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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의 사진가 배병우의 삶을 보고 싶어 헤이리로 찾아 갔다. 그의 스튜디오는 작은 도서관을 연상케 했다. 서재엔 일련번호가 찍힌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배병우 작가는 책 이야기부터 꺼냈다.

“책 읽는 것은 좋은 현상 아닌가. 그래서 네이버가 ‘지식인의 서재’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100권의 책을 선정해 달라기에 110권을 뽑아줬다.” 그 목록엔 사진 관련 책들도 많았지만 펑유란의 `간명한 중국철학사`를 비롯해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귄터 그라스의 `넙치`,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임어당의 `장자가 노자를 이야기한다`, 한승원의 `추사`, 베른하르트 카이의 `항해의 역사`, 동기창의 `화안(畵眼)` 등 다양한 부류의 책들이 포함돼 있었다. 철학이나 역사 관련 책들이 많은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실제로도 그처럼 다방면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고 했다. “나의 DNA는 소나무이니 소나무 대가인 전영우 교수의 책은 물론 읽었고, 패션 사진가 헬무트 뉴튼의 책도 읽었다.박노해나 김훈 등 동시대 사람들과도 친하고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 많이 읽는데 향토의 역사나 중국 미술사 등 닥치는 대로 읽는다. 만화책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뒷방으로 들어간 그는 허영만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들고 나왔다.
“영만이 형 만나서 얘기하려면 읽어야지.”
알고 보니 배병우는 허영만 화백의 동향 후배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음식에도 조예가 깊었고 음식 관련 책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모았다.세계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이라는 스페인의 엘불리를 소개한 `엘불리에서의 하루(A Day at El Bulli)`란 책도 보여줬다. 그런 독서에 힘입어서인지 그는 지금까지 모두 열일곱 권의 책을 냈다. 그중엔 외국에서 최고의 책으로 꼽힌 것도 있다. 3년 전 독일에서 출간된 `Sacred Wood(성스러운 나무)`는 그해 독일에서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1998년 내놓은 `종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100권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사진가인 그가 이처럼 책과 가까워진 데는 다 까닭이 있다.

“나의 사진은 저널리즘과는 다르다. 나는 미대를 나와 조형미술을 이해하고 있다. 여기선 인문학적 기본소양이 있어야 자기 생각을 견지할 수 있다. 문학·미술·음악·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소양이 있어야 자기의 철학을 세울 수 있다.”

배병우의 수첩을 엿보다

메모를 꼼꼼히 하기로 소문난 그의 수첩 한쪽엔 그의 철학이랄까, 좌우명 같은 게 빼곡히 적혀 있다. 그중에서도 그가 첫 번째로 꼽는 좌우명은 중국 10대 명필 중 하나인 동기창(董其昌)의 `화안(畵眼)`에 나온 대목이다.
‘예술가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은 타고나는 것이다.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길을 걸으면 얻을 수 있다.’ 그는 이를 타고 나더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타고나지 않았다면 엄청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그도 예술가의 기운생동을 타고났을까.
“나는 자연 속에서 자랐다. 여수의 아름다운 곳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내가 자유롭게 자라도록 만들어줬다. 여수에서 제일 큰 책방이 중앙서점인데 지금도 가면 책을 사곤 한다.”
크레용과 그림물감을 들고 섬과 섬 사이를 누볐던 배병우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란 책에서 ‘소나무 작가로 알려졌지만 난 본능적으로 바다가 좋다. …나에게 바다는 고향이고, 나의 영감의 원천이며,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라고 썼다. 예술가 배병우는 어려서부터 예고돼 있던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수첩에 여러 명문을 적어 놓았는데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라고 했다. 또 카잔차키스의 책에 나오는 대목도 아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20~30대 때 카잔차키스를 읽었는데 지난 해 다시 읽으니 아주 좋았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얼마나 멋진가.”

그는 공자를 인용해 예술에 대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공자는 ‘도에 뜻을 두고 덕을 바탕으로 해서 인에 의지하고 예술의 세계에서 노닐었다’고 했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 이상이 예술이란 얘기다.
”그렇지만 배병우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는 결단의 리더로 불리는 쿠빌라이의 한 마디를 적어 놓은데 녹아 있는 것 같다. ‘진정한 결단 하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려라.’
그가 대학에서 만나 예술 활동의 동반자이자 원조자로 삼은 부인은 십수 년 전 이승을 떠났다. 그 슬픔을 배병우는 스튜디오 벽 한 귀퉁이에 적어 놓았다.
‘난 40여년을 카메라를 메고 빛과 바람 속을 헤매었다. 덕분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고 또 보상받았다. 그러나 정작 보상받아야 할 사람은 먼저 갔다. … “제발 술 마시지 않는 하루라도 맨 정신으로 와라”고 하던 그녀는 갔고 나는 아직 맨 정신이 아니다. 아침 카메라를 메고 해변과 들판을 헤매면 술에서 깨어나고 저녁은 취중이다.’
“당신이 세계적 작가가 되도록 돕고 싶다”던 부인을 챙기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던 배병우. 진정한 하나(예술)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기에 그의 작품이 더 위대한 것 같았다.

