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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은 오나라를 대표하는 중신이며 책사였다.
그는 ‘조금은 우유부단해 제갈공명, 관우에게 이용당한 나약한 문관’ 정도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노숙의 실체는 그렇지 않다. 그
는 담대하고 원칙적이면서도 유연한 성격이었고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에서 결코 제갈공명에 뒤지지 않았다.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에서도 ‘수전에서는 주유, 육전에서는 노숙’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문무겸전의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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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발 같은 삼국 정립의 논리를 펼치다

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지연의>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지만 저자의 주관적 견해가 많이 개입된 작품이다.
나관중은 한나라 정통론에 입각해 한 황실과 인척인 촉나라의 유비를 중심으로 조조, 손권의 삼국시대를 펼쳤다.
자연히 유비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영웅적인 전쟁담과 일화들이 많이 소개되었고 그에 비해 조조나 손권의 장수와 책사들은 낮게 평가된 면이 있다.
 
오나라의 노숙이 대표적이다.  노숙은 오나라를 대표하는 중신이며 책사였다.
나관중은 노숙을 ‘조금은 어리석고 우유부단해 항상 제갈공명, 관우에게 이용당하는 나약한 문관이자 외교관’ 정도로 묘사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진수의 <삼국지>만 보더라도 노숙의 실제 면모는 그렇지 않다.
그는 담대하고 원칙적이면서도 유연한 성격이었고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에서 결코 제갈공명에 뒤지지 않았다.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에서도 ‘수전에서는 주유, 육전에서는 노숙’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문무겸전의 영웅이었다.

노숙은 손권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설파했다.
즉 조조의 강성함에 맞서기 위해서는 손권이 강동을 근거로 형주를 손에 넣고 국력을 키워 중원을 노려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당시 이와 비슷한 전략을 짤 수 있는 책사는 제갈공명이 유일할 정도였다.
노숙은 혜안과 판단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조조가 손권에게 항복을 요구할 때도 주유와 함께 주전론을 펼치는 한편 유비를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여 승리를 이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이후 형주를 근거지로 한 유비, 화북의 조조와 강남의 손권의 솥발 같은 대치에서 촉나라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조조의 남하를 막아내기도 했다.
또한 오나라 대도독 주유가 병사하자 주유의 유언과 손권의 선택으로 대도독으로 손권을 보필해 조조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소국 오나라’를 만들었다.

노숙의 탁월한 능력은 촉나라와의 외교에서 드러난다.
오나라는 촉나라에게 항상 손해를 보는 형국이었지만 노숙은 그것을 밑지는 장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나라와 촉나라는 ‘순망치한’의 관계로 서로 경계하고, 대치하며, 한편으로 공존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거나 설사, 한 쪽이 승리하더라도 조조를 당해낼 국력은 아니었다.
오로지 두 나라의 협력 구도는 위나라의 조조가 함부로 두 나라 중 한 곳을 공격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즉 조조가 촉을 공격하면 오나라에게 측면을, 오나라를 공격하면 촉에게 후방을 내주는 결과이기에 조조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전략적 구도를 노숙은 제갈공명과 같이 공유하며 판을 짜고 유지했다.

또 하나는 후계자의 양성이다.
노숙은 주유의 뒤를 이어 도독이 되었다.
주유는 불과 36세에 병사했고 노숙 역시 46세에 병사했다.
그러나 주유가 노숙에게 많은 경험과 힘을 물려주었듯이 노숙 역시 여몽과 육손이라는 훌륭한 후계자를 양성했다.
이들은 노숙 이후 차례로 오나라의 대도독이 되어 오나라를 지탱했다.

▶손권과의 만남, 천하 경영을 설파하다

노숙은 양주 임회군 동성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려서는 조모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그의 집안은 대단한 부호로, 노숙은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노숙은 집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대접해 그 인근의 인재들이 노숙의 집에 거의 기거하다시피 했다.
노숙은 풍채나 체구가 사내답게 늠름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유학도 공부했지만 병서에도 관심이 많았다.
병법을 공부하고 무술도 배워 검술, 기마술, 궁술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갖고 있었고 사병도 모아 군사훈련도 실시했다.
이때 노숙이 평생의 인연을 만나게 된다. 바로 주유이다.

