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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공부, 학원, 특별 활동 등 자녀들에게 써야 할 사교육비가 부모의 노후 대책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된 불편한 진실이다. 자녀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직 살 날이 창창한 중년 부모의 미래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교육에 대한 조밀하고도 생산적인 전략이 있다면 두 가지 과제를 모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점검은 우리 아이가 그 학원, 그 과목 과외를 정녕 원하고 있는지, 그 성과는 나타나는지 확인해 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꼭 필요한 교육비 아이와 함께 상의하기

자신을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김도원 차장은 두 딸 교육에 관심 많은 자상한 아빠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는 영어·수학·과학·논술까지 1회씩 주 4회 과외 또는 학원에 다닌다. 거기에 수학을 전공한 김차장이 직접 학교 수학 진도까지 챙겨주고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주 당 총 6회 정도의 사교육을 시키는 셈이다. 둘째는 유치원 외에 가벼운 학습지 정도와 수영, 미술을 배우고 있다. 조만간 피아노 같은 음악 교육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들이 보면 사교육을 꽤 많이 시키는 것 같지만 비용을 떠나 횟수면에서는 우리나라 그 또래 평균 수준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은 하루 두 세 군데가 기본’이라며 볼멘 소리를 하는 아내의 말을 들을 때는 김차장 자신이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아내 말대로 아이들을 학원 두 세 곳 더 보내야 하는 게 옳을까? 그런데,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과연 행복할까? 김도원 차장은 자신을 ‘묻지마식 자식 교육에 반대하며 냉정함을 유지하려는 부모’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통계치의 평균을 훨씬 넘는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두 아이 합해서 어떻게든 100만원을 넘기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내년에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사교육비 규모도 커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흔히 노후 준비를 훼방하는 첫번째 요소로 자녀교육비를 꼽지만 자녀 교육과 노후 준비는 서로 대체 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필요한 곳에만 알뜰하게 지출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것을 찾는 일이 과연 쉬울까? 김 차장은 누군가 균형 잡힌 자녀 교육비 지출법을 알려준다면 떡이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다.

투자 대비 밑지기만 하는 한국식 자녀 교육

자녀 교육에 대해 냉정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부모라 해도 막상 닥치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2013년 6월 발표된 ‘2013 OECD 교육지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은 7.6%로 OECD 평균 (6.3%)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더구나 공교육비 중 민간이 부담하는 비율은 OECD 평균(0.9%)보다 3배 이상 높은 2.8%로 나타나 조사 대상 국가 중 최고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많은 교육비를 쓰면서도 교육 여건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통계에는 잡혀 있지 않은 학원비 등 사교육비를 포함하면 교육비 전체에 대한 개인 부담 비율은 최소한 OECD 평균의 5배 이상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이 조사가 시작된 2001년 이래 ‘교육비 지출 13년 연속 1위’라는 영광 아닌 영광(?)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사교육비 지출 실태도 살펴보자.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액은 약 19조 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고는 하지만 학생 수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학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약 24만원 수준이고 사교육 참여율은 70%에 달한다. 여기서 사교육 참여율을 감안한 실질적인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를 계산해 보면 34만원으로 올라간다.

대부분 학부모들은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남들 다 쓰는 사교육비를 나만 쓰지 않을 배짱은 없다’며 답답해 한다. 일정 부분 인정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효율성이다. 과연 투자한 만큼 성과가 있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학 입학 후 교육 경쟁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지표가 여기저기에서 발견되고 있다. 실제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기초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한 재미교포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 명문대를 입학한 1400명의 한국인 학생 가운데 졸업에 성공한 학생은 불과 784명 뿐이어서 중퇴율이 44%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미국 전체 명문대 평균 중퇴율인 34%를 훨씬 윗도는 수치인데 유대계, 인도계, 중국계(12.5~25%) 등 타 민족과 비교했을 때는 그 차이가 한층 더 크게 나타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입학이 쉽고 졸업이 어려운 미국의 교육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시킬 때 시키더라도 최소한의 원칙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아이를 학원에 밀어넣는 것은 아이 본인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물론 한창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중년의 부모에게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다수 사교육 전문가나 교사들은, 사교육 결정의 기준으로 ‘아이가 진정 원하느냐’이며, ‘결정 과정에서 아이가 배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이와 충분한 대화를 할 경우 ‘진짜 필요한 과목’이 무엇인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등 아이 자신이 주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동기 부여까지 가능하다. 반대로 대화의 결론이 ‘공부보다 영상에 미쳐있으니 학원 갈 돈으로 좋은 카메라 하나 사고 주말마다 출사 비용 지원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강요에 의한 공부만큼 비효율적인 일은 없다. 부모의 의견에 그냥 동의해 준것은 아닌지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앞서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 한인 학생의 높은 중퇴 비율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과외나 학원을 보내기 전 아이와 함께 학원을 방문해 교과 내용 등을 확인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방문 결과, 교과 내용이 필요 이상 어렵거나 아이의 역량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보내지 않는 게 정답이다. 가끔 학원의 상술과 마케팅에 현혹되어 자기 자식의 능력을 과대평가(개인적으로 요즘에는 웬 영재들이 그리도 많은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부모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 컷으니 알아서 해라, 잘 선택해서 열심히 해, 돈 걱정은 하지 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돈 벌어오는 지 알지? 땡땡이 치면 알지?’ 등등의 생각 없는 발언은 아이의 기만 죽일 뿐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가 옆에도 도와주고 관심을 가져줄 때 우쭐해진다.

이제 여러가지 이유로 ‘개천에서 용 나는’ 일보다는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공부도 이제 정신력이 아닌 과학이요, 전략이라는 생각으로 개념 정리를 해야 한다. 그 전략 안에 ‘학업 성과 높이고’, ‘스스로 공부해야 할 동기를 찾게 하는 주체적 학습 능력’도 키워주는 전술이 꼭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이를 시험이나 잘 보는 기계가 아닌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푸른 나무로 가꿔주는 교육 방법이 아닐까?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