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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6월 헌종이 23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헌종은 두 명의 왕비와 두 명의 후궁을 뒀지만, 소생을 두지 못했다.

왕의 후계자가 결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헌종이 승하한 것이다.

 

당시 왕실 최고 어른은 헌종 때부터 수렴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이 된 순원왕후 김씨.

순원왕후를 중심으로 후계자 선정 작업에 들어갔고, 결국 선대부터 강화도에 귀양을 가 있어서 ‘강화도령’으로 불린 원범을 헌종 후계자로 지명했다.

원범은 강화도에서 왕명을 받아 찾아온 신하들과 함께 궁궐로 들어왔고, 6월 17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식을 올리고 조선 25대 왕 철종이 됐다.

 

철종(1831~1863년, 재위 1849~1863년)은 전계대원군 이광(李壙)과 염씨의 3남으로 1831년 한양의 경행방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원범(元範)이며, 후에 변()으로 고쳤다.

왕실 후손이었지만, 철종의 유년 시절은 불우했다. 선대가 역모죄에 연루돼 강화도로 유배됐기 때문이다.

 

불운은 조부인 은언군 이인에게서 비롯됐다.

은언군은 사도세자의 아들로 정조의 이복동생이었다.

홍국영이 정조의 총애를 받던 시절, 홍국영은 그의 누이 원빈의 양자로 은언군의 아들 상계군 이담을 들였다.

그러나 상계군을 내세운 역모 사건이 일어나면서 은언군도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신하들은 은언군 처벌을 거듭 주장했지만 정조는 끝내 그를 보호했다.

그러나 순조가 즉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던 시절 은언군의 처 송씨와 며느리인 신씨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결국 은언군은 처, 며느리와 함께 처형됐다.

은언군에게는 상계군과 함께 전계군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전계군은 세 아들 원경·경응·원범을 뒀다.

 

조부인 은언군대부터 시작된 불운은 후대에도 이어졌다.

형인 원경(화평군)이 1844년(헌종 10년) 민진용의 역모 사건에 연루돼 죽으면서, 경응과 원범을 포함한 집안사람 모두가 강화도로 유배된 것.

처음에는 교동으로 갔다가 다시 강화도로 옮겨졌다.

현재 강화읍에는 철종의 잠저(임금으로서 아직 왕위(王位)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인 용흥궁(龍興宮)이 남아 있어서 강화도령 시절 철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헌종 사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전계군의 두 아들 경응과 원범이 강화도에서 생존해 있었던 것이었다.

헌종에게 자식이 없었고, 가까운 왕실의 인물도 대부분 역모에 연루돼 있었기 때문에 순원왕후는 헌종의 후계 문제를 깊이 고민했다.

 

고심 끝에 영조의 핏줄을 이은 인물은 원범뿐이라면서 원범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경종 이후 지속된 당쟁과 19세기 세도정치 과정에서 헌종의 6촌 이내에 드는 왕족이 단 1명도 없었다는 점도 강화도령이 후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철종실록’에는 “1849년 6월 6일에 헌종이 승하하자, 순원왕후의 명으로 심도(沁都·강화도)에서 맞아들여 헌종의 대통(大統)을 있게 했다”고 한 것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응도 생존해 있었지만 순원왕후는 20세 이전의 왕이 더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원범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철종의 즉위로 전계군은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 인조 생부인 정원대원군에 이어 조선 역사상 세 번째 대원군이 됐다.

 

선대부터 역모 사건에 여러 차례 연루됐던 상처 때문에 철종은 그나마 목숨을 유지하면서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신변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차에 1849년 6월 조정에서 그를 찾는 행렬이 오자 무척이나 당황했다.

더구나 그를 왕으로 모시러 왔다는 영의정 정원용의 말을 바로 믿진 못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궁궐로 향했고 결국 왕위에 올랐다.

