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베트남 여행 중 만난 일본인 히로코 언니가 그랬다. “십 년 만에 찾은 베트남 호치민은 초강대국이 되어 있었다”고. “호치민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그 시간 동안 나의 인생도 나도 모르는 사이 성장하고 발전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고. 한 지인이 미얀마 여행이 좋았던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이 나라의 미래가 굉장히 기대가 되는 여행’이었다고 답했다. 미얀마에서 협곡열차를 타고 보트에 몸을 맡기는 동안 10년 후 초강대국이 되어 있을 이 나라를 일찍 먼저 만나게 된 것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했다.

 

물 위에 뜬 멋진 하루! 인레 호수에서

 

그곳에 직접 내 두 발 닿아 보니 예상했던 기대는 저만치 멀어져 갔다. 드넓은 인레 호수(Inle Lake)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배는 가이드북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그리 환상적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렇다. 인레 호수 여행의 시작점은 냐웅쉐(Nyaungshwe) 지역이다. 호수 북단에 위치한 냐웅쉐는 여행자들을 위한 호텔과 식당, 상점 등이 제법 잘 갖춰진 곳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반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을 만한 작은 타운의 형태다. 인레 호수 보트 투어에 참가하고자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대다수로 하루 정도 냐웅쉐를 둘러본 뒤 둘째 날 보트 투어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일반적인 여정이다. 머물고 있는 호텔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보트 투어 예약을 마치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입구에서 보트 운전기사와 악수를 나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호수의 길이만 22km, 폭은 11km로 추산된다.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주변이 온통 푸른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호수가 끝나는 지점과 습지가 시작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구별하기가 어려워 그 신비로운 매력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카누처럼 생긴 작고 날렵하고 기다랗게 생긴 배는 호텔에서 십여 분 거리의 선착장에서 마주했고, 보트에 장착된 모터에서 검은 연기를 한 차례 뿜어내던 운전기사는 힘차게 ‘고(Go)!’를 외쳤다. 배는 보기와 달리 쌩쌩 잘도 달렸다. 한데 시작과 동시에 두 귓가를 쩌렁쩌렁 울려대는 엔진모터 소리와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잠깐 사이에도 살갗을 타 들어가게 만드는 뜨거운 햇빛, 게다가 넓어도 너무 넓어 이상하리만치 느껴지는 호수의 분위기는 선착장에서 출발해 한 시간을 훌쩍 넘겨 계속되었는데 그것이 몸에 와 닿는 소요시간은 몇 백 년은 족히 흐른 듯 시공간을 초월한 기분이랄까. 내 뜻과 상관없이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 한 척의 배, 한 명의 여행자, 한 명의 보트 운전기사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분이랄까. 특별하면서도 으스스한 기운이 한데 뒤섞인 상황. 그래 봤자 현실의 시간은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보트 투어의 일정은 여행사마다 대개 비슷한 편이다. 하프 데이(Half day) 혹은 풀 데이(Full day)로 구성되며 소요시간에 따라 방문하는 장소가 달라진다. 호텔에서 받은 여행 일정표에는 방문할 곳이 15곳 이상 나열되어 있었는데, 날씨의 영향으로 빨갛게 밑줄이 그어진 4곳을 제외하더라도 하룻동안 10곳이 넘는 장소를 방문한다는 것은 숨가쁜 일정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바쁜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인레 호수 위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타족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인레 호수를 운명같이 여기며 살아가는 인타족의 수는 약 1만5000여 명으로 호숫가 주변 수상가옥에 촌을 이뤄 살아간다. 이들은 매일같이 배 한쪽 가장자리에 서서 한 발로 노를 저으며 양손을 이용해 그물을 내리고 걷어내기를 반복한다. 아슬아슬하게 한 발로 노를 저으며 여행자를 향해 힘껏 미소를 내보인 인타족에게 호수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현장은 호숫가 위에 차려진 남 판(Nam Pan) 오일장으로 이어졌다. 호수 위에 이렇게 큰 장이 들어선다는 것, 게다가 인산인해를 이뤄 발 디딜 틈 없이 분주하다는 것이 우리네 오일장과 별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오일장 곳곳을 돌며 맛보고 구경하는 동안 내 두 손엔 대나무로 만든 온갖 장신구와 물레와 베틀을 이용해 만든 비단으로 짠 블라우스 한 벌 등이 잔뜩 자리를 차지했다.

 

배는 또 쉼 없이 달려 지역 경제의 주축이 되는 몇몇 워크숍(Workshop)에 닿았다. 은세공, 시가, 실크, 라이스 크래커, 나무 배, 대장간 등을 차례로 거치면서 여느 방문객들은 여행자들에게 물건을 판매하려는 장삿속 투어로 느껴진다며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장삿속이면 뭐 어떠랴. 수상가옥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것에, 이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에 황홀한 마음 금하길 없으면 그뿐. 그렇기에 인레 호수를 관광지로 여기고 방문하지는 말자. 이곳 주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면면을 바라보노라면 휘황찬란하고 멋들어진 가이드북 사진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삶은 모험이다! 협곡열차에서

 

