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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현종 시대 최고의 간신은 이임보.

그는 ‘개원의 치’로 현군이었던 현종의 집권 2기를 후대 사가들이 ‘천보난치 天寶亂治’라 부를 정도로 혼란으로 몰아넣은 간신이었다.

겉은 온화하게 미소를 띠고 다녔고 성격은 원만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이는 모두 위선이었다.

그는 모략, 음모, 권모술수, 처세 그리고 권력 암투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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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뿌리를 썩게 만든 난신

 

역사학자들은 역대 국가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국가로 로마제국과 함께 중국의 당나라를 손꼽는다.

당나라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에서 고르게 발전을 이룬 당대 최고의 제국이었다.

이는 현명한 군주, 충성스런 신하와 지혜로운 백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 태종이 이룬 ‘정관의 치’는 태평성대의 모델이었다.

뒤를 이어 측천무후 때의 혼란기가 잠시 있었지만 당나라는 현종이 712년 즉위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당 현종은 ‘개원의 치’를 펼쳐 백성들은 부른 배를 두들기고, 관리들은 열심히 일하고 곳간은 양식으로 가득했다.

 

당 현종은 현명한 군주였다.

그는 충성스럽고, 간언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능한 재상들을 기용했다.

한휴, 송경, 장열, 장구령, 요숭 등의 명재상들이 당 현종 치세를 보좌했다.

이들은 당 현종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당 현종이 사냥을 갔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안절부절 했다고 한다.

“이런, 이렇게 오랫동안 사냥을 한 것을 한휴가 알면 또 뭐라 할 텐데. 큰일났군”이라 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측근이 “폐하, 그렇게 한휴가 신경 쓰이시면 경질하시면 될 것 아닙니까?”라고 질문하자 현종은 “한휴의 잔소리에 내가 머리가 아프고 살이 마르지만 대신 백성들은 살이 찌지 않는가. 오히려 한휴가 있어 그나마 내가 두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휴를 옹호했다.

 

이처럼 현종은 현군이었다.

 

하지만 오래 고인 물이 썩는 것은 만고의 진리. 당 현종의 총명함도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741년 현종은 연호를 개원에서 ‘천보 天寶’로 바꾸었다. 집권 2기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면서 현종은 도교에 빠지고 후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30여 년을 재위하며 초심을 잃은 것이다.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 것이 바로 간신들이다.

 

당 현종 시대 최고의 간신은 이임보다.

그는 현종의 집권 2기를 후대 사가들이 ‘천보난치 天寶亂治’라 부를 정도로 정국을 혼란으로 몰고 간 간신이었다.

온화하게 항상 미소를 띠고 다녔고 성격은 원만하고 유연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이는 모두 위선이었다.

 

그는 모략, 음모, 권모술수, 처세 그리고 권력 암투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서서히 정적과 인재들을 제거하며 자신의 사람으로 현종 주변에 인의 장막을 쳤다.

그리고 무려 17년 동안 재상으로 재직하며 현종의 귀와 눈을 가린 희대의 간신이 됐다.

 

현종은 35세나 어린 며느리 양귀비에게 푹 빠져 정사는 돌보지 않고 이임보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이임보는 마음껏 국정을 농단했다.

이임보가 국정을 관장하는 동안 인재와 충성스런 신하는 사라지고 모두 여우같은 간신들만 판을 쳤다.

이임보는 군소 파벌을 뒤에서 조종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능수능란한 처세로 권력을 유지했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재상직을 유지했다.

 

그가 죽고 나자 양귀비의 세를 등에 업은 양국충이 권력을 잡고 이임보를 탄핵했다.

인심은 아침저녁이 다르게 변하는 것.

권력의 이동을 눈치 챈 관료들은 일제히 이임보를 비난하고 양국충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당 현종은 이임보가 죽자 정신을 차렸지만 통치 시스템은 이미 정상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현종은 죽은 이임보의 모든 명예와 재산을 박탈했지만 4년 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면서 현종은 비참하게 황제의 자리를 양위했다.

 

이임보는 당나라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 제도의 은행 잔고를 0원으로 되돌려놓았다.

