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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동해안 자전거도로를 택한 생 초보 자전거 여행자의 두 번째 이야기.

바다를 따라 달리는 낭만적인 자전거 여행을 꿈꿨던 필자는 기대와 달리 첫날부터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욕을 주워 담느라 혼을 뺐다.

 

예상치 못한 고난과 잔인함을 목격하는 것에서 여행은 출발했지만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순간은 이번 여행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던 끔찍한 순간도, 여러 차례 장대비가 쏟아져 우울함이 찾아온 순간도, 여자 혼자 자전거를 탄다는 타인의 편견에 맞서야 했던 순간도 이제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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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하나 없는 반암리 마을에 들어섰다, 동해안 자전거 여행의 출발점 부구터미널

 


▶서울로 가는 길, 자전거를 택했다

 

고민이 시작됐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미션을 완수하고 나자 이제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 자전거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선택은 한 가지였다. 부산에서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것.

헌데 욕심이 생겼다. 자신감도 붙었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같은 경로로 되돌아가는 것, 울산과 포항을 거쳐 동해로 가는 것, 남해로 내려가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는 것.

고민 끝에 동해 바다를 벗삼아 자전거 여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옵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산 을숙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장장 720㎞에 달하는 동해안 자전거길 조성사업이 실행 단계에 있다.

현재 개통된 구간은 경북 울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지는 약 250㎞의 도로다.

자전거도로가 아직 개통되지 않은 부산에서 울진까지의 이동 방법을 택해야 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한번에 이동하느냐, 국도를 이용해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이냐 고민했다.

두 가지 중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도중 한두 시간 국도를 탄 경험으로 미뤄볼 때 국도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이 따랐고, 선택은 자연스레 전자가 됐다.

 

 

▶혼자가 때론 좋다! 혼자도 나쁘지 않다!

 

지도에서 동해안 자전거도로가 시작되는 울진 고포항 주변 버스터미널을 검색했다.

고포항에서 남쪽으로 6㎞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부구터미널이 동해안 자전거 여행의 출발점이다.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부구터미널까지는 완행버스를 타야 했다.

고속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텅텅 빈 버스 앞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자전거 여러 번 실어봤지만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경우는 처음 보네요. 왜 혼자예요?”

 

빨간 불이 켜져 잠시 도로에 정차한 버스운전사는 이때다 싶어 뒤를 돌아 힐끔 쳐다본 뒤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여행하는 내내 길에서 사람을 만날 때면 하루에도 수차례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혼자’, ‘여자’, ‘자전거’ 이 세 단어의 조합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이 세 단어를 묶을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왜’라는 질문뿐이었다.

 

‘왜 여자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모르겠다.

‘왜 이리 사서 고생을 할까’ 싶다가도 ‘왜 이토록 좋은 경험을 겁냈을까’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 속을 오가기 때문이다.

 

“혼자가 때론 좋기도 할 테지.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안 그래요?”

 

대답할 새도 없이 버스운전사는 곧장 화제를 바꿨다. 우르르 떼를 지어 다니는 자전거족에 대한 얘기였다.

 

“글쎄, 한번은 버스 짐칸에 자전거 10대를 실어본 적이 있다니까. 그 정도로 인원이 많으면 버스를 대절하거나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고속버스를 이용하겠다고 생각한 그 사람들도 참 뻔뻔하지만 또 그 많은 걸 다 싣겠다고 나선 나도 바보지. 도로에 기다랗게 줄지어 자전거를 타는 단체 여행자들을 볼 때면 아찔할 때가 많아요.”

 

‘왜 혼자냐’는 물음에서 시작된 대화는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혼자도 나쁘지 않다’는 뜻밖의 결실을 맺고 있었다. 생산적인 대화였다.

 

버스에 올라탄 지 5시간 30분을 꽉 채운 시각, 목적지 부구터미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줄 건 없고 이거라도 받아요. 매일 부산에서 속초까지 버스로 오가니까 속초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다시 만납시다. 자전거 타고 가는 아가씨 보면 내가 먼저 버스 세우고 인사할 테니.”

 

물 한 통을 건네 받으며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절대 이런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없었을 거라고.

 

식당과 김밥집 사이에 자리한 부구터미널은 버스터미널이라기보다 상점에 가까웠다.