세계가 주목하는 사진가

그래서인지 세계가 그를 주목한다. 그만큼 그는 약속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다녀왔다. 친분이 깊은 벨기에 귀족이자 세계적 컬렉터인 악셀 페어부르트(Axel Vervoordt)가 그룹전을 기획했는데 나는 ‘오름’을 전시했다. 경주에선 세계관광기구(UNWTO) 총회가 다가오는 2월26일 열리는데 그에 앞서 지난 10월부터 2월26일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거기에 노영심이 와서 연주를 하고 가기도 했다. 얼마 전엔 동성고에서 외국인 무료 진료를 하는데 노영심이 후원해 음악회와 자선경매를 한다기에 사진 한 점을 내놓았다. 서로 부조를 하는 거지.”

얼마 전 뉴칼레도니아에 다녀와 자선전을 열기도 했던 그는 이스탄불과 파리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동안 진행했던 스페인 작업은 마무리가 됐다고 밝혔다.
“스페인 작업은 모두 끝났다. 3년 동안 작업했다. 창덕궁과 같이 전시도 했고. 스페인에서 작업할 때 알람브라 궁전에 갇히기도 했다. 한창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곳 직원들이 축구 경기를 보려고 문을 잠그고 모두 퇴근해버린 거지.”
그만큼 배병우는 스페인에 정이 들었다고 했다.
“그라나다엔 단골집이 서울보다 많다. 서울에선 맥주 한잔 하려고 해도 몇 천 CC씩 주문해야 하고 안주도 계속 시켜야 하는데 거기는 잔술 문화다. 맥주 한 잔 시키면 적당히 안주를 준다. 서서 가볍게 마실 수 있고 바가지도 씌우지 않지. 우리 대폿집 분위기가 나는 곳이 많은데 환영도 하고 서비스로 한 잔씩 주기도 한다. 3년 전 그라나다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70명이 함께 축하하려고 갔다. 친구며 후배들이 대거 갔는데 여관비며 밥이며 모두 내가 냈다. 손범수, 진양혜, 노영심, 황두진(건축가) 등과 가서 알람브라 궁전에서 파티를 여니 모두들 왕 같다고들 했지.
스웨덴 소나무를 찍을 것이라던 그의 얘기가 생각이 나서 물었다.
“한국 여자 중에 스웨덴 귀족과 결혼한 사람이 소개해 그곳에서 전시를 했다. 스웨덴에 가면 그 귀족 집에서 묵는데, 스웨덴은 소나무가 30%나 된다. 그래서 하기로 했는데 언제 할지 아직은 미정이다.”

내 작품의 기본은 한국

외국 여러 곳을 찍었지만 배병우는 자신의 기본은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스물아홉부터 제주도를 찍었다. 제주도를 잘 나타내는 게 뭐야. 흔히 돌, 바람, 여자라고 하잖나. 돌, 바람에 여자 대신 오름을 찍었다.” 그는 내년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의 후원으로 제주도를 주제로 한 책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서 사장 참 대단한 사람이다. 2005년에 `청산에 살어리랏다`란 책의 출간을 후원했는데 거기에 무엇을 넣어 달라는 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2009년 한미 정상회담 때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물한 책이지.”
그래서 제주도를 주제로 한 책엔 차밭과 차박물관을 넣을 것이라고 했다.

그를 상징하는 소나무는 경주 남산에 있다. 경주엔 언제부터 갔을까.
“경주는 서른셋부터 찍었다. 석굴암 본존불과 경주의 옛 모습 등을 담았지. 경주는 신라 56대의 왕이 머물던 곳이다. 왕릉만 스물셋이고 김유신묘 등 능이 널려 있다. 조각은 신라 조각이 최고다. 이후 더 나은 게 없어. 고려에선 불화가 최고이고 조선은 회화가 그런데 그중에서도 겸제 정선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알람브라 궁전도 찍었지만 그는 건물 중엔 신라 불국사가 최고로 아름답다고 했다.
“아마 작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같다. 큰 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는 앞으로도 경주에선 더 작업을 할 것이고, 제주도 작업은 2012년에 마무리해 5년 후 전시할 예정이며, 3년 후엔 남해안 시리즈를 전시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작업 스케줄이 꽉 차있는 셈이다. 너무 바빠 대학 강의는 중단한 상태다.
“내 나이가 예순 하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찍겠나. 10년은 남았을까.”
세계적 아티스트가 됐지만 그는 정점으로 가는 길이 남아 있다고 했다. 세계적 미술관들이 경쟁적으로 그를 찾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사진가로 우뚝 서는 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 작품가는 8천만원선