풍족했던 국가 재정과 효율적인 관료 제도, 정예화된 군대 등을 17년 동안 뿌리부터 천천히 썩어가게 만든 것이다.

이임보가 재상으로 있던 당대에는 ‘한 간신의 득세’ 정도의 피해였지만 후에 나라의 근간을 흔든 반란과 각종 폐해가 발생한 것이 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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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그림자 권력’, 환관과 후궁의 마음을 잡아라

 

이임보는 본래 당나라의 시조인 고조 이연과 먼 친척뻘이다.

촌수는 멀었지만 당 황실과 같은 뿌리인 나름 명문가 출신인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보다는 음악, 그림, 시, 무예 등 온갖 잡기에 관심 있었고 또한 능했다고 한다.

즉 내실을 기하기보다는 외형적인 멋, 자신의 잘남과 장점을 드러내는데 관심이 많았던 것.

나중에 관직에 진출해서도 관리 중에서도 옷 잘 입는 멋쟁이 관리로 손꼽혔다고 하니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임보는 황실과의 연줄로 관직을 얻었다.

 

이임보는 하급관리로 있으면서도 공적인 업무보다 권력지향적인 처세로 일관했다.

그는 철저하게 권력 핵심 동향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자신의 공식적인 상사나 조정의 대신보다도 이임보가 더 공을 들이고 뇌물을 바치며 머리를 조아린 사람들은 바로 현종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그림자 권력’인 환관과 후궁들이었다.

 

권력은 권력자와의 거리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비록 환관과 후궁들은 직급이 낮고 공식적인 권력은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황제의 심기를 가늠하고 조정할 수 있는 더듬이가 발달 되어 있었다.

이들은 황제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 시, 그림을 좋아하는지, 또한 어떤 색과 언어를 좋아하고, 관리 중에 누구를 신임하고 특히 싫어하는 사람과 일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임보는 황제의 이른바 문고리 권력들을 통해 황제의 호불호를 파악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이들과의 친분을 맺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득은 이임보라는 이름 석 자를 황제의 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임보에게 뇌물을 받은 환관과 후궁들은 계기를 만들어 이임보를 충성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로 현종에게 수시로 말했다.

또한 이임보는 황제의 현재, 미래의 관심사를 알아냈다.

 

정책이나 인사 및 중요한 결정에 대해 황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혹은 의중은 무엇인지를 먼저 환관들로부터 언질을 받은 것이다.

당연히 조정에서 이임보가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전에서 회의가 열리면 뒤에 배석했지만 핵심을 찌르는 이임보의 발언에 황제는 점차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뜻과 의중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신하로 이임보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임보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726년 형부시랑으로 승진했고 이후 734년 예부서경을 거쳐 재상후보군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당시 재상은 청렴하고 공평무사한 정치로 당 현종 ‘개원의 치’ 시대를 이끌었던 장구령이었다.

이임보에게는 인격, 능력, 학문 등 모든 영역에서 넘기 어려운 큰 산이었다.

하지만 이임보는 장구령을 몰아내지 못하면 자신은 영원히 재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임보는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장구령 제거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행동에 옮겼다.

 

당시 삭방절도사 우선객은 지방을 잘 다스리고 세금도 철저히 관리해 비용을 절감하고 군대도 잘 훈련시켰다.

조정에서는 그 공을 인정해 많은 보상을 해주고 고위직으로 천거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장구령은 반대했다. 그는 “실봉을 올리고 고위직으로 천거하는 것은 큰 공을 세울 때 하는 것이다. 변방의 장수를 고위직으로 올리면서 이리 급하게 결정하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장구령은 이임보에게 제안했다. 현종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제시하자고. 이임보도 수락했다.

두 사람은 현종에게 갔다. 장구령은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임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임보는 우선객을 불러 “절도사가 공이 있는데 지금 조정에서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모두 장구령의 반대 때문이다. 황제를 뵈면 울면서 공보다 충성심을 내보이는 말을 하라”고 조언했다.

우선객은 현종 앞에서 이임보 말대로 행동했다.

현종은 조정 회의에서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

 

장구령은 여전히 반대했다. 하지만 이임보는 말을 뒤집었다.