 

철종은 비록 왕이 됐지만 시골인 강화에서 오랜 기간 거주해 제대로 된 왕세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철종을 모시고 온 대신 정원용이 그동안 어떤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에 철종은 “통감 2권에 소학 1, 2권을 읽었는데, 그나마 읽은 것도 지금은 잊어버렸다”고 말해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왕의 자질이 부족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철종 즉위 후 순원왕후가 대신들에게 내린 첫 하교도 왕이 학업에 성취가 있도록 보필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백성들과 함께 생활한 철종의 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철종 개인적으론 검소한 사람이었지만 학문, 정치적으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철종을 왕위에 올린 것은 왕실에 마땅한 후계자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수아비 왕의 존재가 세도정치 유지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점도 한몫했다.

 

1863년 철종이 즉위한 후에도 순원왕후는 아직 19세인 철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게 됐다.

헌종대에 이은 2대 연속 수렴청정. 순원왕후로 대표되는 안동 김씨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만큼 커졌고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절정을 이뤘다.

 

강화도에서 노총각으로 살았던 철종은 1851년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을 왕비(철인왕후)로 맞았다.

순조, 헌종, 철종 3대 연속 안동 김씨 출신 왕비를 맞이하는 기록을 세운 것.

당연히 안동 김씨의 위상은 더욱 강화됐고, 안동 김씨에게 맞섰던 인물들은 대거 숙청됐다.

철종대 안동 김씨는 김좌근과 김흥근을 중심으로 왕의 장인인 김문근, 그리고 이들의 아들들인 김병기, 김병학, 김병국, 김병교 등이 정치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세를 과시했다.

 

이들 세도정치가에는 벼슬을 청탁하는 사람이 들끓었고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뇌물을 주고 수령이 된 관리들은 자신이 상납한 몫을 뽑기 위해 백성을 심하게 착취했다.

세도정치의 악순환이 계속된 것은 이런 부패의 연결고리가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도정치에서 파생된 정치 기강의 문란과 부정부패의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백성의 몫이 됐다.

철종대 진주 등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 농민항쟁이 일어난 것은 세도정치에서 파생된 정치의 부패가 백성의 삶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역모죄에 연루됐던 철종 집안의 경력은 왕실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래서인지 왕실에서는 철종의 선대가 역모죄에 연루된 기록의 삭제를 시도했다.

이것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보관돼 있는 ‘일성록’ 원본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일성록은 1760년(영조 36년) 1월부터 1910년(융희 4년) 8월까지 151년간 국정에 관한 제반사항이 기록돼 있는 일기다.

1783년(정조 7년)부터 국왕의 개인 일기에서 규장각 관원들이 시정(施政)에 관한 내용을 작성한 후에 왕의 재가를 받은 공식적인 국정 일기로 전환됐는데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전례의 고증이 필요한 경우 열람을 허용했다.

‘왕실의 비사(秘史)’로 인식해 보관에 주력한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국정 참고용 기록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철종 즉위 후 일성록에 손을 대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일성록에서 칼로 오려진 곳은 정조 10년 12월 1일부터 정조 23년 11월 5일까지 총 635곳에 달한다.

이것을 지시한 인물은 순원왕후였다.

헌종의 후계자로 강화에 귀양을 가 있던 철종을 지명했지만, 철종에게는 역모죄에 연루돼 강화에 귀양을 간 은언군의 후손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철종의 선대가 역적이라는 점은 철종을 왕으로 지목한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 세력에게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었고, 이것은 결국 일성록의 관련 기록 삭제로 이어졌다.

 

즉 정조시대 기록 중 철종의 선대인 은언군과 관련된 주요 기록을 없앰으로써 철종에게 불리한 기록을 완전히 세탁하려 한 것이다.

실제 삭제된 날짜의 기록을 철종실록과 비교하면 대부분 은언군이나 은언군의 아들인 상계군과 관련된 기록이다.

 

일성록의 기록 삭제는 19세기 후반 점차 권위가 추락하고 있는 조선왕조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농사를 짓다 갑자기 왕이 되는 상황은 어쩌면 무너져가는 조선왕조의 운명을 암시하기도 한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 일러스트 : 정윤정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8.29기사입력 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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