그런 그가 한국 사진을 어떻게 보는 지 궁금했다.
“한국은 시장이 크지 않고 아직 스타작가가 없다. 일본은 스키모토 히로시 정도고 독일은 대여섯 명 정도가 있는데, (한국에선) 외국서 팔리는 사람은 나와 한두 명 정도 있을까.”
배병우의 작품은 스타일을 인정받아 외국 거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시슬리나 까르띠에, 루이비통, 자라, 망고 등의 오너들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은 대략 5만 유로 선을 호가한다. 사진 한 점에 7500~8000만원 정도라면 대단한 수준 같은데 그는 “중국에선 그림 하나에 100억씩 주고 사주기도 한다”며 기업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잘 되려면 예술가가 대접을 받아야 한다. 문화예술이 활성화돼야 국가의 미래가 보장되고 사회가 건강해진다. 모차르트 축제에서 내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하나로 250년을 먹고 산다. 한 달 동안 방이 없을 정도다. 이처럼 문화예술 스타를 만들어야 롱런할 수 있다. 문화예술 스타가 있으면 문학의 밤도 만들고 예술의 밤도 만들 수 있지 않나. 기업이 투자해 세계적 아티스트가 나와야 한다. 문화 국격이 올라가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개인적으로 그는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종묘를 출간했고 아모레퍼시픽 후원으로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출간했으며 스페인 그라나다의 후원으로 알함브라궁전까지 찍었다.
그런 그도 15년 전까지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84년 낙산사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소나무를 보고는 아, 저것이다. 저게 한국이구나 하고 순간적으로 느꼈다.’(`빛으로 그린 그림`에서) 그렇게 소나무와 조우한 배병우는 좋은 소나무를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맸다. 그러다가 경주 남산의 소나무에서 해답을 찾았다.
‘사진에 잘 맞는 소나무는 안강송이다. 안강송은 경주 안강 부근에서 서식하는데 구불구불하게 자라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졌다.’
‘나는 연약한 소나무의 모습보다는 좀 더 강한 소나무의 형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경주의 소나무 사진을 보면 전통의 정서인 ‘한’보다는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소나무지만 초기엔 냉대에 직면했다.
“시대에 한물간 것을 찍는다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그런 것을 찍느냐고. 오기가 났다. 두고 보자고 했다.”

그의 진가를 세상에 알린 곳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이었다.
“1995년과 1996년 일본서 전시했다. 일본국립미술관서 한국 작가 10명을 선정해 전시회를 열었고 사립인 미토미술관서 한국 작가 5명을 뽑아 전시회를 열었는데 두 곳에 모두 출품했다. 거기서 한순간에 떴다. 그들은 나를 ‘미스터 마쯔(Mr. 松)’라고 불렀다.”
그가 소나무로 뜨자 소나무를 찍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는데 그는 “각자의 길을 가야 살아남는다”고 충고했다. 자기 생각을 갖고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가가 최고로 비싼 독일의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나 여성을 주로 찍은 헬무트 뉴튼(Helmut Newton)의 예를 들었다.
“예술 사진이 팔리는 게 아니다. 좋은 사진이 팔리는 것이다. 헬무트 뉴튼은 바람둥이처럼 지내며 일생동안 여자만 찍었다. 그게 팔린다.”
예술의 길을 걷는 후학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는데 그의 답은 단호했다.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남의 길을 가지 말고 독자적 세계를 창출해야 아티스트다.”


사진가 배병우는

호주 국립미술관이 177년 사진 역사를 기리며 선정한 ‘세계 100명의 사진가’에 선정됐다. 대영박물관 관장까지 그의 작품을 좋아할 정도.
영국의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소나무 사진을 구입했고 시슬리나 까르띠에 등 세계적 브랜드의 오너들도 그의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이자 팬이다.
지난 2009년 한미 정상회담 땐 한국 정부가 그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시는 2010년 축제 포스터와 프로그램북 등에 그의 사진을 쓰기도 했다. 1950년 여수 출생.

포토샵을 한다? No
그는 사진을 만들지 않고 트리밍도 하지 않는다. 조형을 중시하는 그는 오랜 시간 관찰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의 사진은 결정된다. 그가 하는 것은 톤 조절 정도 뿐.

유도 선수였다? Yes
아버지 할아버지 모두 유도를 했다. 그 역시 젊어서 유도를 열심히 해 장학생으로 체육대학에 갔을 정도다. 그런데 학교를 때려치우고 삼수를 해서 미대에 갔다.
그는 유도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요리사다? Yes
인터뷰 도중 냉장고를 열어 와인과 간단한 안주를 내놓을 정도다. 재료의 특성을 살려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데 고등어 샌드위치는 그가 내세우는 요리 가운데 하나다. 요리나 사진 모두 창작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아침형 인간이다? Yes or No
자기 사진의 3분의 1은 새벽에 일어났기에 가능했다고 할 정도니 새벽형이랄수도…. 매일 새벽 3시 일어났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늘 새벽에 촬영을 떠난다.

달필이다? Yes
좋아하는 글씨체가 있어서 흉내를 내다가 바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글씨에 일가견이 있다. “왕희지가 모범생체인데 김생이 한국에선 모범생체이다. 그런데 김생의 글씨가 더 나은 것 같다.”

부자다? Yes or No
괜찮은 차에 번듯한 스튜디오까지 갖췄다. 그러나 사진이 비싸게 팔린다지만 떼돈 벌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저 작업에 지장이 없을 만큼 파는 수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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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건 기자 / 사진 정기택 기자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2.01.27기사입력 201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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