째로는 원주를 들 수 있다. 박경리 선생은 1980년 원주시 단구동에 정착, 그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돌아가실 즈음 통영으로 귀향했으니 원주와 박경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선생이 살던 단구동 집은 1999년 ‘토지문학관’으로 개관, 지금은 ‘박경리문학공원’으로 개방되어 있다. 박경리문학공원에는 선생이 살던 ‘박경리 선생님 옛집’, 박경리 선생의 유품과 영상 자료를 만날 수 있는 ‘박경리 문학의 집’, 책을 빌려볼 수 있고 일제 강점기 시대의 교과서와 희귀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북카페, 토지의 주인공 홍이에서 이름을 따온 아이들 놀이터 ‘홍이동산’, 그리고 토지의 주요 배경인 평사리와 용두레벌을 연출한 산책 공간 등이 있다. 

주소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1620-5 / 중앙고속도로 남원주IC – 박경리문학공원
버스 원주터미널에서 2-1번 버스로 10분 관람 시간 10:00-17:00(12:00-13:00 점심시간 관람 불가)
관람료 무료 문의 033-762-6843

주변 여행지

구룡사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29번지 / 입장료 2000원 / 033-744-8100 사진 | 원주시청

옻칠기공예관
옻나무 주산지인 원주의 특산물인 칠공예품을 비롯한 생활칠기와 칠기제작 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 곳.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710-8 / 033-732-5726 사진 | 원주시청

통영 예인 기념관 순례 ① 박경리기념관

통영은 예술의 고향이라 해도 될 정도로 걸출한 예인을 많이 탄생시켰다. 박경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먼 곳에서 살다 끝내 돌아와 묻힌 곳이기도 하다. 박경리와 관련된 기념 시설은 위에 소개한 원조 ‘박경리문학공원’도 있지만 그의 고향에 통영에도 ‘박경리기념관’이 있다. 이곳에 가면 선생의 연보, 작가의 생애와 사상, 유품 등을 만날 수 있다. 관람할 수 있다.

뭐가 외로워 / 조금도 외롭지 않아 / 뭐가 슬퍼 / 조금도 슬프지 않아 / 괜한 어리광이었어 // 저기 됫박 쌀 한봉지 들고 / 씩씩하게 가는 늙은이가 있고 / 저기 목발 짚고 / 씩씩하게 걷는 소년이 있고 / 비에 젖으면 날아가는 / 백로가 있다. /나도 밑바닥 세월속에선 / 참 씩씩했었다. // 일체중생 모두 고달픈 것을.. / 나 또한 중생의 하나이니 / 슬퍼말아라. (박경리 `못떠나는 배` 전문)

주소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9-9  / 대전통영고속도로 통영IC – 박경리기념관
버스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534번 버스로 60분
관람 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문의 055-650-2541~3

통영 예인 기념관 순례 ② 청마문학관

청마문학관은 시인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기념관이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이곳에는 청마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원래 그가 태어난 지점은 아니지만 기념관의 편의성을 위해 이곳에 자리잡았다. 전시관은 시인의 삶을 조명하는 ‘청마의 생애’, 생명 추구의 시작과 작품의 변천 및 평가를 살펴볼 수 있는 ‘청마의 문학’, 유품들과 관련 평론·서적·논문을 정리한 ‘청마의 발자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청마의 유품 약 100점과 문헌자료 약 350점이 전시되어 있다. 복원 생가에는 소박한 방 2칸과 부엌이 있는 안채와 창고를 겸한 아래채가 있어 유치환 시인의 삶의 모습을 연상케 하며 특히 의원이었던 아버지가 운영하던 유약국과 관련된 유품도 있어 여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숫한 사람들이 /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비귀꽃인지도 모른다. // -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느니 /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 전문)

주소 경남 통영시 정량동 863-1 / 대전통영고속도로 통영IC – 청마문학관
버스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정량동, 동호동 방향 버스로 10분 거리, 목화장 모텔 앞 하차
관람 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문의 055-650-4591

통영 예인 기념관 순례 ③ 김춘수유품전시관

김춘수유품전시관은 통영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봉평동 451(해병2길2번)번지에 있다. 2008년에 개관한 이곳에는 김 시인의 육필 원고 126점과 8폭 병풍 서예작품, 액자, 사진을 비롯해 생전에 사용하던 가구와 옷가지 등 33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 동안 출간되었던 선생의 시집도 시작 연대와 함께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한쪽에는 김 시인이 생전에 기거하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침대와 10폭 산수화 병풍, 액자 등을 넣어 ‘김춘수 방’을 꾸몄고 나머지 공간에는 옷가지와 책, 평소 쓰던 소지품, 사진 등을 전시해 시인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전문)

주소 경남 통영시 봉평동 451 / 대전통영고속도로 통영IC – 김춘수유품전시관
버스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정량동, 동호동 방향 버스로 10분 거리, 목화장 모텔 앞 하차
관람 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문의 055-650-4591

주변 여행지

윤이상기념공원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가 있던 터에 건립한 공원과 기념관. 통영시 도천동 148 / 055-644-1210 사진 | 통영시청

전혁림 미술관
색채의 마술가, 바다의 화가로 불린 전혁림의 작품, 작업실, 생활공간을 보여주는 예술 공간. 055-645-7349 사진 | 통영시청

옻칠미술관
옻칠과 나전으로 표현한 현대 예술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055-649-5257 사진 | 통영시청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통영의 일출·일몰부터 거제대교, 통영항, 미륵산 등을 조망한 수 있는 전망 케이블카. 1544-3303 사진 | 통영시청

※자료=양평군청, 원주시청, 통영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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