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그랜저는 한국형 마초(macho) 자동차의 효시다. 에스파냐어로 ‘남성’을 뜻하는 마초는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며, 정력이 센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위엄, 권위, 웅장 등의 뜻을 지닌 그랜저(Grandeur) 차명도 마초 이미지에 어울린다. 그랜저는 출시 당시부터 마초 향기를 내뿜으며 40~50대 남성에겐 부와 명예, 상류층의 상징이 됐다.

마초 이미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세대 그랜저는 겉모습에서 곡선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네모반듯한 각으로 만들어져 ‘각 그랜저’로 불렸다.

1.그랜저 2.뉴그랜저 3.XG 4.TG 5.HG 6.HG 하이브리드

각을 세운 그랜저는 각종 영화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이 그랜저를 탄 장면이 자주 나오면서 ‘형님 차’로 인식됐다. 커다란 덩치, 양복, 깍두기처럼 각진 스포츠머리 등의 이미지를 지닌 ‘형님’들이 타는 각 그랜저는 일반인들에게 위협적인 마초의 품성을 내뿜는 차로 여겨졌다.

부의 상징이어서 타고 싶지만 각을 세워 부담스러운 이미지는 그랜저의 영역을 넓히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

기함(플래그십) 자리를 에쿠스와 제네시스에 넘겨준 그랜저는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전략을 세웠다. 타깃층도 낮춰 4050세대가 아닌 성공을 꿈꾸는 3040 직장인과 사업가를 노렸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오늘을 말해줍니다”라는 CF는 물질만능주의와 과시성 소비문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랜저가 ‘성공의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 국민차 쏘나타의 영역을 시나브로 파고들면서 ‘국민차’ 자리도 넘보고 있다.

그랜저는 이후 아반떼, 쏘나타에 이은 ‘국민차 후보’가 됐다. 1986년 1세대 모델이 출시된 이후 25년 동안 총 판매대수는 126만대에 달한다. 올 1분기에는 총 2만6426대가 팔려 쏘나타를 제치고 국산차 판매 1위를 달성했다. 올 상반기(1~6월)에는 4만4051대가 판매돼 신형 모델이 나온 쏘나타(5만4785대)에 밀려났지만 아반떼(4만635대)와 싼타페(4만4003대)는 제쳤다.

◆1세대-그랜저 (1986년~1992년)

서울올림픽 공식 스폰서였던 현대차는 ‘L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해 포드 그라나다 후속으로 1986년 7월 그랜저를 출시했다. 차명은 웅장, 위엄, 위대함의 뜻을 담아 ‘그랜저(GRANDEUR)’로 명명됐다.

국내 대형차 시장의 포문을 연 그랜저는 당시 첨단 기술이었던 전자 제어 연료 분사 방식의 MPI(Multi Point Injection) 엔진을 장착, 최고급 모델로 자리잡았다.

직선이 강조된 강인한 이미지 때문에 각이 살아 있다고 해서 ‘각 그랜저’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졌다. 엔진 라인업은 2000cc, 2400cc, 3000cc로 구성됐다. 당시 국내 대형 승용차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총 9만2571대가 판매됐다.

◆2세대-뉴 그랜저 (1992년~1998년)

1992년 9월 출시된 2세대 모델은 ‘뉴 그랜저’로 불렸다. 곡선미를 살린 유럽풍 다이내믹 스타일에 중후한 이미지를 조화시켰다. 당시 국내 시판 차종 중 가장 큰 차체와 실내공간을 갖췄다.

에어백, 능동형 안전장치(TCS), ECM 룸미러, 차체제어시스템(ECS), 4륜 독립현가장치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첨단 안전장치 및 편의사양을 채택해 경쟁력을 높였다.

2000cc, 2400cc, 3000cc, 3500cc 엔진 라인업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총 판매대수는 16만4205대다.

◆3세대-그랜저XG (1998년~2005년)

새로 개발된 196마력의 시그마 3.0 V6 DOHC 엔진과 국내 최초 수동 겸용 5단 H-Matic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강력한 엔진으로 ‘달리는 재미’를 제공하는 등 국내 대형차 성능을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자인도 하드탑 스타일로 한층 세련돼졌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 받아 현대차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엔진 라인업은 2000cc, 2500cc, 3000cc로 운영됐다. 판매대수는 31만1485대를 기록했다.

◆4세대-그랜저TG (2005년~2010년)

‘견고한 안락함(Solid Comfort)’이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독자 기술로 개발된 고성능의 람다 및 뮤 엔진,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하는 내·외장 스타일, 첨단 안전 및 편의사양 등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현대·기아차가 독자 개발한 6단 자동변속기를 얹었다. 이를 통해 엔진 성능은 물론 출력과 연비까지 향상시켰다. 버튼시동장치, 블루투스 핸즈프리, 에코 드라이빙 시스템 등 신규 사양과 첨단 기술을 새롭게 적용해 상품성도 강화했다.

엔진 라인업은 2400cc, 2700cc, 3300cc로 구성됐다. 총 판매대수는 40만5545대다.

◆5세대-그랜저 HG (2011년~ )

‘웅장한 활공’을 의미하는 그랜드 글라이드(Grand Glide)를 콘셉트로 디자인됐다. 역동적인 캐릭터 라인과 풍부한 볼륨감의 조화, 고급스러우면서도 당당한 이미지 구현을 추구했다.

올 상반기(1~6월)에는 판매대수 4만4051대로 5만4785대가 팔린 쏘나타와 함께 투톱 체제를 구축하면서 현대차 판매 실적 성장세를 이끌었다. 2011년 1월 5세대 모델이 출시된 지 만 3년이 지났지만 인기는 식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랜저는 가솔린 모델 이외에 지난해 12월에는 경제성을 앞세운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 일본 하이브리드카의 공세에 대비했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실 연비가 좋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1분기 동안 4180대가 판매됐다. 시기적으로 주춤해야 할 그랜저 실적에 기여한 셈이다.

지난 6월 출시된 2015년형 그랜저 모델은 기존 모델보다 전장을 10mm 늘리고 전·후면부에 새로 디자인한 범퍼를 적용해 볼륨감과 웅장함을 더했다. 전면부에 LED 포그램프를 새롭게 탑재해 최첨단의 느낌과 함께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그랜저 디젤

독일 디젤 세단과 경쟁하기 위해 디젤 모델로도 나왔다. 그랜저 디젤 출시로 가솔린, 하이브리드, 디젤 등 엔진 풀 라인업이 완성됐다.

그랜저 디젤은 싼타페‧맥스크루즈에 적용해 성능을 검증받은 R엔진을 기반으로 개발한 R 2.2 E-VGT 클린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유로6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는 현대차 최초의 클린 디젤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202마력(ps), 최대토크는 45.0kg·m다. 연비는 14.0km/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