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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생각이지만 해외여행지로 일본만한 곳도 없다.

항공권 싸고 어디든 두 시간 남짓이면 공항에 도착하고 한글 안내도 비교적 잘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친절하고 깨끗하며 동양의 고전과 서양의 메트로(metro: 도시)가 공존하고 있다.

교토는 그중 담백한 고전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색의 고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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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일본여행 알뜰한 일정 계획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일본은 어디든 2박3일, 3박4일의 일정이 적당하다.

너무 짧으면 숨이 차고, 길면 낭비다.

나는 2박3일을 꽉 채워 다녀오기로 작정했다.

 

인천(ICN)에서 7월20일 오전 7시55분 출발, 간사이(KIX)공항 오전 9시40분 도착, 22일 간사이 공항에서 밤 9시50분에 출발, 인천공항에 밤 11시50분에 도착하는 비행편이었다.

항공료는 34만2200원이다.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유심칩 대여 부스’였다.

데이터 로밍한다는 걸 깜박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 부스에서 대여받은 유심칩은 4만엔을 보증금으로 낸 뒤 하루에 한번 1000엔 꼴로 지불하는 형식이었다.

출국할 때 유심칩을 반납하면 보관하고 있던 내 유심칩으로 교체해주며 보증금은 약 일주일 뒤에 입금되었다.

어쨌든 데이터를 확보한 뒤 역구내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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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공항에서 목적지인 교토로 가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이다.

직행인 하루카(1600엔), 오사카의 많은 역을 들려서 가는 공항 쾌속(1880엔), 그리고 리무진(2550엔) 등이다.

시설과 방법은 각각이지만 소요 시간은 대략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쯤으로 보면 된다.

 

나는 교토를 들어갈 때는 공항 쾌속을, 오사카를 들렸다 나올 때는 리무진을 이용했다.

모두 기찻길 주변 풍경을 보기 위한 나름의 생각였으나 결국 앉자마자 잠이 드는 바람에 의도는 실패.

어영부영 교토역에 도착하니 시계는 오후 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며 ‘꼭 이렇게까지 무리한 여행을…’ 하며 빡빡한 일정을 잠시나마 후회했던 순간이, ‘역시 일찍 출발하길 잘했군’하는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배가 고팠고, 검색할 것도 없이 역 바로 앞 ‘포르타 Porta’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다.

 

작정하고 들어간 집은 ‘동양정東洋亭’. 1897년에 문을 연 ‘함박스테이크집’이다.

메뉴는 여러가지 있었으나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오리지널 함바그 스테키 A세트’(1320엔, B세트(1780엔)에는 커피와 스위츠 포함)와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함박스테이크는 뜨겁고 부드럽고 달콤했고 맛있었다.

함께 나온 토마토샐러드의 토마토에는 캐첩과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하는 소스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그 맛이 묘했다.

프랑스식 디저트 ‘몽블랑’은 밤을 재료로 만든 것으로 살짝 달콤한 단맛이 식후 위장을 편안하게 돌려놓았다.

 

호텔 예약은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실행했다.

당일 호텔 예약앱 익스피디어Expedia로 검색해보니 교토역과 네 블록 떨어진 곳에 카라수마교토호텔Karasuma Kyoto Hotel이 눈에 띤다.

세금과 익스피디어 수수료를 포함, 2박에 25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호텔 예약이 끝났으니 이제 돌아다닐 일만 남았다.

일단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가벼운 차림으로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타워에서 내려다 본 납작한 도시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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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는 산동네는 물론 다운타운에도 사찰이 즐비하다.

심지어 상업적 상가에 사찰이나 신사가 들어가 있다. 신사의 나라 사찰 국가인 것이다.


개인적인 패턴이지만,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맨 먼저 찾는 곳은 타워나 파크이다.

타워에는 촌놈들이나 올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말이 딱 맞다.

나는 교토를 찾아온 촌놈이므로 높은 곳에서 한번 둘러보는 것은 당연하고도 실용적인 일이다.

교토타워는 교토역 바로 앞에 위치한다. 입장료는 770엔. 전망대에 올라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니 전체적으로 납작한 느낌이다.

