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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가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69년 김광섭이 쓴 `저녁에`라는 시(詩)다.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는 이 시를 이국땅에서 읽자마자 붓을 집어들었다.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이 마지막 구절을 화제(畵題)로 삼아, 2m가 넘는 커다란 캔버스에 점을 찍기 시작했다. 그 점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 점의 수만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컸을까. 혼신의 힘을 기울여 1970년 완성한 이 그림을 수화는 이례적으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하고는 대상을 받았다. 수화는 당시 지구 반대편인 미국 뉴욕에서 하루 16시간, 온종일 작업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뿔뿔이 흩어졌던 김환기 주요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4점도 일반에 선을 보인다. 무려 65점으로 김환기 화업을 총정리하는 회고전 성격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는 6일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전(展)을 연다. 2010년 박수근과 2011년 장욱진에 이은 세 번째 거장전이다. 수화가 캔버스에 빚어낸 서정성과 아름다움이 관람객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40~50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수화는 `국민화가` 박수근 이중섭과 동시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궤적은 확연히 달랐다. 구상에서 시작해 추상으로 영역을 확대했으며 작품 크기도 동시대 화가들에 비해 크다. 그가 남긴 유화만 1000점에 달할 정도로 다작(多作)을 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한국의 피카소`다. 박수근과 이중섭이 남긴 작품 수는 유화 기준으로 각각 200여 점과 500여 점이다. 특히 그의 작품은 토속적인 한국 정서를 대변하는 박수근 이중섭과 달리 모던하고 세련돼 세계 정서까지 아우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지난해 그의 작품이 홍콩 크리스티 이브닝 경매에서 여러 번 경합을 거쳐 낙찰된 이유다. 수화의 국제적 감각은 그가 어려서부터 일본에서 공부하고, 화가로서 인정을 받은 뒤에는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 머물며 부단히 새로운 화풍을 모색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그는 전남 신안군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멋쟁이였다. 키 180㎝가 훌쩍 넘는 장신에 악기를 잘 다뤘으며 글까지 잘 썼다. 조선 백자의 순박한 아름다움을 알린 이도 그다. 그는 생전 "글을 쓰다가 막히면 옆에 놓아둔 크고 잘생긴 백자 항아리 궁둥이를 어루만지면 글이 저절로 풀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1950년대 그의 화폭에는 달항아리와 함께 매화와 학 달 산이 자주 등장한다. 6ㆍ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그는 해군 종군화가로 활약했다. 1951년 그린 `피난 열차`는 당시 피난 상황을 단순한 화면 구도 속에 인상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수화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그의 둘째 딸인 김금자 씨는 최근 전시를 둘러보고 "아버지 그림을 보며 깜짝 놀랄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점과 선에 천착한 말년의 그림을 본 딸은 "답답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는 말도 보탰다. "남들이 보면 희열에 차서 점을 찍는다고 말하겠지만 딸 관점에서 보면 점을 찍으면서 병을 얻으신 것 아닌가 생각돼요. 하루 16시간 점을 찍다 보니 목에 디스크도 오고…." 김씨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뉴욕에 계실 때 편지를 보내셨는데, 낮에는 태양볕이 아까워서, 밤에는 전깃불이 아까워서 그리고 또 그렸다는 내용이 있었지요." 딸의 말대로 61세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수화의 삶은 붓 들고 그림 그리는 일이 전부였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글로 예술론을 피력했다. "예술에는 강력한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예술은 이론을 추월하는 데 묘미가 있다."

전시와 맞물려 마로니에북스는 김환기 그림 140점을 수록한 영문화집을 낸다. 전시는 2월 26일까지. 일반 관람료는 5000원(청소년은 3000원). (02)228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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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휘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2.02.03기사입력 20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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