얼핏 간판만 보면 양 옆 밥집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켰고, 나는 도착 즉시 텐트를 칠 만한 곳부터 찾아 나섰다.

울진북로를 타고 고포항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흥부만세공원을 지나 짧은 언덕 하나를 넘으니 나곡리 마을이 나타났다.

바다를 배경 삼아 일렬로 집이 늘어선 작은 어촌이었다.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단박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 놓인 정자며, 바닷가 모래사장이며, 잔디밭에는 죄다 ‘텐트 설치 금지, 야영금지’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그간 여행자들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몸살을 앓았던 걸까.

아니면 대부분의 집 대문 앞에 내걸은 ‘민박 가능’ 운영을 위한 전략인 걸까.

목 좋은 모래사장을 뒤로 하고 몇 차례 마을을 돌고 또 돌아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마당 있는 집을 발견했다.

주인 부부는 마당에 벌레가 많아 옥상에 텐트를 치는 게 오히려 안락하니 좋을 거라고 채근했다. 그

러나 저만치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싶었다. 고집대로 마당에 텐트를 쳤다.

파도가 부서지는 밤, 그제서야 동해안 자전거도로에 당도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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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게 만든 삼척 구간 라이딩

 


▶삼척, 너를 어찌하면 좋으랴

 

일출과 함께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는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눈을 뜨자 나를 반긴 건 텐트 천장을 오롯이 감싸고 있는 벌레들의 출현이었다.

천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내부로 들어올 수 없어 천만다행이었지만 수십 마리가 동시에 뽐내는 자태를 보고 있노라니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책으로 천장을 여러 차례 두들겼다.

내 펀치에 놀랐는지 벌레들은 우수수 떨어져 나갔고, 텐트 천장은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아침밥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주인 부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인사말뿐이었다.

앞으로도, 그 다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일일 것이다.

 

나곡리 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생각지도 못한 고난은 시작됐다.

인적 하나 없는 도로 위를 달리는 두려움을 떨쳐내기가 무섭게 오르막길이 나타났고, 오르막 끝에서 내리막길을 만난 반가움도 잠시 또 다시 오르막길이 등장한다.

오르막길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나곡교와 나곡교차로를 지나 이어진 오르락내리락하는 반복적인 행위는 고포항에 다다를 무렵 끝이 났다.

 

‘삼척시’에 진입했다는 푯말도 그 무렵 시야에 들어왔다. 고포마을은 울진과 삼척의 경계에 자리한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광역지방자치단체인 경상북도와 강원도가 걸쳐 있다.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지역번호가 다르고 도청이 다르고 우편번호가 다르다.

마을 주민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삼척시민과 울진군민으로 나뉜다.

 

고포월천길을 따라 가다 또 고갯길을 만났다. 그리고 또 고갯길을 만났다.

라이딩 시작한 지 한 시간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로 주변엔 사람도 없고 쌩쌩 달리는 차도 없고 개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이화령고갯길보다 훨씬 짧고 쉬운 길인 건 분명한데, 그 사실이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호산삼거리에 도착해 슈퍼마켓을 발견하고 ‘이제 살았구나’하는 생각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것도 잠시, “여기까지는 오르막도 아니지 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데, 아가씨 벌써 지치면 안 돼요. 임원인증센터까지 이보다 더한 언덕을 넘어야 할 거야” 슈퍼마켓 주인 아저씨가 일부러 과장해서 한 말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수릉삼거리를 지나자 진짜 더 지독하고 악랄한 고갯길이 나타났다. 절로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화령고갯길처럼 길고 긴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이 가장 힘든 라이딩이라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다.

평지 없이 짧은 구간을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라이딩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더 지독했다. 오르막이 끝나고 모습을 드러내는 내리막이 더 이상 반갑지 않았다.

내리막이 끝나면 또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 하니까. 삼척이 이렇게까지, 이 정도로 잔인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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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온전히 나의 벗이 되어줬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인상은 좀체 펴질 것 같지 않았는데, 장호항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꼭대기에 오르자 양미간의 주름이 살며시 자취를 감췄다.