 

도심에는 호텔, 기차역, 아파트 등 빌딩들도 드문드문 있지만 고도 경관에 맞춘 까다로운 건축법 때문에 고층빌딩 건설을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소형 주택도 ‘교토스타일’이 아니면 허가를 받을 수 없게 한 제도 덕분이다.

그로 인해 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200년 간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이제 규모면에서는 순위에 들지 못할 정도로 작은 고도로만 남아있다.

 

교토부 전체에 산재되어 있는 사찰의 수가 2000개가 넘고 일본 국보의 약 20%, 중요 문화재의 약 14%가 교토 시내에 있다.

이런 사실은 교토가 외형적 규모는 상위 그룹에서 밀렸다 해도 문화적 가치는 여전히 일본 최고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가미가모 신사, 시모가모 신사, 도지(동사),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사이호지(서방사) 등 20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 교토의 문화를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며 여행하기에 2박3일 일정은 너무도 짧았다.

 

해서, 전망대에서 발견한 중심가의 사찰 ‘히가시 혼간지’(동본원사)와 오래 전 걸었던 철학의 길과 은각사, 여행자들로 넘쳐난다는 청수사, 유럽 여행 때 보았던 고대 수로와 같은 모양의 건축된 수로와 똑같은 모양의 수로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 지는 ‘난젠지’(남선사) 관람으로 교토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히가시 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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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없는 게 일본 사찰의 특징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부처의 설법이 이곳에서 실천되고 있는 느낌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세상의 그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일본인 특유의 자존심을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회당에서의 명상, 괜찮아 보인다.


교토타워에서 내려다 본 히가시 혼간지의 모습은 단아했다.

한국의 사찰이 블랙&레드의 자연적 형태를 띄고 있는 것에 비해 히가시 혼간지는 블랙&화이트의 미니멀하고 모던한 모습이었다.

내려와보니 규모도 엄청났다.

160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설립한 이 절은 당시 일본 불교의 최대 종파이며 정치적 힘도 막강했던 ‘혼간지’(본원사本願寺)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략적 창건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에야스는 구체적으로 본원사를 ‘히가시 혼간지’(東本願寺)와 ‘니시 혼간지’(西本願寺)로 분리해 실질적인 분열을 일으켰다고 한다.

교토타워에서 내려와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이 사찰은 중앙에 정문이 있지만 대부분 방문객들은 고에이도문을 통해 들어간다.

이 문은 ‘일본 3대 문’ 가운데 하나다.

일본 사찰이 대부분 그렇듯, 이곳 역시 한국의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가모니 좌상 등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본당 격인 ‘어영당 御影堂’은 누구든 들어가 정좌한채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갔을 때는 오후 5시10분 쯤이었는데, 간결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젖어있는 동안 시간이 금새 흘렀다.

오후 5시30분이 되자 회당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히가시 혼간지에는 매우 특별한 유리 상자가 하나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인정받은 어영당(미카에도)과 아미타당阿弥陀堂을 잇는 야외 복도 중간에 있는 ‘게즈나’가 그것이다.

히가시 혼간지는 1864년 화재로 전소되었다.

16년 뒤인 1880년에 다시 건축되었다.

건축 자재로 쓰기 위해 가져온 목재들은 주로 밧줄을 이용해 날았는데, 나무들의 중량이 만만치 않아 밧줄이 끊어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고, 결국 밧줄 부족 사태까지 맞게 되었다.

신도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동아줄과 함께 꼬아 밧줄 재료로 사용했고 그렇게 만든 밧줄이 무려 53개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교토 지역 불자들이 머리카락을 시주했는데, 나중에는 전국의 불교 신자들이 ‘게즈나 캠페인’에 동참했다니 놀랄 뿐이다.

‘게즈나 쇼케이스’ 안에는 굵고 검붉은 색깔의 밧줄이 있다.

일본인들, 그때나 지금이나 참 독특한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다.

