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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30~40년 전 국내 대기업 공채 면접 때 관상가가 면접위원 중 한 사람으로 배치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회사만의 뚜렷한 채용 방침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을 방지하기 위해 역술인의 힘을 빌렸던 것이다. 요즘에는 사옥 이전이나 신사업 진출과 같은 과정에도 역학 전문가들이 개입한다고 한다. 산업 내 경쟁이 극심해지고 회사의 성공을 좌우하는 지표도 다양해지면서 '운'이 중요하다고 믿는 경영자가 많아진 탓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분야는 단연 사주(四柱)다. 인간의 운명을 일종의 확률 통계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역학(易學)의 한 장르다. 사주는 60갑자(甲子)를 음양오행(陰陽五行)과 결합하여 그들 간 조합이 나타내는 형상과 상호 작용에 의해 사람의 성향과 관계, 그리고 복과 화 등이 결정된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이 조합에 의한 경우의 수가 51만여 가지가 된다고 한다. 일종의 빅데이터이자 동양판 성격심리학(personality psychology)이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점액질, 담즙질과 같은 체액의 성분 조합에 따라 인간의 성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의 유형을 구분하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는 예나 지금이나 꾸준한 듯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사주'가 어떤 데이터 속성을 갖고 있는지 짚어보자. 올해는 병신(丙申)년이다.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병(丙)은 큰 불 또는 태양과 같은 기운을 뜻하고, 신(申)은 간지(干支)상으로는 원숭이지만 오행으로는 금(金) 또는 보석과 같은 작은 돌을 의미한다.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임진(壬辰)월이다. 임(壬)은 큰 물을, 진(辰)은 땅에 해당한다. 같은 방식으로 날짜와 시간에도 각각 글자 2개씩 오행의 원리를 적용하여 총 8가지 글자가 기초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이런 연월일시(年月日時)의 흐름과 속성 그리고 개개인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의 조합에 따라 발생하는 가능성의 집합이 바로 사주팔자(四柱八字)다.

 

이 사주팔자를 집대성한 인물은 점술가가 아니라 한 조직의 의사결정자였다. 중국 명나라의 개국공신이자 재상이었던 유기(劉基)라는 인물이다. 그는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을 도와 원(元)을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숱한 인간 군상을 관찰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에 기여할 만한 인재들을 찾고 등용하기 위해 오행에 기반한 데이터를 분석·적용했다. 유기가 쓴 적천수(滴天髓)는 지금도 역학 분야의 바이블로 손꼽힌다. 이런 '데이터 사고(data thinking)'를 바탕으로 유기는 명나라의 법제도와 경제 정책의 틀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유기의 사주팔자로도 통제 불가능한 현실이 있었다. 바로 황제 주원장의 '마음'이었다.

 

유기는 이런저런 관찰을 통해 주원장이 매우 의심이 많고 부하를 시험하기 좋아하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통치에 필요한 조언을 제공하되 스스로 몸을 낮추는 처세를 했다. 주원장은 그런 유기의 겸손함을 좋아했지만, 또 속을 알 수 없는 듯한 태도에 계속 불만을 품었다. 유기는 국정의 중심에는 서 있으면서도 권력에서는 멀어지고자 했다. 그리고 주원장과 공신들 간의 미묘한 긴장 상태에서 관조적 입장을 취했다. 유기의 데이터 분석은 '나서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관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입견이 그의 적극적 행동을 막았던 것이다.

 

결국 주원장은 신하들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고민 끝에 '공신 숙청'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유기 또한 그 과정의 간접적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조직 운영을 방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주와 같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 결정은 정말 유용하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 때때로 일련의 자료가 리더 자신의 결정 장애와 비적극성을 옹호하는 도구로도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미래 예측 자체보다 더 강한 힘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경영자들이 주지할 필요가 있겠다.

 

 

 

천영준 연세대 미래융합연구원 책임연구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04.15기사입력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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