이곳까지 올라온 여행자의 수고스러움을 치하라도 하는 듯 바다는 더 영롱하게 더 투명하게 빛을 뿜어냈고, 유려한 풍경은 온전히 여행자의 두 눈에 담겨 이 순간을 기억하게 했다.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이었다.

비로소 나는 바다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는 온전히 나의 벗이 되고 있었다.

 

또 다시 고갯길을 오르고 올라 한재고원을 넘어 추암촛대바위에 닿기까지 입에선 욕 대신 감탄사가 자연스레 흘러 나왔다.

‘동해시’ 푯말과 동시에 삼척은 등 뒤로 멀어져 갔다.

훗날 누군가 삼척에 대해 묻는다면 ‘잔인했다’는 말 대신 ‘황홀했노라’ 말하리라.

시작이야 어찌되었건 해피엔딩이다.

 

 

▶강릉 시골마을로 향하다

 

어젯밤 하는 수 없이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일몰과 함께 찾아온 장대비 때문에 도저히 텐트를 칠 상황이 못 되었다.

묵호항 인근 2층짜리 민박집 건물 1층엔 슈퍼마켓이라 하기엔 뭣한 간이상점과 주인 할머니의 주거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고, 손님을 들이는 숙박공간은 2층 전체를 차지했다.

문을 세차게 두들기는 할머니의 노크소리에 잠에서 깼다. 오전 10시가 가까웠다.

이래서 나는 텐트가 좋다. 편안한 잠자리는 쉬이 게으름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텐트 천장을 비추는 햇빛이 모닝콜이 되고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그 순간이 그리웠다.

비는 그쳤지만 해는 여전히 구름에 가렸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둘째 날의 첫 페달을 밟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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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항에 올라가서야 바다를 벗삼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비가 내려 묵호항 인근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지긋지긋한 오르막길과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대진항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가 말하길 정동진인증센터 이후부터 고성까지 평지만이 펼쳐진다고 했다.

망상해변을 지나 기분 째지도록 반가운 목적지까지는 10여 ㎞ 남았다.

도직교를 건널 때 좁다란 2차선 도로가 나왔다. 차도 옆 비좁은 길을 자전거로 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자전거를 끌고 가기에도 여간 위험하지 않았다.

 

동해안 자전거도로는 개통된 지 1년이 지났지만 4대강 자전거도로와 비교하면 보완해야 할 점이 여럿 눈에 띄었다.

자전거 전용도로보다 차도로 연결된 경우가 적지 않아 안전문제 해결이 시급했다.

현재 정비 중인 공사도로를 우회해야 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자전거도로 주변의 낙후된 환경이나 휴게소, 공기 펌프,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 부재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일까, 부산 가는 길에 만났던 자전거 선수 복장을 한 그 많던 라이더가 동해안에선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난다.

동해안에 와서야 ‘혼자’라는 사실을 하루에도 여러 번 깨닫는다.

 

옥계휴게소를 지나자 드넓은 상추 밭이 나타났다.

바다를 끼고 달리던 도로는 주수천이 흐르는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얼굴을 달리했다.

금진해변에서 다시 바다를 만났다.

금진항부터 정동진인증센터까지 약 5㎞ 구간에서 마지막 오르락내리락 라이딩을 반복했다.

 

자전거를 타고 당도한 모래시계공원과 정동진 박물관, 소망의 종 그리고 정동진해변은 곱절로 반가웠다.

과거 여러 번 다녀간 정동진이지만 와 닿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한낮의 더위는 정동진해변 그늘에서 피했다. 생각보다 휴식시간은 길어졌다.

조급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럴려고 자전거를 탔으니까. 경

 

포해변까지 약 25㎞ 구간을 한달음에 달렸다.

비로소 평지를 만난 기쁨은 ‘강릉시’ 푯말을 볼 새도 없이 내달리게 했다.

날이 저물기 전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무료 숙박 공유 사이트) 호스트 집을 찾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면서 내 힘으로 갈 수 있는 외진 시골집에서의 하룻밤을 꿈꿨다.

강릉시내에서 12㎞ 정도 떨어진 사천면 사기막마을이 꿈을 이뤄줄 무대다.