주유는 당시 거소라는 작은 현의 현장에 근무했다.
주유는 일면식도 없는 노숙에게 군량이 부족하니 곡식을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노숙은 이유도 묻지 않고 무려 3000곡이 저장되어 있는 양곡 창고 두 개 중 하나를 주유에게 선뜻 내주었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교류를 시작한다.
노숙의 명성이 인근에 파다하게 퍼지자 그 지역의 실력자인 원술이 노숙을 동성현의 현장으로 스카웃했다. 노숙이 맡은 첫 관직인 셈이다.
하지만 노숙은 곧 현장 직을 그만둔다.
그는 원술이 지휘하는 조직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고, 또한 원술의 인덕과 능력이 패자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노숙은 일족과 사병들을 모아 “곧 천하대란이 시작된다. 이곳을 떠나 풍요롭고 안전한 강동으로 가자”고 설득해 총300여명을 이끌고 이주를 시작했다.

그때 노숙의 친구인 유엽이 노숙에게 “인근에 1만 병사를 모은 정보를 섬기자”고 권유했다. 노숙도 동의했다.
하지만 주유가 한발 빨랐다.
주유는 노숙의 어머니를 오군으로 이주시켜 노숙이 강동으로 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당시 강동은 손책이 병사하고 그의 동생인 손권이 후계를 이었다.
주유는 손권에게 노숙을 소개하기 전 “이제는 신하가 주인을 선택하는 시대이다.
손권은 충분히 주군으로 모실만한 인품과 능력을 갖고 있다”고 설득했다.

노숙은 손권과 독대했고 손권의 질문을 받았다.

“나는 제 환공, 진 문공과 같은 공적을 세우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가?”

노숙이 답했다.

“한 고조이신 유방께서 의제를 모시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는 항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조조가 바로 항우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 황실의 부흥은 이제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원소가 지금은 강대하지만 곧 조조가 득세할 것이고 이후 조조를 멸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주군께서는 강동을 지키면서 정세를 살펴야 합니다. 조조가 북쪽을 경영하면 그때 황조를 제거하고 유표의 형주를 손에 넣은 다음 장강을 장악해 조조와 맞서야 합니다. 그런 다음 황제가 되어 새로운 왕조를 열어야 합니다. 또한 유비라는 자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 자를 끌어들여 조조를 견제하는 도구로 써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노숙의 정세 읽기 능력이다.
그때 중원의 강자는 원소였다.
조조는 원소와 일진일퇴를 벌였지만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고 원소는 조조보다 10배나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유비는 서군이라는 조그만 마을의 장으로 사실 무명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데 노숙은 이미 조조가 원소를 이길 것이고, 유비가 덕망을 바탕으로 일가를 이룰 것이라는 것을 미리 파악했다.
노숙의 이 같은 전략은 대담한 성격과 혜안이 없었다면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천하를 삼분해 정립하고 그 안에서 패자의 기회를 엿보자는 노숙의 이런 계획은 훗날 유비가 삼고초려 한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설명한 ‘천하삼분지계’와 일맥상통한다.
노숙의 능력이 비범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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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손권, 유비의 삼분할 체제 구축

노숙은 손권의 책사가 되었다. 당시 오나라는 공신 세력과 지방 호족 세력이 팽팽한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주유의 존재감은 제일 크고 무거웠다.
그는 공신 세력과 호족 세력의 대표성을 한 몸에 갖고 있었다. 그가 손권에게 충성을 맹세하자 오나라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소를 중심으로 한 중신 세력들은 노숙을 불신했다.
특히 내정을 담당하는 재상 장소는 노숙을 싫어했다.
장소는 손책이 죽으면서 “내정은 장소가, 군사는 주유가 담당하라”는 유언을 남겼던 훈구세력의 중심이었다.
장소는 노숙이 “유학을 공부해야 할 선비가 가슴에 병법서가 갖고 다니고 나이도 어린 것이 불손하다”고 말하며 그의 중용을 막았다.
하지만 손권은 노숙을 측근에 두었다.
그리고 밤마다 한 침대에 누워서 노숙과 정세와 전략을 논의할 정도로 노숙에 대한 신임을 깊게 했다.