 

“장수가 공을 세우고 익히 그 공이 사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수의 재능을 파악해 공을 주고, 관직을 올리는 것은 황제의 뜻입니다. 신하들이 가타부타할 문제가 아닙니다.”

 

현종은 이임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임보가 현실적이고 유연하게 사안을 대처한다는 칭찬과 함께.

이임보가 장구령의 뒤통수를 보기 좋게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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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웃고, 뒤에서 공격하는 모략의 대가

 

현종의 신임을 바탕으로 이임보는 서서히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장구령의 존재감은 컸다.

이임보는 장구령 앞에서는 속내를 철저히 숨겼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항상 미소를 띠며 겸손한 태도로 장구령을 응대했다.

장구령 같은 노련한 정치가도 이임보의 속내를 짐작치 못할 정도로 이임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736년 당 현종은 수도를 낙양에서 장안으로 옮기는 것을 논의에 부쳤다.

장구령, 배요경 등 기존 중신들은 모두 반대했다.

‘천도를 할 특별한 이유가 없고, 이로 인해 많은 재정이 소요되면 논과 밭을 허물면 세금이 줄어든다’는 이유를 들었다.

 

현종은 중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심기가 불편했다. 이때 이임보가 나섰다.

 

“재정문제와 농작지가 무너지면 세금을 면제해 구제하면 되는 것이고 또한 폐하께서 천도를 말씀하셨으면 신하된 도리로 신중하게 검토하고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박에 반대할 일이 아닙니다.”

 

현종은 이번에도 이임보의 말이 자신의 속내와 일치함을 알고 점차 이임보를 신임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또 있다. 당나라의 지방 운영 체제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절도사를 파견해 다스리는 방식이었다.

대개 문관들이 임명되었고 그들이 지방에서 공을 세우면 중앙의 대신으로 승진하는 것이 관례였다.

현종이 절도사를 임명했다. 장구령은 반대했다.

 

“이번에 거론된 절도사 후보는 학문이 모자랍니다.”

 

그러자 이임보가 또 나섰다.

 

“절도사를 임명하는 기준이 학문이 되는 것은 잘못된 기준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도 다 배우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재능이 있다면 학문은 배우면 되는 것입니다. 학문만이 아닌 다양한 기준으로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 쓰는 것이 옳은 인사입니다.”

 

현종은 이임보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에 대한 신임은 점차 두터워지지 시작했다. 이임보는 이런 식이었다.

그는 당 현종의 의중을 매수한 환관과 선을 댄 후궁들을 통해 미리 전해 듣고 조정의 회의 시간에 당 현종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임보의 세 치 혀에 황제가 길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임보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황태자 이영이 자신의 모후가 괄시받고 대신 무혜비에게 현종의 총애가 너무 기울자 불만을 표시했다.

이를 전해들은 현종은 진노하고 황태자를 폐위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재상 장구령은 반대를 했다.

 

이임보도 처음에는 장구령의 의견에 동조했다.

하지만 이임보가 황제 앞에서 한 말은 또 달랐다.

장구령은 강직하게 반대 의사를 표했지만 이임보는 또 아무런 의견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매수한 환관을 통해 의견을 황제에게 전달했다.

 

“‘황태자를 폐위하는 것은 작게 보면 폐하의 집안 일인데 신하가 너무 나서서 된다, 안 된다를 말하는 것은 불충한 것 같다’고 이임보가 말을 했습니다”라고 환관은 이임보의 의견을 현종에게 넌지시 전달했다.

 

현종은 결심을 굳혔다.

매사에 자신의 의견에 반대만 하는 장구령과 배요경을 경질하고 이임보를 중서령 겸 재상으로 임명한 것이다.

수 년 동안 앞뒤가 다른 행동과 말로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린 끝에 이임보가 드디어 재상이 된 것이다.

이임보는 이번 기회에 황태자도 바꾸려 했지만 환관의 우두머리인 고력사의 반대에 부딪쳐 이는 실패했다.

 

이임보가 재상이 되자 간관들이 들고 일어섰다.

감찰사 주자량이 “이임보는 재상의 그릇이 안되는 인물입니다”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쫓겨났다.

조정은 점차 이임보의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현종이 어느 순간 “이임보가 재상을 맡고 나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임보에게 더 중책을 맡겨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이임보는 현종의 마음을 100% 사로잡았다.

