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오징어는 회로 먹거나 튀겨 먹기도 한다.

다리를 구워 먹을 때는 고춧가루 소금에 찍어 먹으면 더욱 고소하다. <사진 : 박찬일>

요새 일본 규슈(九州) 지역에서 관광이 뜨고 있다. 방사능 사태가 터지면서 사실상 일본의 거의 유일한 안전지대로 평가받는 것이 한몫했다. 실제 일본 내에서도 규슈로 이주하는 인구가 적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돌발사태 이전에도 규슈는 한국인에게 이미 인기 많은 관광 지역이었다.

우선 비용이 싸다.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면 국내 여행 요금 정도로도 다녀올 수 있는 곳이 규슈다. 상대적으로 도쿄와 오사카 지역보다 물가도 싸다. 부산의 경우 배를 이용해 가면 훨씬 더 싸게 다녀올 수 있다. 규슈에는 제주에서 큰 바람을 불러일으킨 ‘올레’도 개설됐다. 올레는 한국이 수출한 문화상품으로 규슈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 관광객 유치 목적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요새는 일본인들이 많이 몰려서 새로운 ‘한류’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다.

규슈 여행은 먹는 재미도 크게 한몫한다. 규슈는 그야말로 음식 천국이다. 필자의 경우 20여년 전부터 이따금 규슈를 탐방해오고 있는데 매번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낸다.

메밀국수와 초밥, 우동 같은 전통적인 일본 음식도 수준 있게 내는 가게가 많으며 규슈 지역만의 독특한 음식을 발굴하는 재미가 있다. 그중 활어회는 규슈의 명물이다.

일본은 흔히 ‘숙성회’가 유명하다고들 한다. 한국은 활어회, 일본은 숙성회라고 딱 꼬집어 나누는 경우도 있다. 생선을 숙성시키면 이노신산 등 맛있는 아미노산이 증폭돼 더 맛있어진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럼에도 한국은 활어회의 씹는 맛을 더 좋아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규슈는 일본 내에서도 좀 독특한 지역이다. 활어회가 꽤 인기 있다. 이유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겠지만 한반도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에서 활어회는 ‘이키츠쿠리(活造り)’라고 부른다. ‘살아 있는 모양’이란 뜻이다. 이 계절에 규슈를 가면 명물 이키츠쿠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오징어(한치)회다. 거리의 일본식 식당은 물론 이자카야에서 ‘이카츠쿠리(イカ活造り·산 오징어회)’라고 써 붙여 놓은 것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산 오징어나 한치회를 먹는 법이 아주 다양하다. 산 것을 그대로 내장만 제거한 후 껍질도 벗기지 않고 썰어서 제공하는 게 가장 흔한 방법이다. 고추장에 무쳐서 내는 법도 있다. 규슈의 산 오징어회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제공된다.

우선 껍질을 벗긴 후 살점에 촘촘하고 길게 칼집을 넣는다. 칼을 예리하게 넣어 살점이 조금씩 꿈틀거리기도 한다. 머리(실은 지느러미)와 다리까지 함께 내놓는다. 그렇다고 그대로 먹는 것은 아니다. 몸통을 회로 먹은 후 지느러미와 다리를 다시 가져간다. 대개 묻지 않고 튀겨서 내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어떤 요리 방법을 원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일본식의 ‘치밀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대목이다. 머리는 구울 수도 있고 튀길 수도 있다. 구워 달라면 토치로 살짝 그을리듯 구워 준다. 야들야들하다. 튀기면 아주 고소하고 부드럽다.

그런데 필자만의 비장(?)의 주문법이 있다. 지느러미도 회로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가져가서 껍질을 벗긴 후 가늘게 썰어서 낸다. 지느러미는 어쩌면 몸통보다 더 맛있다. 필자가 규슈식 오징어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위다. 뭐랄까, 꼬들꼬들하고 입에 착착 붙는 맛이 있다. 몸통의 부드러운 맛은 저리 가라다. 물론 모든 식당이나 술집에서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요리사가 숙달돼 있고 시간도 있어야 가능한 주문법이다.