사기막 마을회관을 지나 울퉁불퉁한 흙길을 달리니 지도 상에 빨간색 신호가 도착지점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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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따라 차도 옆 자전거전용도로가 나 있다, 농촌마을에서의 하룻밤을 내어준 호스트 김기범 씨


고등학교에서 수학선생님으로 재직하다 은퇴한 김기범 씨 부부는 강릉시내에 거주하다 1년 전 귀촌을 택했다.

집 뒤 너른 땅에 농사를 지으며 김 씨는 인생 2막을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강릉시내 아파트에 살 때는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을 많이 재워줬는데, 교통편이 불편하다 보니 여기 시골까지 오려고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 귀촌하고 나서 아가씨가 첫 손님인데, 그러고 보니 한국인 여행자가 찾아온 것도 처음이네.”

 

김 씨는 영어 공부도 할 겸 외국인의 삶의 방식도 엿볼 겸 2013년부터 카우치 서핑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카우치 서핑 유저는 20~30대 젊은 층이 대다수다.

김 씨처럼 환갑을 갓 넘은 호스트는 열정이 없으면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직접 겪어본 외국인의 삶은 어땠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더라고. 글쎄 프랑스 여행자가 왔는데 여자 혼자 몸으로 프랑스에서부터 걸어서 시베리아를 지나 블라디보스톡에서 배를 타고 동해로 왔다더군. 걷다가 날이 저물면 숲에서 텐트 치고 잤다는데, 여리여리한 몸에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멘탈이 우리랑은 차원이 달라. 터키 청년이랑 스웨덴 청년이 함께 온 적도 있었지. 무일푼으로 여행하는 청년들이었는데 부산에서 히치하이킹만으로 강릉까지 왔었지. 아들 같아서 밥 사주고 공짜로 구경시켜주고 그랬어요. 나중에 꼭 터키나 스웨덴에 놀러 오라더군. 그들이 후한 대접을 할 거라는데, 거기까지 가서 내가 오히려 그들 또 밥 사줘야 하는 거 아닐까 싶어.”

 

저녁식사 후 커피잔이 흰 바닥을 보이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김 씨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의 삶을 공유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연을 만났다

 

강릉부터 라이딩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평평한 대지는 어느 순간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푸르른 바다가 계속 나를 쫓아 왔다는 사실.

주문진 해변에서 동해안 라이딩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동행자를 만났다.

딸은 일반 자전거로, 여든이 갓 넘은 엄마와 이모는 전기자전거로 양양오일장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무리 전기자전거라고는 하지만 40여 ㎞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이들의 대담한 용기를 곁에서 지켜보는 건 행운이었다.

고무장갑 끼고 ‘무조건 고!’를 외치는 팔순 여인과 언제 또 라이딩을 함께 하랴.

 

38선휴게소에 다다를 무렵 공사중인 자전거전용도로가 통행 제한으로 막혀 있어 하는 수없이 국도를 타야 했는데, 이 아찔한 도전을 끝내고 난 뒤 여든 살 여인은 한 가지 깨달음을 전했다.

 

“아~ 이 맛에 아가씨가 자전거 여행을 하나 봐요.”

 

이젠 서퍼들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양양바다를 바라보며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커피타임까지 그들과 함께 즐겼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나는 그 맛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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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해 정자 위에 친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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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또 낯선 곳에서 찾아왔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릴 듯 말 듯 흐린 날씨는 늦은 오후 낙산사를 지나자마자 비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한 차례 비가 그쳤지만 속초항에 닿자 이번엔 장대비가 쏟아졌다.

버스정류장 지붕 아래 몸을 숨겼다.

금방 그칠 것 같았던 비는 한 시간 동안 연신 쏟아 부은 뒤 끝이 났는데 벌써 저녁 7시가 넘었다.

잘 곳을 찾아야 했다.

 

영랑호 주변을 돌다 또 다시 비를 만났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둑어둑했다. 비를 맞으며 영랑교를 건너 좌회전을 하자 반대편에서 오던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 야영할 곳 찾죠?”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코너 돌아서 조금 가면 정자가 나와요. 일전에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이 며칠 밤을 텐트치고 자는 걸 봤는데 안전한 곳이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정자 바로 뒤편이 우리집인데 비가 와서 우리집 마당에 텐트를 치라고 하기도 뭣하고, 남자면 그냥 재워줄 텐데 그건 아가씨가 불편할 테니….”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정자에서 다시 만났다.