 

 

▶과거 시험을 일부러 어렵게 출제해 천재 두보도 떨어뜨린 간신

 

이임보는 현종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치면서 주도면밀하게 유능한 인재를 제거했다.

언젠가 자신의 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아예 싹을 잘라 버렸다.

 

이임보는 재상이면서 인사권을 장악했고 더구나 과거시험까지 자신이 맡아서 주관했다.

이는 일에 대한 열정도, 책임감도 아니었다. 단지 인재의 등용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과거 시험이 인재를 떨어뜨리는 장이 된 것이다.

 

이임보는 우수한 성적을 보인 사람은 무조건 떨어뜨렸다.

그러기 위해 이임보는 과거 시험을 어렵게 출제했다.

이때 떨어진 사람 중에 훗날 ‘시성’으로 불린 두보도 있었다.

그리고 현종에게는, “이번 과거에서도 급제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재들이 모두 조정에 있고 재야에는 아마도 아직 학문이 모자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둘러댔다.

 

이임보가 과거 시험 못지않게 신경 쓴 것은 절도사 인사였다.

절도사는 지방조직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갖고 있는 중요 직책이었다.

지금까지는 문관들이 절도사에 임명되어 경력과 공을 쌓은 뒤 중앙으로 오는 것이 관례였고 당 현종 재위 초기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많은 재상과 대신들이 모두 이 코스를 거친 인재들이었다.

이임보는 오로지 황제를,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유능한 문신들의 양성을 막았다.

문신 우위의 통치제도를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바꾸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임보는 현종을 꼬드겨 절도사 직책에 무신들을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민족 출신도 임명했다. 이유는 문신들은 본래 병법을 몰라 군대를 지휘할 수 없고 또한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겁이 많아 쓸모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이민족을 등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면 폐하의 은혜에 감동해 충성을 다할 것’라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훗날 무신 출신 절도사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악수가 되었다.

당시 기용된 무신들이 바로 안록산, 사사명, 고선지 등이었다.

이들은 점차 무력을 손에 쥐고 군벌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조정을 자신의 사람을 가득 채웠지만 이임보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왕충사이다.

그는 황태자의 친구이며 절도사와 어사대부 그리고 서북방면 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었다.

그의 휘하에는 무려 30만 대군의 당나라 정예군이 있었다.

 

 이임보는 왕충사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역시 방법은 음모와 모략이었다.

당나라는 토번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그 대치점이 바로 석보성이었다.

석보성은 지방의 작은 성이었지만 석보성을 장악한다는 것은 정치군사적으로 토번과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실리적이 효율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747년, 그 석보성을 토번에게 빼앗겼다. 이임보는 현종을 움직여 왕충사로 하여금 석보성을 탈환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왕충사는 이 작전에 소극적이었다. 토번도 더 이상 군대를 움직일 의사가 없었다.

석보성 탄환을 위해 왕충사의 대군이 움직인다면 서북방 국경이 혼란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임보는 왕충사를 모함했다.

자신의 부하들을 동원해 왕충사가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그 수장이 바로 황태자라는 고변을 현종에게 전했다.

현종은 조사를 명했다.

이임보는 계획된 대로 황태자와 왕충사를 엮어 단번에 제거할 목적의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이임보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 현종도 황태자를 폐위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무엇보다 왕충사를 제거하려는 이임보의 음모를 알아챈 군부가 강하게 반발을 한 것이다.

이임보도 한 발 물러났다. 그는 왕충사를 한양태수로 좌천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결국 왕충사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권력은 재상 이임보와 양귀비의 세를 업은 양국충 그리고 절도사 안록산이 장악하고 있었다.

양국충, 안록산도 관리로서의 능력은 무능력했고 오로지 현종에게 아부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인물들이었다.

즉 이들도 이임보 못지않은 간신으로 당 현종 말기에는 간신 3명이 서로 치열한 권력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양국충, 안록산은 이임보를 제거하려 많은 시도를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임보의 권모술수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특히 안록산은 이임보를 매우 두려워했다.

이임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까지 신경 쓸 정도로 이임보를 의식했다.

