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휴가철이 지나면 하룻밤 불장난으로 후유증이 남는다. 젊은이들이 여행지에서 들뜬 기분에 즐기다 덜컥 임신이 된 탓이다. 처녀 배 속에 태아가 빠끔히 들어서 엄마 눈치를 본다. 원하지 않은 잉태는 재앙이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한 번이라도 낙태 수술 경험이 있는 여성이 29.6％고, 이 중 미혼이 42%다. OECD 국가 중 최상위 순위를 자랑한다.

이런 수치가 턱이 빠지게 놀랄 일은 아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은 모자보건법상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예외적으로 의사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배우자 동의를 얻어 할 수 있다. 생명이니 윤리니 낙태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아름아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낙태율이 높다는 것은 피임을 잘 안 한다는 얘기가 된다.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니까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응하다, 임신이 된 것 같다고 하면 대부분의 남자는 일단 핸드폰 번호부터 바꾸고 잠수 탄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면 몸 한번 줬다고 순결 자체를 준 것처럼 욕을 바가지로 하는데, 몸은 준 게 아니라 함께한 것뿐이다. 어떤 바보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오빠에게 드리기도 한다. 쾌락의 흔적을 깔끔히 지우려고 낙태를 하지만 그림자는 묻히지 않고 거미가 기어가듯 스멀거린다.

낙태를 하면 몸과 마음은 엉망이 된다. 태아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물론이다. 가끔은 수술이 잘못돼 찌꺼기가 남아 균에 감염되기도 하고, 지나치게 긁어내어 자궁에 구멍이 뚫리거나 막혀 아기를 영영 갖지 못할 수도 있다.

불쌍한 건 태아도 마찬가지다. 태아는 이물질이 들어오면 살기 위해 자궁 안을 필사적으로 헤집고 다니는데 이 과정에서 여기저기 충격이 가해져 온몸이 시퍼렇게 멍든다. 자궁 안에서 우선 태아의 사지를 떼어내고 몸통을 부숴 긁어낸 후 최후로 머리를 으깨 끄집어낸다.

그렇게 꺼낸 태아들을 바로 한지에 싸서 냉동창고에 넣어 두면 죽은 태아를 처리하는 인부들이 와서 거둬 간다. 가끔 태아가 살아 있는 경우도 있는데, 곧 죽을 것이 뻔한 그 태아들은 자신을 원하지 않는 세상에서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한 채 잠시 숨을 쉬다 간다.

몸에 남는 후유증도 문제지만 자신에 대한 비하감을 느끼는 등 인간관계가 왜곡되는 것이 더 문제다. 비정한 모성이라는 죄의식을 갖게 되면 더불어 자존감이 매우 낮아진다.

상실감을 느끼며 슬픔, 공허감, 성적 장애 혹은 관계 장애, 분노 등의 정서 장애를 겪는 경우도 있고 다음 임신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거나 부부관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다시는 안 속겠다는 경계심과 당한 만큼 갚겠다는 복수심이 생겨 올바른 남성관과 애정관을 갖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 아가씨들은 그렇다 쳐도 아줌마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왜 하는 것일까? 고작 귀찮다는 이유로 콘돔 없이 덤비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게 맞다.

찰나의 쾌락을 위해 아내가 차가운 수술대에 다리 벌리고 누워 피를 흘리고, 덜 익은 내 새끼가 집게로 끌려 나오는 풍경을 맞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자가 그런 거 하나 똑소리 나게 처리 못 하고 칠칠찮다고 화내는 남편, 낙태하는 아내의 그 남편은 어떻게 생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