 

위치 교토시 시모교쿠 가라스마시치죠아가루 도코하쵸 754 개방 시간 05:50~17:30

문의 075-371-9181 가격 무료 입장

 

 

▶기모강변의 포스 넘치는 맛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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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쓰기 딱 좋은 곳이다. 줄줄이 매력 만점의 맛집들이다.
강변 레스토랑들은 어느집 할 것 없이 테라스를 갖고 있다.

날이 덥더라도 밤공기에 열 식히며 테라스로 나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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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 혼간지를 나와 호텔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를 위해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가모강변에 있는 140년 된 ‘카네쇼 장어덮밥’집에 가서 든든한 저녁 식사와 사케 한잔을 할 계획이었다.

 

가모강은 교토의 시내를 흐르는 하천으로 주변은 상가와 매력적인 맛집들이 즐비하다.

‘카네쇼’는 우리가 흔히 장어덮밥이라 부르는 ‘우나기동’과 장어를 밥 안에 숨겨 만드는 ‘마무시동’(마무시는 일본어로 뱀을 뜻하는 것으로, 뱀처럼 생긴 장어를 빗댄 표현이다, 마무시동을 직독직해하면 독사장어밥이 된다)을 대표메뉴로 하는 유서깊은 집이다.

 

호텔에서 검색을 하며 분출하는 침샘을 제어할 수 없었고 마음은 급해지기만 했다.

가모강은 게이한 본선 ‘기온시조역’이나 한큐 교토선 ‘가와라마치역’에서 가깝지만 뱃속을 완전히 비운다는 생각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나와 가라스마역 사거리에서 우회전, 시죠거리에 접어들자 교토스럽지 않은 상가가 등장한다.

이곳에는 패션, 뷰티, 소품, 전자제품 등 모든 장르의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큰 길에서 이어지는 소도로 안으로 들어서면 일본식, 프렌치, 중식 등 세계의 음식점들이 곳곳에 문을 열고 있다.

 

시죠거리 상가에는 절과 신사도 있다.

퇴근 시간이 지나 거리는 흥청망청한 분위기였는데, 그 중앙에서 스님들의 연주회가 열리고 바로 옆 불당 앞에서는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는 시민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기가 불교 천국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가모강 시죠대교에 도착할 때까지, 소요시간은 약 30분? 이제 ‘카네쇼’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카네쇼는 시죠대교를 건너 니주잇켄초로 좌회전, 다시 좁아터진 골목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 특별한 이정표가 없어서 자칫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곳이었다.

단지 ‘우체국 끼고 좌회전’이라는 단 하나의 단서만 있을 뿐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카네쇼’ 입구에는 ‘오늘은 단체손님으로 자리가 꽉 찼으니 돌아가라’는 유인물이 붙어있다.

여행지 맛집 탐험 시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맛집을 찾는 기회이기도 했다.

다시 시죠대교를 건너 맛집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베야초’라 불리는 이 골목은 성인 둘이 나란히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다.

길 양쪽으로는 주로 정통 일본 식당들이 있고 뜨문뜨문 양식, 중식 음식점들도 눈에 띄었다.

 

급히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갓파스시(Kappa sushi)かっぱ寿司’. 초회, 방어, 참치, 연어, 새우, 장어, 튀김, 초밥(도마, 방어, 성게, 참치중뱃살 등) 등 일본 정통 사시미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세트메뉴(5000엔~7000엔)와 아사히 생맥주를 주문했다.

한국이었다면 ‘술 먼저’를 강조했겠지만, 조금 참으며 절차를 관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사람들, 한국 손님 경험이 많았을까? 아니면 특유의 상술?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생맥주가 먼저 등장한다.

거품이 어찌나 부드럽던지, 실한 500cc를 단숨에 들이키고 한 잔 더 주문해 아껴 마셨다.

 

일본 정통 스시의 맛과 품질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없다.

생선 특유의 맛과 향을 살아있고 적당히 숙성시킨 선어라 씹고 삼킬 때의 느낌이 최강이다.

계산을 할 때 심장이 조금 차가워지긴 했지만.

여행지에서 지름신이 강림할 때마다 되뇌이는 말, ‘내가 또 언제 교토의 가모강변 스시집에서….’라고 자위하며 호텔로 직행한다.

