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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수박’의 어원은 ‘물 많은 박과 작물’이라는 뜻이다. 오이, 참외, 호박을 비롯해 박과 작물이 여럿 있지만 수박만큼 수분 함량이 많은 열매도 드물다. 영어 이름, 워터멜론(Watermelon) 역시 문자 그대로 수박이라는 뜻이다. 멜론 역시 박과 작물이기 때문이다. 반면 수박의 옛날 한자 이름은 서과(西瓜)다. 물론 수박이라는 뜻에서 수과(水瓜)라고도 했지만 서과라는 명칭이 더 보편적으로 쓰였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수박을 서과라고 부른다. 서쪽에서 전해진 박과 작물이라는 의미다.

 

굳이 특별할 것도 없는 수박의 어원을 따져보는 것은 서과라는 수박의 한자 이름 때문이다. 수박이라는 과일이 어떻게 우리 입에 들어오게 됐는지 천로역정의 과정이 담겨 있다. 지리상의 전래 과정을 뛰어넘는 작물의 경제사다.

 

조선시대 수박 도둑은 엄벌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말” 조선 초기 세종대왕 시절의 수박 값이다. 기록상으로는 정확하게 1441년의 시세다. 쌀 다섯 말이면 지금의 물가수준으로 환산했을 때 대략 10만원을 조금 넘는다. 수박 한 통이 10만원이라면 지금도 수박이 아니라 금가루를 뿌린 ‘금박’이라고 아우성을 칠 만한 금액이다. 이제는 “콩밥 먹는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교도소에서까지 100% 쌀밥을 줄 정도로 쌀값이 떨어진 요즘도 이 정도인데 지금보다 쌀이 훨씬 귀했을 조선 초기에 수박 한 통 값이 쌀 반 가마니였으니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고가였다. 수박 값이 이 정도였으니 단군 이래 최대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마저도 수박 도둑에 대해서만큼은 화를 참기가 힘드셨던 모양이다.

 

수박 도둑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벌을 내렸다. 세종 5년, 주방을 담당하는 한문직이라는 내시가 수박을 훔치다 들켰다. 수박을 훔친 죄로 곤장 100대를 때리고 영해로 귀양을 보냈다. 옛날 한양에서 경상북도 영해까지는 가는 길이 보통 험난한 것이 아니었으니 수박 한 통 훔쳐 먹고 꽤나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세종 12년에 또다시 궁궐에서 수박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궁중에서 쓰이는 물품을 관리하는 관청인 내섬시에서 일하는 관리 중에 소근동이라는 자가 수박을 훔치다 발각됐다. 형조에서 임금에게 장계를 올려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궁중에서 쓸 물건을 관리하는 자가 오히려 그 물건을 훔쳤으니 참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마침 썩은 수박을 훔쳤으니 목숨은 살려주는 대신 곤장 80대를 때리고 얼굴에 도둑이라는 문신을 새기겠다는 것이다. 장계를 본 세종이 곤장 80대만 때리고 얼굴에 새기는 문신은 면제해 주라며 처벌 수위를 낮췄다.

 

그래도 곤장 80대는 간신히 죽지 않을 정도까지 맞는 수준이다. 수박 때문에 두 번 죽은 관리도 있었다. 연산군 10년, 사헌부 고위 관리였던 김천령이 효수형을 당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자세한 내용이 보인다.

 

“내가 일찍이 중국의 수박(西瓜)을 보고 싶어 했는데 김천령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임금이 다른 나라의 진귀한 물건을 구하겠다는데 신하가 어찌 감히 그르다고 말하는가? 천령을 효수해 전시하고 자식은 종으로 삼으라.”

 

연산군이 얼마나 분했는지 한 해 전에 사망한 김천령의 무덤을 파내어 시신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의 형벌을 내린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2년 전, 연산군이 북경으로 가는 사신에게 수박을 구해오라고 했는데 김천령이 먼 곳의 물건을 억지로 가져오는 것은 옳지 않을 뿐더러 몇 개월이 걸리는 길에 반드시 상할 것이니 우리나라에 이익이 없다며 반대를 한 적이 있었다. 연산군이 김천령을 부관참시한 까닭은 정쟁과 관련이 있지만 처벌의 명분으로 수박을 꼬투리로 삼았을 만큼 수박은 귀중한 과일이었다.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말 가격에 육박하고 수박 때문에 사람이 살았다 죽었다 했던 배경이다.