 

강경희 씨가 영랑호가 바라다보이는 전원주택을 지은 건 올봄의 일이다.

서울과 속초를 오가며 생활하는 은퇴 2년차 강 씨는 사업체를 운영하던 잘 나가는 경영인으로 수십 년을 살았다.

어떻게 살지 고민하던 청년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강 씨는 신입 은퇴자가 되어 인생에서 다시금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청년시절과 다른 점이라면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과 용기가 한 뼘 더 필요해졌다는 사실이다.

세대도 성별도 다르지만 실로 오래간만에 인생의 벗을 만났다는 설렘 때문에 텐트 안에서 쉬이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날씨도, 인연도, 여행도 어쨌든 해피엔딩이다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구름 깔린 영랑호를 보고 있노라니 비가 반갑게 느껴진다.

비를 핑계로 텐트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정오를 넘겼다.

이곳부터 고성 통일전망대까지는 50㎞도 채 남지 않았다.

3~4시간 달리면 될 거리인데, 날씨가 영 시원치 않다.

 

1시를 넘겨 구름 뒤 해가 드디어 얼굴을 내보이기 시작해 일단 짐을 싸고 정자를 벗어났다.

굶주린 배를 채우러 식당에 들렀다. 얼마 안 가 차창 밖에선 또 다시 장대비가 퍼붓는다.

아, 고성에 가긴 글렀다.

 

정자에서 하룻밤 더 묵을 결심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정자에서 잠시 쉬고 있던 할머니와 대화가 이어졌다.

으레 그렇듯 ‘왜 여자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느냐’에 대한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대화는 출발했다.

나를 향한 할머니의 진심 어린 염려는 정자에서 텐트를 치려 했던 계획을 순식간에 할머니 집에서의 하룻밤으로 바꿔놓았다.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재워주겠다는 할머니도, 누군지도 모르고 할머니를 무작정 따라나서는 나도 신기했다.

여행하다 보니 이렇게 또 뜻밖의 경험이 만들어진다.

 

이른 아침 할머니는 분주하게 움직여 아침 밥상까지 챙겼다.

‘재워주시고 밥도 차려주시고 좋은 덕담도 나눠주셔서 감사하다’는 내 인사에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고 했다. ‘함께 밥 먹어줘서 고맙고, 함께 이야기 나눠줘서 고맙고, 함께 시간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다 할머니를 힘껏 안아드리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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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게 빛나는 고성 바다, 동해안 자전거도로 최종 목적지 ‘안보교육 인증센터,

철조망 사이에 좁다랗게 자전거길이 조성된 고성군


마지막 날, 동해안 라이딩을 시작한 이래 가장 푸르고 눈부시고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졌다.

장사항을 지나자 몇 미터 안 가 ‘고성군’ 푯말이 나를 맞았다.

봉포해변 이후부터 군사시설 때문인지 철사 울타리로 가려진 해변이 자주 보였다.

 

북전철교를 지나 반암리 마을로 향하는 길에선 소떼를 만나기도 했다.

대진항에서부터 통일전망대까지 새로 깔린 자전거전용도로는 반들반들 윤이 났다.

도로 위를 비추는 여름의 따가운 햇빛이 광택을 더 부추겼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인증센터의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통일전망대인증센터라 여겼던 곳의 이름은 ‘안보교육관인증센터’였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지도 상에 나타난 명파해변을 거쳐 DMZ박물관,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진입이 불가능했다. 자전거 여행자의 경우 단체만 출입이 가능하고 절차에 따라 미리 신고와 접수가 이뤄져야 한다.

‘혼자’라는 사실이 이럴 땐 서글프구나.

 

최종 목적지에 닿은 듯 닿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한 기분에 사로잡혀 이곳을 빨리 벗어났다.

이제 동해안과는 작별이다. 함께 달려준 동해 바다와 자전거길에서 만난 인연들이 그리울 것이다.

한동안은 그럴 것이다.

 

 

TIP 자전거 여행에서 바퀴에 바람이 조금만 빠져도, 체인이 톱니바퀴에서 살짝 벗어만 나도, 기어변속 후 체인에서 나직한 소리만 들려도 급속도로 멘붕이 찾아왔다.