편도 항공료의 절반에 해당되는 돈을 한 끼 먹방에 쓰다니. 내일은 아껴야지.

 

 

▶명불허전 은각사와 철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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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각사는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색의 공간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철학의 길을 걸으며 내내 고민해야 했던 오늘 여행의 주제이기도 했다.

결론은 ‘남길 돈이 없으니 그게 더 개운’으로 정리 끝.


철학의 길을 가는 동안 내내 흥분해 있었다.

오래전 그 하천변을 걸었을 때의 고독했던 감정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철학의 길은 은각사(긴카쿠지)에서 남선사(난젠지)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길의 이름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철학가로 알려진 ‘니시다 기타로’ 교수가 이 길을 이용해 교토대학으로 출퇴근하며 명상을 즐겼다 해서 ‘철학의 길’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철학의 길은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을 가운데로 한 양쪽 오솔길로 되어 있다.

흔히 실개천이라고 생각하는 이 물길이 사실은 ‘운하’이다.

일본 메이지시대 때 건설된 약 20km의 이 운하는 산속을 지나 시가현 비와 호수까지 연결되는데, 계곡을 이루고 있는 남선사 구간은 벽돌로 아치를 만들어 연결, 유럽 고대도시의 수로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철학의 길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운하와 마을과 뜨문뜨문한 상점, 그리고 말없이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부다.

일부러 그렇게 관리했는지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르겠으나 이 길을 걸으면 쓸데없는 상념이 사라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철학의 길이 여행자에게 고독한 시간을 선사한다면, 오히려 은각사는 시끌시끌한 편이다.

모두 관광객들 탓이다. 은각사는 정원과 산책로, 그리고 목조건축물들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보통 은각사, ‘킨카구지’로 불리지만 공식적인 이름은 ‘지쇼지慈照寺’이다.

은각은 지쇼지 정원에 있는 전각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일본 센고쿠 시대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전 재산을 ‘선종’에 기부, 자신이 할아버지가 건설한 ‘금각사 로쿠온지’를 잇는 ‘은칠을 한 은각사’ 건설을 계획했다.

그러나 하필 이때 ‘오닌의 난’이 일어났고 ‘은으로 덮인 은각사 건설’은 수포로 돌아갔다.

요시마사는 불타는 교토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은거하다 1485년에 선종의 중이 되었다.

1490년 그가 죽자 모든 시설은 사찰로 전환되었고, 절의 이름은 요시마사의 ‘법명’인 ‘지쇼慈照’가 되었다.

세상의 권세를 누리다 늘그막에 전 재산을 기부하고, 세상에 길이 남을 무언가를 생각하고, 끝내 종교에 귀의한 말년의 삶을 보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는 없다.

 

 

▶뜻밖의 발견 ‘난젠지南禅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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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젠지의 존재는 은각사 검색 과정에서 힐끗 보았을 뿐이다.

철학의 길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에서 난젠지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이 가게 되었지만 이번 교토 여행에서 최고의 지점은 닌젠지이다.

다른 유명 사찰에 비해 사람이 덜 몰린다는 사실은 기준이 될 수 없다.

 

일단 이 사찰은 첫인상부터 여운까지 고고함 그 자체였다. 조용했고, 다소 메말랐으며, 단조롭고 편안했다.

출입을 금하는 방 아무곳에나 몰래 들어가 가만히 누워 잠들고 싶은 욕구가 방문 내내 이어졌다.

오래된 마루에서는 국가를 초월하는 본향을 느낄 수 있었고, 격자로 마감한 천장은 언젠가 한번 흉내내보고 싶은 디자인이었다.

 

난젠지는 13세기 중반, 권좌에서 은퇴한 천황 가메야마가 지은 별장으로, 훗날 선종 사원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그 건축물들은 내란으로 소실된 이후 복원된 시설들이다.

 

난젠지에는 네 곳의 풍경이 있다.

출입구 역할을 하는 ‘삼몬’은 ‘삼문’의 뜻을 갖고 있다. ‘삼문三門’이란 불교의 세 가지 해탈 즉, 실체로부터의 벗어남(공해탈문 空解脫門), 차별로부터 벗어남(무상해탈문 無相解脫門), 의식적 삶으로부터 벗어남(무원해탈문 無願解脫門) 등을 일컫는 말이다.