냐웅쉐에서 바간(Bagan)까지 이동을 해야 하는데 호텔 직원은 내게 두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하나는 저녁 8시에 냐웅쉐에서 밤 버스를 타고 10시간 이동해 새벽에 바간에 도착하는 것. 아주 심플하다. 게다가 에어컨 리무진 버스가 1만5000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다른 하나는 냐웅쉐에서 뚝뚝(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쉐냐웅 기차역으로 간 다음 기차를 타고 타지(Thazi)까지 8시간을 이동해 타지에서 밤 버스를 타고 바간에 도착하는 것. 후자는 듣기만 해도 복잡하고 번거로운 여정이 느껴졌는데, 친절한 직원은 내게 쉐냐웅역에서 타지역까지 가는 동안 산 정상을 오르는 기차 밖 풍경이 엄지 손가락 백 개를 치켜세워도 모자랄 정도로 환상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뚝뚝과 기차, 밤 버스 모두를 합쳐도 리무진 버스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논리란 말인가. 어찌되었든 이럴 때마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알 수 없는 용기. 그래, 인생 뭐 별 것 있나, 여행도 뭐 별 것 있나. 엄지 손가락이 10개도 아니고 100개라는데 감을 믿어보는 수밖에.

 

목조의 낡은 간이역 하나가 서 있는 쉐냐웅역에 도착하니 티켓 창구는 닫혀 있었다. 직원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땐 아는 사람 붙잡고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방금 전 작별인사를 한 뚝뚝 운전기사를 재빨리 다시 불러 세웠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목적지인 타지! 타지! 타지!를 연신 외치고 그곳으로 가는 시늉을 몸 동작으로 표현했는데 단박에 알아 듣는다. 운전기사가 키다리 아저씨로 바뀌는 순간. 역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를 묻더니 티켓 창구 뒤쪽으로 가 유니폼을 입은 역 직원 2명을 단숨에 내 앞에 행차시킨다. 이제 그와는 진짜 작별이다. 오전 10시가 가까울 무렵 기차에 몸을 실었고 퍼스트 클래스라고 명명된 내 좌석 칸에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외국인 중년 커플이 앉아 있었다. 이 칸을 채운 건 우리 셋 뿐. 그리고 보디가드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선사해줄 역 직원 한 명이 함께였다. 기차 내부시설엔 반갑게도 한국어로 쓰여진 글씨가 여럿 보였다. 이 기차는 우리나라에서 수출된 모양이었다.

 

중년 커플은 스위스에서 왔고 은퇴한 남편을 위해 아내는 큰 맘 먹고 남편이 원하는 여정대로 따라 나선 여행이었다. 인도와 미얀마를 각각 한 달씩 여행할 계획으로 한 달간 스펙터클한 인도 여행을 마치고 미얀마에 당도한 지 3일째라고 했다. 그들의 행선지는 칼로(Kalaw). 4시간이면 닿는 비교적 무난한 기차여행이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기차 밖 풍경은 푸르른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몇 번 나무집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쳤고, 집 마당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의 환한 미소가 뚜렷이 보일 정도로 기차와 마을의 간격은 좁았다. 우리 셋은 일제히 환호성과 감동의 언어를 쉼 없이 남발했고 기차여행이 선사하는 묘미를 제대로 만끽하고 있었다.

 

푸르른 들판과 산 언덕을 지나치던 기차는 칼로에 정차한 이후부터가 하이라이트였다. 대개 많은 여행자들이 시간상 칼로까지의 여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텔 직원이 말했던 산 정상을 오르는 건 기차에 몸을 실은 지 6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시작되었다. 중년 커플이 내리고 혼자였던 기차 칸은 어느새 미얀마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진 상태. 산 속을 헤집고 오르는 기차는 인간의 발걸음 속도보다 느렸고 수 차례 쉬기를 반복했다. 기차 바로 옆은 낭떠러지였다. 아찔함을 넘어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덜컹거리는 기차가 어째 더욱 심하게 덜컹거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 깜짝할 새 기차가 옆으로 휙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두려움의 무게가 깊어질수록 내 앞, 좌우에 앉은 미얀마 사람들은 계속해서 음식을 나눠 먹고 쉴 새 없이 수다가 이어졌다. 별 것 아니라는 듯, 으레 일상이라는 듯 그들 모습은 말하고 있었다. 오후 6시가 되어 날은 저물자 차창 밖은 금세 암흑을 맞이했고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는 낯선 이방인이 또 다른 두려움을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호텔 직원과 역 직원이 말했던 시간과는 달리 12시간을 꼬박 달린 기차는 밤 9시가 넘어서야 타지역에 도착을 알렸다. 모험으로 점철된 또 하나의 삶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Travel Info

찾아가기 인천공항에서 미얀마 양곤까지 비행기를 이용하자. 양곤에서 인레 호수 여행의 시작점인 냐웅쉐까지는 국내선 비행기, 버스, 기차를 이용하면 되는데, 비행기의 경우 냐웅쉐 주변 헤호까지 이용한 뒤 한나절 가까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양곤에서 버스를 타면 인레 호수까지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인레 호수 주변은 고산지대라 아침 저녁 쌀쌀한 날씨를 보이는 편. 긴팔 옷 준비는 필수. 냐웅쉐를 기점으로 타지까지 기차여행을 하려면 냐웅쉐에서 뚝뚝(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쉐냐웅역으로 향한 뒤 매일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 30분 사이 운행하는 타지행 기차를 타면 된다.

 

글 추효정│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5.01.28│기사입력 2015.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