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미술 작품을 살 때 미술 중개상에게 돌아가는 몫은 얼마일까? 법으로 명시된 바는 없지만 관례적으로 5 대 5의 비율이 유지된다. 1000만원짜리 작품을 팔면 500만원, 1억원짜리 작품을 팔면 5000만원이 미술 중개상의 몫이다. 간혹 6 대 4 또는 4 대 6으로 배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 대 미술 중개상의 수익분배원칙은 전 세계적으로 5 대 5가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 거래나 부동산 시장의 중개 수수료가 백분율로 소수점 이하의 퍼센트라는 점을 놓고 볼 때 미술 시장은 언뜻 미술 중개상들의 천국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술 시장에서 미술 중개상의 몫이 크다는 사실은 그만큼 미술품 판매가 쉽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작품을 판매하려는 미술 중개상의 어려움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노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작가에 뒤지지 않는 열정과 아이디어가 없으면 아트 미술 중개상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

‘팔리면 작품, 안 팔리면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그림이나 조각이 시장에서 유통이 돼야 비로소 ‘작품’이 된다는 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미술 중개상의 입김이 들어가야 비로소 작품은 생명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가치를 지나치게 시장 중심으로 판단하는 말이지만 지난 50년 세계 미술의 트렌드를 돌아볼 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이제 미술 중개상의 역할을 빼놓고 현대미술을 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누구에게 샀나’가 ‘누구 작품인가’만큼 중요

수요와 공급이 부정확한 미술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신비로운 순간은 많은 경우 미술 중개상들의 마케팅과 판매 전략에 의해 결정된다. 작품 하나에 붙는 천문학적 수치를 볼 때 원가를 운운하는 것은 세계 미술 시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사실 서구 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질은 판매자의 판단과 신용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 누구에게 산 것인가가 누구의 작품을 사는 것인가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같은 피카소의 작품도 브랜드가 확실한 미술 중개상에게서 산 작품이 훗날 더 좋은 가격으로 재판매될 수 있다. 일단 시장에서 신뢰를 얻은 미술 중개상들에게 막대한 수요가 몰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원칙이 미술 시장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것. 이렇게 보면 도깨비 같은 미술 시장에서 미술 중개상으로 명성을 얻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단 이름을 얻게 되면 땅 짚고 헤엄치는 풍요의 미래가 확실하게 열린다고 말할 수 있다.

미술 시장에서 신뢰받는 미술 중개상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갖추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작가들을 수하에 거느리고 있어야 한다. 소위 그 미술 중개상만을 통해야만 살 수 있는 ‘킬러 상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유명한 작가는 돈으로 유혹해서라도 경쟁업체에서 빼앗아야 하고, 젊은 작가들도 꾸준히 만나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할 줄 알아야 한다. 시장의 흐름을 읽는 황금의 눈과 함께 맘에 드는 작가나 작품은 입도선매할 수 있는 자금력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또 고급 고객들과 정서적 교감을 오랫동안 지속시킬 만한 신용과 매너, 그리고 행운까지 갖춰야 비로소 현대미술 시장에서 잘나가는 미술 중개상이 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아트 미술 중개상으로 손꼽히는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이 바로 이 같은 카테고리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경우다(그림 ➊). 가고시안은 1945년생으로 아직 60대 중반이다. 지난 10년간 미술 시장을 지배했고 앞으로 10년 이상 미술 시장의 권력자로 남을 것으로 본다. 그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으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다. 처음에는 월세 70달러를 내고 15달러짜리 포스터를 파는 영세 미술 상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 11개의 지점을 두고 77명의 유명 작가를 거느리면서 연간 10억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2010년에는 홍콩에도 지점을 열었는데 자신의 미술제국이 드디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됐다(“The sun never sets on my gallery.”)고 흡족해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도 공세적인 자세를 거두지 않고 있는데, 이렇게 투자를 계속해 나가는 그를 가리켜 월스트리트저널은 ‘가고시안 효과(Gagosian Effect)’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래리 가고시안, 세계 미술 시장의 1/30 혼자 주물러

30조원으로 추정되는 세계 미술 시장에서 1조달러 이상의 매출을 한 사람이 올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소더비 같은 유명한 경매회사도 현대미술 부문 매출은 8억달러 정도이니 가고시안이 스스로 창출하는 부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도 5 대 5의 거래원칙을 칼처럼 지키지만, 좋아하는 작가에게는 6 대 4로 이윤을 양보하기도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의 순수익은 연간 5억달러에 육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미 세계 갑부의 반열에 올랐는데, 전용 제트기를 타면서 세계 곳곳에 있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연일 파티를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파티 중에도 미술품 거래는 계속된다.

가고시안은 탈세 혐의와 냉혹한 사업수완으로 명성만큼 비난도 받는다. 특히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보다는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를 중간에서 새치기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라는 지탄을 받는다. 또 미술계는 그가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승자독식의 원칙이 통용되는 것이 미술 시장의 법칙임을 고려할 때 그를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사실 가고시안이 제시하는 천문학적인 몸값을 거부하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재스퍼 존스가 최근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뉴스거리가 될 정도다). 그는 또 일단 자기가 판매한 작품의 가격을 유지해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쏟아지는 질투와 비난을 잠재운다. 그는 자기가 거래한 작품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경매 시장의 맨 앞자리에 앉는다. 미술 중개상이면서 수시로 작품을 사들여 가격을 유지시키는 것. 일단 판매하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국내 미술 시장과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업계의 신뢰 덕분에 그의 손을 거치면 작품의 가격은 수직상승한다. 1만~2만달러대였던 작품도 가고시안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나면 곧장 수백 배로 오른다.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의 작품은 가고시안이 거래하면서 지난 12년간 작품 가격이 100배나 올랐다(그림 ➋). 그야말로 미술계의 미다스의 손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세계 미술 시장은 가고시안갤러리의 전시 스케줄이나 새로운 전속작가 명단을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되고 있다.

그런데 능력과 감각이 넘쳐 보이는 래리 가고시안도 고전하는 부분이 있다. 세계 지점 중 매출이 좋지 않은 곳이 몇몇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 지점의 매출은 별로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해 필자에게 자문을 해올 리는 없지만, 필자라면 이탈리아에 지점을 내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탈리아가 바로 미술 시장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미술 시장의 역사가 유구한 이탈리아에서 물량을 앞세운 미국적 상술이 쉽게 먹혀들지 않을 터. 가고시안의 먼 직업적 선배가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미술 거래로 돈을 벌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