난젠지 삼몬(삼문)은3층의 높이로, 도쿠가와 막부가 1615년 오사카 성 공격 당시에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628년에 지은 건축물이다. 발코니에 오르면 도시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본당과 주지스님의 거주지인 호조도 감동적이다.

호조는 바위정원으로 유명하며, 이곳의 바위는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가 물을 건너는 것을 재현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철학의 길 이야기를 하며 언급했던 ‘수로’도 난젠지 뜨락 한쪽에 옛모습 그대로 서 있다. 텐

주안은 가메야마 천황를 모시던 선종(불교의 종파)의 정신적인 지도자에게 바쳐진 절이다.

텐주안에는 본당과, 정문, 17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재가 있다.

 

위치 교토시 사쿄쿠 킨카구지쿄 2 개방 시간 08:30~17:00 문의 075-771-5725 가격 일부 시설 유료

 

 

▶‘청수사 기요미즈데라’ 그대, 왜 이렇게 되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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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워낙 절이 많은 곳이고, 절 대부분이 마을과 붙어있기 때문에 사찰에서 고요함이나 참선 등을 이야기하기는 민망한 면도 있다.

게다가 청수사는 관광객이 너무 많이 찾아와 명상은 커녕 사람에게 밟히지 않으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인파로 북적인다.

 

청수사에 간 목적은 13m 높이의 나무 테라스와 그 뒤로 웅장하게 서 있는 본당을 보기 위해서였다.

도대체 저렇게 굵고 긴 기둥을 어떻게 세웠을까, 게다가 못 하나 박지 않고 건축했다니… 생각해 보아도 서기 780년에 그런 규모의 건축이 가능한 일인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정문과 탑을 주황색으로 마감한 것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또한 아무리 유명 사찰이라지만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유카타를 차려입고 사진을 찍어대는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청수사는 인산인해였다.

이렇게 사람 많은 여행지에서는 집중해서 꼭 보아야 할 것을 보는 수밖에 없다.

 

거대한 나무기둥 테라스를 보기 위해서는 본당 건너편 자안탑 앞으로 향했다.

기둥 위 테라스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자안탑에서 본당으로 이어지는 길에도 온통 여행자들 모습뿐이다.

비교적 한가로운 이곳에서 사찰 전체를 바라보노라니, ‘절에 사람이 많다’며 투덜댈 게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을 품어주는 청수사와 부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미타푸!

 

본당으로 가는 길에는 긴 줄이 있고, 줄 끝에는 세 줄의 물줄기가 내려오고 있다.

세 갈래 물길은 ‘장수’와 ‘학업’과 ‘사랑’을 뜻하며, 그 물들을 한 모금씩 받아먹으면 오래 살고, 책도 잘 읽게 되고, 사랑도 모두 이룬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가? 물 받아마시는 사람들의 눈동자에서는 희망과 욕망의 레이저가 분사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요미즈데라의 본당 뒤에는 사랑 신을 모시는 신사, ‘지슈신자 地主神社’가 있다.

이곳에는 약 18m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바위가 있는데 눈을 감고 한 쪽 바위에서 다른 쪽 바위까지 무사히 걸어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괜한 도전에 나섰다 사랑이 깨지는 수가 있다.

 

그래서 청수사에서 설치해 둔 게 밧줄이다.

바위들은 건물 안 지하에 있는데, 왼쪽 벽에 붙어있는 밧줄을 잡고 더듬더듬 걷아보면 한 줌 빛이 보이고 그 불빛 아래에 저쪽 바위가 있다.

커플이 여행했다면 함께 내려가 바위 위에 손을 포개 얹고 미래를 약속하면 되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완벽한 암전 속에서 겪은 묘한 즐거움이었다.

 

위치 교토시 히가시야마쿠 쿄미즈 1 개방 시간 08:30~17:00

문의 075-551-1234 가격 일부 시설 유료

 

 

 

이영근(여행작가)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6.08.10기사입력 201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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