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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좌를 다니다 보면 반응이 몇 갈래로 나뉜다. 처음 한두 번 인문학 강좌를 들어본 사람들은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젊을 때 인문학을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서 듣다 보니 생각이 정리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문학을 좋아한다면 강연을 계속 듣기만 하는 소극적인 활동으로 끝나면 안 된다. 중·고등학교 수업과 대학교 교양까지 듣고 나면 다음부턴 혼자서 책을 읽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선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생이 된다.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있건, 근래에 인문학 강좌를 들었건, 인문학 책을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날 동양 고전 중 ‘맹자’는 문장을 읽히고 문리(文理)를 익히기에 좋은 책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런 만큼 ‘맹자 읽기’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사람들이 ‘맹자’를 읽었을 때 사정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어릴 적부터 한문을 읽었으므로 일정 나이에 이르면 문장을 줄줄 읽었다. 하지만 ‘맹자’도 읽자마자 무슨 뜻인지 다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다. 당대 최고 학자들도 처음엔 ‘맹자’를 비롯한 여러 동양 고전을 앞에 두고 한숨을 푹푹 쉬며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내로라하는 인물을 통해 그들이 ‘맹자 읽기’를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살펴보자.

임진왜란 당시 발로 뛰면서 전황을 독려한 유성룡(柳成龍)도 ‘맹자’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서애집’의 ‘연보’에 따르면 그는 4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 8살 때 ‘맹자’를 처음 읽었다.

“눈으로 나쁜 색을 보지도 않고 귀로 나쁜 음악을 듣지도 않았다.” (目不視惡色, 耳不聽惡聲, ‘만장’ 하1)

유성룡은 이 한 구절을 보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자나 깨나 그 구절을 생각했으며 급기야 백이(伯夷)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아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백이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왕이 될 사람이었지만, 아버지가 막내를 더 사랑하자 미련 없이 왕위를 던진 인물이다.

어렸을 때 유성룡은 ‘맹자’를 전체로 꿰뚫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느낀 점이 많아 19살 때 큰 결심을 했다. ‘맹자’ 1질(1묶음)을 갖고 관악산으로 몇 달간 들어간 것. 큰 절로 가면 이런저런 사람으로 소란스러울 듯해서 밥 짓는 아이를 데리고 폐암(廢庵)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런데 낯선 젊은이의 출현을 반기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밤중에 유성룡이 머무는 폐암의 담벽을 툭툭 쳐서 소리를 냈다. 깊은 밤 고요한 산에 울리는 ‘툭툭’ 하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초풍했을지 모른다. 유성룡은 아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 태연했다.

어느 날 밤 어떤 한 스님이 유성룡 앞에 불쑥 나타나 깊은 산속에서 도적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람의 일을 헤아릴 수가 없고 당신이 도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스님은 청년 유성룡의 기개에 감탄하며 큰 인물이 될 거라 말했다.

당시 유성룡은 ‘맹자’를 스무 번이나 되풀이해 읽어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외우게 됐다. 산을 내려와서도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맹자’ 첫 편 ‘양혜왕’에서 마지막 편 ‘진심’까지 모두 뚜렷이 기억했다. 훗날 유성룡은 19살 때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맹자’를 포함해 ‘대학’ ‘중용’ ‘논어’ 등 고전을 백 번 읽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성취한 것이 지금처럼 데면데면하지 않았을 텐데.”

19살 때 이미 ‘맹자’를 암송해 기억을 했지만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유성룡은 또 젊어서 ‘맹자십편’을 했지만 ‘맹자백편’을 하지 못한 것을 두고 아쉬워했다.

병자호란 이후 효종(孝宗)과 함께 정국을 주도했던 송시열(宋時烈)에 이르면 ‘맹자백편’은 더 이상 명함도 내밀지 못하게 됐다. 송시열은 반복 읽기의 횟수를 기하급수적으로 올려서 ‘맹자천편’의 주인공이 됐다. ‘맹자 읽기’의 세계적인 종결자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송자대전’의 ‘어록’을 보면 ‘맹자천편’은 주위 사람들도 믿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송시열에게 사실이냐고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

송시열은 이 물음을 받고 싱긋이 웃으면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실제로 ‘맹자천편’을 했고 ‘맹자’의 처음 두 편은 천 번이 아니라 몇천 번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라 평생을 줄줄 외웠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어릴 적의 다른 독서 경험을 이야기했다.

9살 때 역사 관련 책 1권만을 백 번 되풀이해서 읽으니 문리가 트이고, 2권을 읽을 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게 적어졌다. 이후부터 문장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송시열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들여 암송해야만 본령이 생긴다고 봤다.

조선시대 호학군주를 말한다면 후기 르네상스를 이룬 정조 ‘이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당대의 어느 학자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학식을 쌓아서 촉망되는 신진 관료를 직접 가르치기까지 했다. 정조 역시 책 읽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맹자강의(孟子講義)’ 4권을 편찬할 정도로 ‘맹자’를 깊이 연구하고 음미하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맹자’를 읽을 때 주희(朱熹)의 독법을 지침으로 삼았다. 그의 독법은 다음과 같다.

“맹자는 내용이 분명하고 친절해 의심할 만한 부분이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숙독(熟讀)해서 그것을 내 배(가슴) 속에 자리하도록 먼저 수백 수천 번 읽고 다시 읽으면 저절로 정통해진다.”

정조는 주희의 책 읽기 방법을 바탕으로 ‘맹자’를 읽으면서 차기(箚記), 즉 독서 노트를 책 상자에 담아뒀는데, 그것도 엄청난 분량으로 쌓이게 됐다.

정조의 이런 독서법은 ‘맹자’만이 아니라 주희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는 ‘주자절요(朱子節要)’를 읽으면서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수십 번씩 읽었고, 한 권이 끝날 때마다 반드시 앞에서 끝까지 실마리를 찾아가며 한 책씩 마쳤다. 전질을 이렇게 다 읽고 나서 그 가운데서 정수만을 뽑아 3권의 ‘자양자회영(紫陽子會英)’을 만들었다.

우리는 책을 많이 읽은 고사로 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을 말한다. 종이가 없던 예전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책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공자가 책을 하도 많이 읽어 그것을 엮어 놓은 가죽끈이 3번 끊어졌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위편삼절은 어렵지 않다. 대나무를 넘기면 대쪽끼리 마찰이 되므로 가죽끈이 끊어지기 쉽다.

공자의 ‘3’이라는 숫자는 유성룡에 이르러 ‘10’으로 늘어났다가 다시 송시열에 이르러 ‘1000’으로 늘어났다. 호기심 강한 사람들은 그들이 과연 숫자만큼 책을 읽었을까 궁금해할 수도 있다. 여기서 초점은 숫자 자체보다 책 내용이 어렵다고 팽개치지 않고 이해할 때까지 책을 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대인은 다들 바쁘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천 번을 읽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사상가가 될 생각은 없다 해도 인생을 통틀어 세 번이든, 열 번이든, 천 번이든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는 사람이 있다면 안타깝다.

주희도 유성룡도 송시열도 정조도 ‘맹자’를 읽자마자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바쁘고 힘들다 한들 한 나라의 임금이었던 정조가 ‘바쁨’에 있어서 우리에게 뒤질 것인가. 할 일은 많고 짊어지고 있는 짐은 늘 무거웠을 터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뿐 아니라 읽은 것을 다시 정리해 자신의 직분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데 활용하려고 했다. 그런 사실을 지금의 우리가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