역사는 안록산이 난을 일으킬 준비를 마치고도 이임보가 살아 생전에는 실행에 옮기지 못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752년, 이임보는 안록산을 절도사로 내보내고 양국충마저 쫓아낼 궁리를 했다.

멀리 촉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이임보는 양국충을 토벌사로 파견하자고 현종에게 건의했다.

양귀비가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현종은 결국 이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즈음에 이임보가 병에 걸렸다. 병세는 점점 심해졌다.

양국충은 이임보의 병세를 핑계로 임지로 떠나지 않았다.

양국충과 안록산은 이임보의 병환이 꾀병으로 무엇인가 또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했다.

 

양국충이 이임보를 병문안했다. 이임보는 눈물을 흘리면서 양국충에게 자신과 집안의 뒷일을 부탁했다.

양국충는 이를 건성으로 들으면서 끝내 이임보의 마지막 부탁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이임보가 정말로 죽었다. 69세였다.

 

권력은 양국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753년 양국충은 이임보를 탄핵했다.

온갖 죄상이 드러나자 현종도 이임보의 봉작과 재산을 몰수하는 조치를 취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천하의 간신이자 모략의 대가도 죽은 지 불과 1년 만에 세상에서 버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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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세학. | ‘구밀복검 口蜜腹劍’ 입에는 달콤함을, 뱃속에는 날카로운 칼을

 

이임보가 무려 17년을 재상 자리를 지키면서 현종의 복심으로 권력을 좌지우지 했던 것은 그의 위선에 가까운 처세술 덕분이었다.

그는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싫어해도 현종이 관심을 갖고 총애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친분을 쌓고 전혀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누구도 이임보가 자신을 싫어하다고 단언하는 관리가 없을 정도로 이임보의 처세는 독보적이었다.

 

훗날 사가들은 이임보의 처세를 ‘구밀복검 口蜜腹劍’이라 불렀다.

즉 입으로는 온갖 달콤한 언사를 말하지만 뱃속에는 항상 상대를 찌를 검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임보의 처세는 은밀하고 잔인하며 독보적이었다.

 

한번은 당 현종이 “대신 엄정지는 어디가 있는가? 보이지가 않는구나. 중앙으로 불러라”며 명령을 내렸다.

사실 엄정지는 이임보가 지방으로 좌천시킨 관리였다.

이임보는 꾀를 냈다.

 

엄정지의 동생을 불러 “폐하가 너의 형 엄정지를 중앙으로 불러들일 생각이시다. 상소를 올리도록 하시게. 몸이 아프니 치료차 상경하고 싶다고. 그럼 내가 뒷일은 알아서 처리하겠네.” 동생은 전했고 엄정지는 동생의 말을 듣고 그대로 상소를 올렸다.

이임보는 엄정지의 상소를 갖고 현종에게 갔다.

 

“엄정지가 몸도 약하고 병이 짙어 신병을 치료하고 싶다는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중책을 맡기기 어려우니 한가로운 자리를 맡기시는 것이 옳겠습니다.”

 

현종은 엄정지를 중용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듣고 엄정지는 이임보의 음모에 빠진 것을 알고 분통이 터져 그만 울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이임보는 정적을 제거하는 데 있어 직접 공격하는 법은 없었다. 항상 간접적이었다.

특히 정적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그 나무를 흔드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제거된 정적도 나중에서야 자신을 공격한 것이 이임보임을 알아챌 정도로 교묘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이임보도 인간이었다. 특히 아들 이수가 “아버지 인심이 하루 아침에 변하는데 지금의 영화가 원망이 되어 재앙으로 닥칠까 두렵습니다”라고 말하자 “나도 지금으로서는 계속 나아가는 길밖에 방법이 없다”할 정도로 민심을 두려워했다.

그는 침상도 돌로 바꿨고 숙소도 자주 옮겼으며 집 안팎에 수많은 경호병을 배치하는 등 암살에 대비했다고 한다.

 

이임보는 언로를 차단하고 유능한 문관을 숙청해 중앙정부에 자신 외에는 돋보이는 관리가 없게 하는 방법을 권력을 유지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측근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사고가 생기면 그 측근을 제거하면서 책임을 면해나갔다.

