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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겐조(KENZO)의 `2012년 봄ㆍ여름 패션쇼`. 모델들이 걷기 시작하자 쇼장에는 가벼운 웅성거림이 일었다. 이날 겐조는 조개껍데기, 어망, 새 등 해안의 경치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을 통해 실용적인 이지웨어를 선보였다. 경쾌한 색상, 스포티한 패턴과 기능성을 강조한 의류도 눈에 띄었다. 꽃무늬로 대변되던 안토니오 마라스의 기존 컬렉션이 `예술`에 방점을 찍었던 것과는 확연한 변화였다.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소속 럭셔리 브랜드인 겐조가 부활을 꿈꾸고 있다. 겐조는 1970년 일본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에 의해 탄생된 뒤 1980~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실용성보다 예술에 치중한 패션을 선보이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던 겐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최고경영자(CEO)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새롭게 영입하는 등 혁신을 통한 도약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열린 `2012 봄ㆍ여름 컬렉션`은 이 같은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겐조는 이날 한층 젊고 경쾌해진 컬렉션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뉴욕을 대표하는 편집매장 `오프닝 세리머니`의 캐럴 림(한국계)과 움베르토 레온을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뒤 내놓은 첫 결과물이었다.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뉴욕타임스는 "아시아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잘 녹여냈다"고 평했고, 워싱턴포스트는 "겐조가 훨씬 젊어지고 재미있어졌다"고 썼다. 현재 전 세계 패션업계는 겐조가 셀린과 발맹 등에 이어 새로운 브랜드 혁신 사례를 써내려 갈지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에리크 마샬 겐조 CEO가 서 있다. 리테일 전문가인 마샬은 지난해 1월 겐조의 CEO로 영입돼 브랜드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매일경제는 최근 한국 시장을 방문한 마샬 CEO를 단독 인터뷰했다. 마샬 CEO는 "딸과 엄마가 같이 입을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어 겐조의 소비층을 넓히겠다"며 "다양한 문화를 디자인에 녹여내는 등 혁신을 통해 고객에게 즐거운 변화를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겐조가 추구하는 혁신 방향은.

"디자인과 마케팅 등 겐조 브랜드에서 전반적인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로 타깃 소비층을 확대시키고자 한다. 기존 겐조의 타깃은 40대였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와 딸이 함께 쇼핑하는 브랜드로 만들 것이다. 디자인에는 다문화적 요소도 많이 반영하려 한다. 전 세계의 문화를 흥미로운 디자인으로 녹여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에는 지난해 7월 영입된 캐럴 림과 움베르토 레온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들의 문화적 배경이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림은 한국계이고, 레온은 중국과 페루의 피가 섞여 있다. 두 사람은 전 세계의 예술적인 움직임을 예민하게 잡아내는 능력이 있다. 림은 10년 동안 세계를 여행했고 많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협업해왔다. 림과 레온은 고객에게 흥미로운 의상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물론 혁신을 하더라도 겐조의 DNA를 통째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겐조의 전통과 가치에 뿌리를 두고 브랜드를 재탄생시키고자 한다. 기존의 소비자들도 만족시키면서 새 고객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글로벌 마케팅 성공으로 재기한 럭셔리 브랜드가 적지 않다. 겐조의 마케팅 전략은.