다리를 먹는 법도 있다. 당연히 튀기는 게 제일 많다. 일본식 영어로 ‘후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필자의 팁이 있다. 다리의 일부만 회로 해주고 나머지는 굽거나 튀기는 것이다.

총 10개의 다리 중 어떤 걸 튀길까. 몸통과 붙어 있는 연골 부위는 회로 달라고 한다. 씹는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오징어의 팔이나 생식기에 해당하는 기다란 다리(촉수)도 회로 달라고 한다. 이 다리는 다른 것과 달리 부드럽다. 회로 먹어도 좋다. 보통 마른오징어를 먹을 때 기다란 다리만 좋아해서 따로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오징어 다리 맛을 아는 이다. 이 다리는 상대적으로 더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다. 한치는 오징어처럼 촉수가 길지 않아 금방 구별이 어렵지만 모양이 덜 통통하고 길쭉한 다리를 찾아낼 수 있다.

소나 돼지는 온갖 부위로 나누고 분해해서 판다. 근육의 조직과 결, 맛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안심과 뒷다리 사태를 같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징어도 덩치는 작지만 부위별로 맛이 다 다르다. 각기 특성을 잘 알면 더 다양하게 맛을 즐길 수 있다. 규슈의 오징어회도 이렇게 부위를 달리하면서 먹으면 훨씬 맛이 좋다.

다리를 구워 먹을 때는 고춧가루 소금을 달라고 해보자. 마치 순대를 먹을 때처럼 찍어 먹으면 구수한 구운 다리의 맛이 달라진다. 정말 깨알 같은 디테일이다. 한국식의 터프한 방식도 좋지만, 이런 세밀한 방법을 통해 식도락의 경지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산 오징어(한치)회는 2000엔에서 3000엔 사이다. 우리 돈 3만원 미만. 한치 한 마리 값 치고는 센 편이지만 물가를 고려하면 꽤 괜찮은 선택이다. 술도 섬세하게 달리 매칭하는 게 좋다. 몸통 살을 먹을 때는 차가운 일본주(청주), 구운 다리와 튀김을 먹을 때는 맥주가 좋다. 물론 어느 술이든 이 요리를 먹을 때 잘 어울린다.

규슈식의 한치회는 규슈 내에서도 요부코(呼子) 지역이 아주 유명하다. 가라츠시(唐津)에 있는 조그만 어촌마을로 한반도와 아주 가깝다. 일본 3대 새벽시장 중 하나가 요부코 어시장이기도 하다. 갓 잡아 신선도가 그만인 해산물을 길가에 늘어놓고 판매하고 있다. 요부코는 원래 고래잡이의 전진기지였다. 상업적 포경이 금지된 이후 한산한 어촌이 됐지만 여전히 활한치회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치는 한국에서 고급 어종인데 보통의 산 오징어는 오랫동안 아주 싼값에 팔렸다. 도시에서 산 오징어회라고 해서 1만원에 7~8마리씩 주던 시절도 있었다. 속초 같은 산지에서 사면 아예 한 박스에 1만원이었다. 이젠 오징어 어황이 예전만 못하다. 특히 산 오징어는 귀물(貴物)이다.

오징어가 비싸진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흔할 때 필자는 오히려 먹기를 꺼렸다. 주문을 하면 기계로 껍질을 벗기고, 역시 몸통을 기계에 넣어 썰어서 주는 집이 많았다. 워낙 오징어가 싸다 보니 많은 양을 제공해야 했고 당연히 사람 손으로 일일이 손질하면 시쳇말로 인건비도 안 나오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계를 이용하는데 쇳내가 나고 아주 형편없는 회가 나왔다. 오징어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회는 매운 초고추장에 아주 담그듯이 넣어야 쇳내를 가릴 수 있다. 설상가상이다. 이제는 그런 방법을 안 쓸까. 사람 구하기는 여전히 어려울 텐데 그 금속성의 ‘탈피기’와 ‘절단기’가 여전히 쓰이고 있지 않을까.

[박찬일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