이 무렵 노숙의 예언대로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100만 대군을 대파하고 화북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름뿐이기만 한 황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명분에서도 그 어떤 제후보다 앞서기 시작했다.
화북을 점령한 조조는 파죽지세로 통일전쟁을 앞당겼다. 그는 손권에게 사자를 보냈다.
“머리를 숙이고 항복하면 평화를 지킬 수 있고 그렇지 않고 대항하면 강동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협박성 항복 권유였다.
오나라는 자중지란에 빠졌다.
오나라의 모든 문신은 물론이고 장군들조차 조조 군대를 두렵게 여겼다. 장소를 중심으로 한 주화파는 손권에게 항복을 권했다.

그때 형주의 수장인 유표가 죽었다. 형주는 유표의 아들인 유종과 유기를 중심으로 파가 나뉘었다.
형주는 강동과 인접해 있고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자 곡창지대였다. 노숙은 빨리 움직였다.
형주와 유비를 오나라와 한 편으로 해야 한다고 손권에게 청하고 스스로 사신으로서 유비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 조조의 사자도 형주에 도착했고 유표의 큰 아들 유종은 이미 조조에게 항복한 후였다.
유비는 유종을 피해 강하로 몸을 피했다.
노숙은 유비와 제갈공명을 만나 오나라와 손을 잡고 조조와 일전을 치르자고 설득했다.
제갈공명은 노숙의 의견에 찬성한 후 유비를 설득해 군대를 모아 오나라에 합류했다.
하지만 오나라는 여전히 항복론이 대세였다.
주유와 노숙만이 조조와의 일전을 주장했다. 손권은 답답했다.
옷을 갈아입으러 내전으로 들어가는데 노숙이 뒤따라 들어왔다.
 
손권은 노숙에게 “이 전쟁이 승산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노숙은 대답했다.
“주군, 항복을 주장하는 저들은 전쟁에 져도, 항복을 해도 아무런 피해가 없습니다. 벼슬도 최소한 지방의 현령이라도 할 수 있고 재산과 토지도 그대로 유지할 것입니다. 저들은 강동과 주군을 위해 항복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전쟁을 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군은 저들과 다릅니다. 주군은 항복을 하면 이 천하에 갈 곳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손권을 결심을 굳혔다. 주유를 총사령관, 노숙을 판군교위로 임명하고 조조와 일전을 준비했다.
대세를 읽는 안목과 논리 정연한 예측, 현명함이 엿보이는 노숙의 설득으로 주저하던 손권도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 뒤 주유와 제갈공명의 신기에 가까운 화공 전략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은 무너졌다.

적벽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노숙을 손권은 친히 성 밖으로 나가 맞았다.
“내가 그대의 손을 잡고 말에서 내리게 하는 예를 취하면 그대의 이번 승리에 조금은 보답이 되겠는가?”

“부족하옵니다. 주군께서 천하를 얻고 천자가 되어 그때 신을 맞아주시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하자 손권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노숙의 천하 경영에 대한 야심은 당시 그 어떤 제후나 책사보다 강렬했다.

▶친유비 정책으로 손권이 조조의 주적이 되는 것을 막다

유비는 제갈공명의 활약으로 적벽대전 승리의 일정 지분을 확보했다.
그는 유표가 떠난 형주의 남부 4군을 손에 넣었다. 무릉, 장사, 계양, 영릉이다. 이 땅은 원래 손권의 지배하에 있었다.
유비는 손권에게 이 형주 땅을 관할하겠으니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주유는 펄쩍 뛰었다. 주유는 손권에게 이번 기회에 유비도 공격해 없애던가, 아니면 손권의 여동생과 결혼을 시켜 포로로 삼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숙만은 손권에게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숙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이미 유비가 점령하고 있는 형주를 빼앗기 위해 손권과 유비가 전쟁을 벌이면 전력에 손상을 입은 조조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게 되고 결국 조조의 막강한 전투력에 의해 전쟁으로 손실을 입은 유비나 손권 모두 패하게 된다는 논리였다.
손권은 노숙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 대신 유비는 노숙에게 현 형주의 제후인 유기가 죽거나 유비가 익주나 서천을 손에 넣으면 형주를 손권에게 되돌려 준다는 약속을 했다.
유비는 형주 방어대장으로 관우를 임명했다.