"겐조가 추구하는 혁신은 세대 확장에서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새로운 젊은 세대와 의사 소통하고 고객층을 넓혀가고자 한다. 이는 겐조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겐조의 정신은 `커뮤니티`에서 출발한다. 겐조는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고객과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마케팅 툴도 바꾸고 있다. 가장 주목하는 분야가 디지털 마케팅이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툴을 통해 더 빠르고 깊이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겐조는 고화질 영상 서비스인 비메오(Vimeo)에 링크(vimeo.com/kenzoparis/videos)를 개설하고 겐조에 관한 다양한 단편 영상을 올리고 있다. 림과 레온을 영입한 후 만든 영상물도 여기에 올라 있다. 겐조 홈페이지에서는 겐조TV(www.kenzo.com/en/kenzo-tv)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앞으로 더욱 다채로운 영상을 제작해 대중과 공유할 예정이다. 패션 필름을 만드는 것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스토리텔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리테일 전문가인 림과 레온을 영입한 것도 고객과의 소통 측면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겐조의 CEO로 자리를 옮기게 된 계기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결단이었다. 아르노 회장은 기존 겐조가 럭셔리 브랜드로서 가치는 높으나 한동안 이렇다할 성장을 하지 못했던 것을 안타깝게 여겨왔다. 겐조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위상을 되찾으려면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CEO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새롭게 영입하는 시도를 했다. 개인적으로 겐조는 내가 꿈꿔왔던 브랜드다. 나는 오랜 겐조의 팬이기도 하다. 리테일 전문가인 내가 겐조를 맡아 글로벌 마케팅 강화, 브랜드 확장, 매장 확대 등을 책임진다는 데 대해 기대감이 컸다. 영입을 제의받았을 때 훌륭한 도전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CEO가 된 뒤에는 한동안 무척 바빴다. 매일 새 고객과 파트너사들을 만났다. 겐조의 역사를 공부하고 주말에도 많은 패션쇼를 보러다녔다. 림과 레온을 영입한 것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룹 내부에서 겐조의 혁신 프로젝트에 관심이 높기 때문에 한순간도 긴장을 풀기 힘들다. 조직을 개편하고 디지털 시장을 겨냥해 새로운 브랜드 컨셉트를 만드는 것 등 지금도 겐조 내부에서는 전방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한국은 아시아에서 톱 3위에 들어가는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성장 잠재력,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시장이다. 본사에서는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다. 한국은 단순히 패션뿐 아니라 영화, 음악 등 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림과 레온도 한국 시장을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다문화를 지향하는 겐조의 디자인에도 큰 영감을 줄 것이다. 한국계인 림은 한국 고객을 매료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 소비자와 유통시장 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겐조는 한국에서 영업한 지 올해로 20년을 맞이한 만큼 한국 소비자와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한국 시장의 특징이 있다면.

"한국은 성숙한 시장이다. 소비자들이 패션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다. 패션에 관심도 많고 이해도가 높다. 패션에 대한 교육이 잘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매우 섬세한 소비자이기 때문에 림과 레온이 추구하는 새로운 겐조의 컨셉트를 잘 받아들일 것 같다. 한국 시장에 특화한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다. 큰 틀에서는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따르겠지만 아시아 지사 차원에서 각 나라에 맞는 차별화한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과거의 실적과 소비 트렌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맞춤전략을 만들 것이다. 또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받아 상품 제작에 반영할 것이다.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에 전 세계 시장 중 가장 기대가 크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에 럭셔리 브랜드가 많은 것은 여러 세대를 거쳐오면서 축적된 문화적, 지적, 경제적 토양이 기초가 됐기 때문이다. 오랜 세대를 거쳐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한국도 훌륭한 디자이너와 우수한 패션 브랜드가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은 미래에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탄생할 것으로 본다."


-겐조라는 브랜드를 정의한다면.

"겐조는 `쿨(cool), 시크(chic), 펀(fun)`이 컨셉트다. 겐조의 소비자들은 글로벌 문화에 열려 있고 다양한 문화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남과 다른 문화에 미소 지을 수 있는 똑똑하고 강인한 성격의 소비자가 많다. 겐조는 상품의 질뿐 아니라 서비스에도 관심이 많다. 겐조를 방문한 소비자에게 잊을 수 없는 쇼핑 경험을 전달하고자 한다."


-올해 패션업계 전망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소비자들은 더욱 물건을 구매하는 데 신중해질 것이다. 그만큼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어 경쟁사와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올해는 패션업체들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것이다. 겐조는 새로운 컨셉트를 앞세워 가치 소비에 있어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다."


-CEO로서 올해의 계획은.

"현장 경영을 중시할 것이다. 작년은 CEO로 영입된 첫해로 할 일이 무척 많았다. 전 세계 시장을 다니며 매장을 직접 방문하고 고객들을 만나 대화했다. 국가별 유통 시스템을 둘러보고 마케팅 전략을 점검했다. 작년에는 첫 단추를 끼웠다는 의미가 있다면 올해는 시스템을 굳히고 전략을 구체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 낼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과 중동, 미국 등 겐조의 주요 시장을 수시로 방문해 고객을 만나겠다. 2년 이내 겐조 매출을 2배로 늘려 전 세계 패션업계에서 5위에 오르는 것이 목표다."

 

 ■ He is …
에리크 마샬 겐조 CEO는 1967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제통상을 전공했으며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대형 쇼핑몰인 `C&A 하우스만` 임원으로 일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의 아동복 유통회사인 `그룹 자니에르`에 입사해 2000~2002년 옥스보우와 쿠카이칠드런 브랜드 담당 임원, 2002~2006년 장부르게 CEO, 2006~2010년 카티미니 CEO 등을 역임했다. 그는 장부르게와 카티미니 CEO 시절 브랜드 매출을 큰 폭으로 성장시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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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연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2.02.03기사입력 201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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