 

그리고 소규모의 파벌을 인정하면서 그 파벌끼리의 분쟁에서 자신이 최종적으로 선택권을 갖고 한 파벌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파벌끼리 견제와 균형을 유지했다.

 

재상으로서 이임보의 공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재상으로 재직했던 17년 동안 나라는 큰 변란, 가뭄, 기근이 없었다.

또한 행정제도를 간소화했고 비효율적인 보고체계도 바꾸는 등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했고 중앙은 물론 지방 곳곳의 거점 지역에 양곡을 비축해 기근과 전쟁에 대비케 했다.

또한 재정 운영도 비교적 사치와 낭비를 없애 건전하게 운영했으며 지나치게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지도 않았다.

또한 그가 등용한 절도사 고선지는 서역을 개척해 당의 문물을 전파하고 국경을 확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그가 당나라에 끼친 폐해를 덮을 수는 없다.

그야말로 이임보는 재상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한 것이다.

대신 문관을 비롯한 인재의 등용을 기피하고, 무관과 이민족 절도사를 등용함으로써 향후 반란의 불씨를 남겼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 외에는 능력 있는 관리를 양성치 않아 훗날 당나라의 정치가 혼란에 빠지게 한 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처세와 아부의 차이를 구분하라

 

처세와 아부의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 짓기는 쉽지 않다.

둘 다 개인의 영달과 목적을 위한 수단이고 그 과정에서 본의였건, 본의가 아니었 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두 말은 자웅동체처럼 하나로 묶여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두 가지를 혼동하면 안 된다. 직장 내 처세와 아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변의 평판이다.

처세는 나를 비롯해 내 주변을 둘러싼 인적 관계, 상황을 우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

에 반해 아부는 직장 동료, 부하, 상사와의 관계는 무시하고 전적으로 권력자에게 모든 코드를 맞추는 것이다.

 

처세에는 최소한의 도가 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전우의 시체’를 밟고 전진하는 것은 처세가 아니다.

그것은 모함이고 아부이다. 처세는 그야말로 어떤 조건의 환경에서도 적을 만들지 않고, 나의 능력과 인격을 인정받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기에 처세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아부가 흑백의 구분, 피아의 구분 없이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말과 행동을 집중하는 것이라면 처세는 ‘같이 가는데 내가 한 걸음 더 앞서 가는 것’ 정도로 해야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처세의 달인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상사에게도 호감을 얻고 있지만 동료나 부하직원들이 반감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처세의 정점은 악역을 맡았을 때 드러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마음 같지 않게 직책이나 직급 상 때로는 악역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악역의 범위이다.

 

최소한의 범위에서, 상처의 치유가 가능하게끔 악역을 해야 한다.

완장 차고 큰 칼 휘두르는 모습의 악역은 처세의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세 명을 정리해야 한다면 최소 인원으로 정리 대상을 줄이고 떠나가는 자에게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차장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 애를 많이 쓰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는 것, 그것이 처세인 것이다.

 

물론 아부도 때로는 필요하다. 상사는 자신의 위치, 결정, 권력을 인정받고 때로는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설사 귀가 간지럽고, 손이 오글거려도 ‘세금 내는 것도 아닌데’ 한 번쯤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럴 경우의 아부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도이다. 한 번 아부를 시작하면 다음에는 더 좋고, 더 세련되고, 남들에게 못 듣는 아부를 찾고 창조해야 한다.

이것 또한 고통일 수 있다. 하루 종일 검색창에 ‘아부’를 쳐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 회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A 과장은 담당 이사에게 아침마다 A4 한 장 분량의 보고서를 올렸다.

그것은 회사 업무, 오늘의 할 일이 아니다.

 

각 신문에 난 부고와 인사난을 정리해서 담당 이사와 연관 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중요 순서대로 올렸다고 한다.

학연, 지연, 인맥, 이사의 상급자들의 관계까지 모두 망라된 이 독특한 보고서로 이사는 인맥을 유지했다.

당연히 그 과장은 부장까지 승승장구 승진했다. 오늘도 배운다. 뭐든지 스페셜해야 한다는 것!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 사진 픽사베이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6.08.24기사입력 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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