노숙의 조언으로 손권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자 오나라 내부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노숙의 이런 사려깊은 계획을 알아 챈 영웅은 단 두명 있었다.
한 명은 제갈공명이고 또 하나는 조조였다.
조조는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빌려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들고 있던 붓을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노숙의 계획은 강력한 위나라를 견제하고 작은 오나라, 촉나라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며 고차원적인 전략인 것이었다.

오나라의 대도독 주유가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주유는 죽으면서 손권에게 “제 후계자로 노숙을 임명해 주십시오”라고 노숙을 추천했다.
210년 주유는 죽고, 노숙이 오나라의 제2대 대도독이 되었다.
후대 송나라의 학자 고평중은 “계책은 노 씨네 무서운 아이가 뛰어나고, 이를 조화롭게 펼친 자로는 주랑이 있었네”라며 노숙과 주유를 칭찬했다.

그 무렵 유비는 눈을 돌려 유장의 익주를 공략해 손에 넣었다.
손권은 약속대로 형주를 돌려 달라 유비에게 말했다. 유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손권은 분노했다.
“짚신이나 만들던 자가 감히 나를 속였다”고 불같이 화를 내고 전군에 비상령을 내렸다.
하지만 일촉즉발의 전쟁이 발생할 화약고인 형주는 평온했다.
관우와 노숙이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는 관우에게 오나라를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노숙은 관우와 일 대 일 대면을 요구했다. 관우는 이에 응했다.
그는 일엽편주에 주창과 병사 몇 명만 거느리고 오나라 진영으로 들어왔다.
보통 강심장이 아니었다.
이때 노숙은 병사들을 매복시켰다.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관우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관우와 노숙이 마주했다.

“이 형주 땅은 유비께서 잠을 잘 때도 갑옷을 벗지 않고 고생해서 얻은 땅이다. 이를 왜 오나라가 돌려달라고 떼를 쓰는가?”

“관운장도 잘 알다시피 과거의 전력이라면 촉은 형주땅은 물론이고 천하에 어디 발붙일 곳도 없었습니다. 우리 오나라는 당시 유비가 패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 그 땅을 빌려준 것입니다. 주군 손권의 배려와 보호가 없었다면 지금의 촉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유기가 죽거나, 익주를 손에 넣으면 돌려준다는 약속을 깨뜨린 것도 바로 유비입니다. 형주 전체도 아니고 세 군만 돌려달라는 것도 거부하는 것은 탐욕에 따라 의를 버리는 행동으로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

논리 정연하고 대담한 말에 천하 영웅 관우 조차 딱히 답을 할 수 없었다.
밖에 배치된 병사들은 모두 노숙의 신호를 기다렸다. 관우도 알고 있었다.
술을 마신 관우는 노숙의 부축을 받는다는 핑계로 노숙을 일종의 인질로 삼아 배를 타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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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상대할 후계자를 양성하다

역사는 이 사건을 두 가지 시선에서 보고 있다.
하나는 관우의 영웅적인 배포를 중심으로 노숙이 관우의 인질이 되어 매복한 병사들이 움직이지 못했다는 관점이다.
또 하나는 노숙의 자제력이 대단하다는 평가이다.
즉 노숙이 마음만 먹었으면 신호를 보냈고 그러면 수백 명의 병사들이 관우를 분명 죽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노숙은 당장의 현실보다 먼 미래를 생각했다.
즉 이 자리에서 관우를 죽이면 형주도 손에 넣고 속은 후련하겠지만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 촉나라의 모든 군사력을 집중해 오나라를 공격할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두 나라는 치명상을 입어 곧 위나라 조조의 제물이 된다는 계산이었다.
이것은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더 힘을 키워야 한다는, 현명하고 이성적이며 냉정한 판단이었다.
마침 조조가 한중을 점령하고 세를 더 키우자 관우는 형주의 3군을 노숙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관우 또한 노숙의 깊은 속내와 인품에 감탄한 터였다. 노숙은 여몽에게 지시했다.
다시 반환 받는 3군에는 당분간 관리만 파견하고 군대는 주둔치 말라고 주문했다.
이는 관우를 자극치 않고 관우의 오나라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지기를 기다리자는 노숙의 사려깊은 생각의 결과다.

