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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에 다시 찾은 `까만 삼계탕`
20가지 한약재 달인 육수에 흑임자·흑미 섞어 고소한 맛 2배

 


부천 역곡상상시장을 찾은 건 올해 2월이었다.

ICT디자인 융합시장으로 야심 차게 새 단장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시장의 2월은 너무 추웠다.

따뜻하게 속을 달래줄 음식을 찾다가 우연히 '청춘옥'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맛본 삼계탕은 반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말복을 맞아서 다시 찾았다.

반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뇌 속에 각인되었던 것은 삼계탕의 맛도 있었지만 쇼킹한 비주얼도 한몫했다.

 

까만 돌솥에, 돌솥보다 더 검은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나왔다.

오골계인가, 색깔이 왜 이래, 밥이 닭 속에 안 들어가 있고 왜 밖으로 나와 있는 거지, 까맣고 걸쭉한 국물은 죽이야 국이야?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걸쭉한 국물을 한술 떠서 먹어 보았다. 진하고 고소하다.

국물은 국이라기보다 죽에 가깝다.

몇 번 더 먹어보고서야 까만 국물의 정체가 흑임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닭은 속까지 부드럽다. 닭 가슴살을 양파 장아찌에 싸서 먹어 보니 이런 궁합이 없다.

고기의 부드러움과 양파의 아삭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양파 장아찌의 짭조름한 단맛은 어지럽지 않고 깔끔하다.

그렇게 양파 장아찌와 삼계탕 한 그릇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비웠다.

 

검은 삼계탕을 만들게 된 윤숙희 사장님은 음식 장사만 30년을 했다.

예전에는 시장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했는데 바로 앞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 후로 요리학원을 다녔다. 음식 장사를 하려면 제대로 배우고 시작해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위해 매일 기사 노릇을 했다.

 

그렇게 부부는 족발집을 시작으로 분식집, 고깃집까지 다양한 음식 장사를 거쳤다.

고깃집을 하면서 여름에만 계절 메뉴로 삼계탕을 만들어서 팔았다.

황기, 당귀, 천궁, 엄나무, 오가피 등 20여 가지 한약재를 넣어 달인 물에 닭을 삶아 정성껏 만들었다.

고객들은 맛있다고 했지만 사장님 본인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때 밥 양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몇몇 고객의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큰 닭을 쓰면 밥은 많이 들어가겠지만 고기가 질겨지고 작은 닭을 쓰면 부드럽지만 밥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닭도 부드럽고 밥도 푸짐하게 먹게 할 수 있을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이 닭 속에 있던 밥이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흑미, 녹두, 찹쌀로 밥을 따로 지어 주먹밥 모양으로 빚은 다음 닭 옆에 같이 담는다.

그 위에 흑임자와 흑미를 갈아서 올리고 20여 가지 한약재로 달인 육수를 부어서 끓인다.

끓으면서 200g의 찰밥이 죽처럼 퍼져서 걸쭉하게 되고 양도 푸짐하게 된다.

거칠게 빻은 흑임자와 흑미 덕분에 삼계탕의 식감과 비주얼이 완전히 달라졌다.

검은 가루 덕분에 비주얼은 쇼킹해졌지만 고소한 맛은 두 배가 되었다.

 

삼계탕과 궁합이 잘 맞는 반찬도 할 말이 많다.

양파장아찌, 김치, 깍두기 모두 국산재료를 이용해 직접 담근다.

감칠맛의 비밀은 인공조미료가 아니라 30년째 담가온 발효 효소다.

가게 안과 뒷마당에는 200여 통의 효소들이 발효되고 있다.

 

이렇게 많이 담게 된 이유는 남편 때문이다.

아내가 만든 건강 삼계탕인데 농약이 조금이라도 묻은 반찬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부천시 인근에 작은 땅을 마련해서 농사를 짓는다.

상추, 대파, 치커리, 고추 등 계절별로 다른 농작물을 키워서 손님상에 낸다.

못생긴 고추도 아저씨가 밭에서 데려온 녀석들이다.

농약 없이 키운 농작물은 비뚤비뚤 못생겼지만 향이 좋다고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새벽 5시면 밭에 나가서 농사짓고 그걸 가져오면 사장님은 음식을 만들고 효소로 발효시켜 건강 밥상을 차려낸다.

 

음식장사를 위해 농사를 짓고, 사서 쓰는 것 없이 직접 만들고, 조미료 한 방울 쓰지 않고 탄생한 삼계탕은 보약이다.

농사와 음식장사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냐고 물었더니 둘 다 힘들다고 하며 웃으신다.

 

농사일은 고되고 정직한 일이다. 음식장사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왕좌왕하고, 10년 하니 조금 알게 되고, 30년 하니 이제야 알겠는데 몸이 아프단다.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너 뭐하고 왔냐고 물어보면 당당히 밥장사하고 왔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는 사장님이다.

역곡상상시장에 가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삼계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방영양죽 삼계탕 한 그릇은 1만원이다.

 

 

 

 

이랑주 시장 큐레이터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08.18기사입력 20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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