그래 봤자 펑크가 난 것도 아니고, 체인이 끊어진 것도 아니고, 기어가 고장 난 것도 아닌데 온갖 걱정과 호들갑이 시작되면서 자전거 여행 전체에 먹구름이 쉬이 깔렸다.

가장 이상적이고 독립적인 자전거 여행자가 되려면 간단히 해결 가능한 정비법 몇 가지 숙지하는 것이 좋다.

초보 자전거 여행자를 위해 준비했다. [도움말:장현필 미캐닉(플래툰싸이클)]

 

 

전문가가 알려주는 자전거 간단 정비법

 

Q. 타이어 공기 주입은 어느 정도까지 해야 되나요?

 

모든 타이어에는 옆면에 최소. 최대 공기압이 psi나 bar의 단위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30-60psi, 2-4bar 이런 형식이죠.

펌프에 압력 게이지가 있다면 적정 공기압을 확인 후 맞춰서 넣으면 됩니다.

게이지가 없는 콤프레셔 펌프라면 보통 최대 70psi 정도를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로드 바이크 타이어엔 공기압이 부족할 수 있고, MTB 타이어엔 과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명심하세요.

 

Q. 여행 중 튜브에 펑크가 났어요.

 

펑크가 나는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튜브의 안쪽(림에 붙는 면)에서 구멍이 난 경우’, ‘튜브의 바깥쪽(노면에 닿는 부분)에 펑크가 난 경우’, ‘튜브가 림에 찍혀서 두 개의 구멍이 난 경우’가 바로 그것이죠.

 

튜브의 바깥 쪽에 구멍이 난 경우 보통 타이어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뚫고 들어와 튜브에 구멍을 내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 타이어 안쪽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면 됩니다.

 

안쪽에서 구멍이 난 경우에는 안쪽에 림 테이프를 한번 점검하고, 림 주위에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튜브가 림에 찍혀서 두 개의 구멍이 난 경우 타이어 공기압이 낮은 상태에서 작은 턱이나 장애물을 밟았을 때 림에 튜브가 찝히면서 펑크가 발생하게 되죠.

이처럼 튜브를 때우거나 교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를 간과하면 다시 펑크가 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Q. 체인이 톱니바퀴에서 빠져버렸어요.

 

체인이 빠지는 경우는 앞 드레일러의 한계 세팅이 잘못 되었거나 갑작스러운 기어변속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앞 드레일러 한계 세팅을 다시 해야 하고, 후자의 경우라면 침착하게 다시 톱니에 맞물리게 하면 됩니다.

 

Q.기어변속을 했더니 체인 돌릴 때마다 소리가 나요.

 

일반적인 경우 변속기 케이블이 늘어났다거나 텐션이 부족 혹은 넘쳐서 발생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이럴 때 베럴 조절 나사를 이용해 풀거나 조이는 세팅을 해보세요.

 

Q. 브레이크가 풀려서 작동이 되지 않아요.

 

위와 마찬가지로 케이블이 늘어나서 발생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육각렌치를 이용해 볼트를 풀어 케이블을 타이트하게 잡아주세요.

이때 한쪽 브레이크 패드가 림에 닿는 경우가 있는데 브레이크 암의 텐션이 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암 옆면에 작은 십자나사가 있는데 이걸 잠그면 텐션이 강해져서 림에 닿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Q.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멀티 수리도구에 구성된 육각렌치, 오픈스패너, 3P소켓 등은 어떤 정비에 사용되나요?

 

우선 자신의 자전거에 사용된 볼트 규격을 확인하고 수리도구를 구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퀴 같은 경우 Q.R레버 방식이 아닌 육각너트 방식일 수 있고, 7~10미리 스패너가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타이어 주걱도 하나 정도 있다면 튜브를 교체할 때 유용하게 사용 가능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Q. 위 질문 외에 추가로 알아야 하는 정비가 있을까요?

 

헤드셋에 유격이 생기거나 가끔 무거운 짐 무게를 못 견뎌서 넘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 운이 나쁘면 핸들바가 돌아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헤드셋과 스템 부분의 정비 방법을 알아두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죠.

 

 

 

추효정(프리랜서 여행기자)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6.08.03기사입력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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