 

고려 때 전해졌다는 기록

 

지금은 날씨가 더워질 때면 참외와 함께 가장 흔하게 먹는 과일이 수박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초기에는 수박을 왜 그렇게 소중한 보물처럼 여겼을까?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조선 초기인 세종 무렵은 한반도에 수박이 전해진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다. 수박은 우리 토종 과일이 아니라 서과(西瓜)라는 한자 이름처럼 서쪽에서 전해진 식물이다. 원산지가 아프리카 북부의 이집트와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실크로드를 타고 동양에 퍼졌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 후기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옛날 채소나 과일과 같은 식물 종자는 외국을 여행하다 맛있는 작물이 있어 종자를 얻어 가지고 와서 심는 것이 아니다. 원산지에서는 식물 종자가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단속했다. 이 때문에 몰래 훔쳐 오거나 전쟁을 통해 빼앗아 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대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신제품을 만들어 큰돈을 버는 것처럼 옛날에는 새로운 종자를 구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 때 문익점이 붓 뚜껑에 목화씨를 숨겨 몰래 들여온 과정이나 서양의 대항해 시대 때 동양으로 향신료를 구하러 와서 유럽인들이 향신료와 함께 제일 먼저 챙겨간 것도 각종 식물의 씨앗이었다. 수박도 전래 동기가 비슷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중기 광해군 때 허균이 남긴 <도문대작>에 수박이 어떻게 전해졌는지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허균은 고려 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종자를 가져와 고려 수도 개성에 수박을 심었다면서 아마 홍호(洪皓)가 강남에 들여온 것보다 먼저일 것이라고 적었다. 홍호는 중국 송나라 사람이고 강남은 서울의 강남이 아니라 중국 양자강 이남이다. 그러니까 홍다구가 고려에 수박을 전한 것이 중국 송나라보다 빨랐을 것이라고 추정한 것이다. 고려와 송나라 어느 쪽이 빨랐는지를 떠나 수박이 동양에 소개된 역사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씨앗을 가져와 개성에 처음 수박을 심었다는 홍다구(1244~1291)는 고려 출신의 몽골 장군이다. 고려 고종 때 태어나 충렬왕 때 사망한 인물로 할아버지가 고려 고종 때 원나라에 투항했고 아버지는 몽골이 고려를 침략할 때 앞장서서 길 안내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런 홍다구가 수박 종자를 개성에 가져와 심은 까닭은 개인적으로 맛있는 수박을 먹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고 아버지, 할아버지 나라의 동포에게 낯선 이국 과일을 소개하고 싶어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그때까지 수박이 없었던 고려에서 수박 재배에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세종 무렵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말 가격에 버금갈 정도로 비쌌던 까닭이 무엇일까. 수박은 아프리카 북부에서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반도로 전해진 경로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주로 사막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지금은 품종개량을 통해 재배지역이 넓어졌지만 옛날 수박은 비가 내리지 않고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모래땅에서 재배했다.

 

이 때문에 사하라 사막지역에서 중동의 사막을 거쳐 중국 신장의 타클라마칸 사막과 몽골의 고비사막을 거치면서 동북아 지역으로 전해졌다. 이런 수박을 개성에 처음 심었으니 재배가 쉽지 않았다. 세종 때 수박 값이 그렇게 비쌌다는 이야기는 홍다구가 처음 씨앗을 가져온 후 100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성종 때 인물로 무오사화의 도화선이 된 점필재 김종직은 그가 남긴 시에서 수박은 거친 파도를 무릅쓰고 가져오는 과일이기에 신선들이나 먹는 과일이지 보통 사람들이 함부로 먹는 과일이 못 된다고 읊었다. 시적 표현이지만 성종 때까지도 수박 구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수박은 탐관오리들에게는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수박을 재배하는 일반 민초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이 남긴 시에 수박재배 농민의 고충이 담겨 있다.

 

“호박 심어 토실토실 떡잎이 나더니/밤새 덩굴 뻗어 사립문에 얽혔다/평생토록 수박 심지 않는 까닭은/아전 놈들 트집 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서라네.”

 

수박은 사실 근대까지도 귀했던 과일이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참외는 평민의 과일, 수박은 양반의 과일이라고 한 것으로 보면 근대 초기에도 수박의 수확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수박의 한자 이름 서과(西瓜)에는 이렇게 수박이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험난한 경로가 담겨 있다. 수박이 싸고 맛있어지는 계절이 됐다.

 

윤덕노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5.07.14기사입력 201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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