오래지 않아 노숙이 병을 얻었다. 병은 점점 깊어졌다.
노숙은 자신의 뒷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권에게는 당분간 촉과 긴장이 함께하는 평화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위나라와는 항상 경계심을 잃지 않되 촉과의 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권유했다.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여몽이었다.
여몽은 본래 무술만 알고 글이 모자라는 전형적인 무관이었다.
노숙도 처음에는 여몽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손권과 노숙은 여몽에게 “무릇 한 나라의 장수가 되려면 무예와 병법도 중요하지만 글을 잃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뒤 노숙은 여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몽이 달라진 것이다.
학문은 깊어지고, 생각은 진중해지고, 언행도 올바르게 변했다.
‘괄목상대 刮目相對’ 즉 ‘눈을 씻고 상대를 다시 보게 된다’는 뜻으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여몽을 칭찬하는 고사성어가 이때 생긴 것이다.

노숙의 단점을 감싸는 인품과 칭찬이 여몽을 훌륭한 장군으로 만든 것이다. 노숙은 죽기 얼마 전 여몽과 마주했다.
 
여몽이 물었다.
“도독, 우리 오나라는 항상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를 대항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다. 유비가 약하고 조조가 강할 땐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를 치고, 대신 유비가 강하고 조조가 약할 땐 조조와 손잡고 유비를 쳐야 우리 오나라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노숙은 이 같은 유언을 남기고 217년,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가 죽자 손권이 곡을 하고 오나라는 물론 촉나라의 사람들, 특히 제갈공명이 무척 슬프고 아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제갈공명으로서는 자신과 뜻과 이상이 같은 동시대를 같이 한 동지를 잃은 슬픔인 셈이다.



▷# 처세술 | 머리를 숙이고, 작은 것은 주고, 대신 큰 뜻을 얻어라

노숙은 문사이면서도 무관이었다. 그는 항상 근엄했고 겉치레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검약했다.
그리고 전쟁 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고 언변은 항상 논리정연하고 기획력도 좋아 역사가들은 오나라 최고의 인재로 주유와 함께 노숙을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노숙은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인물이었다.
오나라 안에서는 장소 등 훈구대신의 푸대접을 받았지만 노숙은 개의치 않았다.
항상 이들을 공손하게 대했고 밖으로는 유비, 제갈공명, 관우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면서도 화를 드러내지 않고 머리를 숙인 인물이다.

그는 개인적인 높은 평판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드러난 공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즉 그는 형식보다는 내실을,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책사였다.
그래서 외교를 총괄하면서 유비는 고사하고 동급의 제갈공명이나 관우의 푸대접과 속임수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고개를 한 번 더 숙이고, 눈에 보이는 작은 이득을 양보함으로써 오나라와 촉나라가 건재하고 그래야 위나라의 조조를 견제하면서 언젠가 자신의 주군인 손권이 천하패자가 될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떨때는 천하의 어린아이도 다 알만한 속임수에도 넘어가 주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원망과 조롱이 나라 안팎에 가득했지만 노숙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부러 알면서 속아주고, 넘어가주는 대범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숙의 이상을 손권, 제갈공명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 인색했던 관우마저도 “오나라의 영웅은 오직 노숙뿐이다”라고 말했다.
노숙은 또한 후계자 양성에도 힘을 쏟았고 천하 인재를 손권에게 소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장 아쉬웠던 이는 바로 방통이다. 당
시 세상에는 “천하를 얻으려면 복룡과 봉추 중에서 한 명만 얻어도 된다”는 말이 있었다.
이 복룡이 바로 제갈공명이고, 봉추가 방통이었다.
이런 천하기재 방통을 손권에게 천거했지만 손권은 방통의 건방짐과 추하게 생긴 얼굴을 못마땅하게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방통은 유비에게 가 서천, 익주를 점령하는 큰 공을 세웠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후계자와 인재를 천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품이 완성된 자만이 할 수 있는 배려와 충심의 발로인 것이다.
노숙은 비록 손권의 천하 경영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삼국시대 오나라의 숨은 전략가임에 틀림없다.
주유도 그랬지만 노숙의 요절이 두고두고 오나라에게는 아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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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의 나무로 만족하지마라

착하고 원만하다는 것이 ‘바보같고 속이기 싶다’는 뜻과 동의어가 된 지 오래다.
직장 생활이 소리 없는 총성이 오고가는 전장터가 되었고 영리하고 실속 있는 직원만이 살아남는 경쟁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얕은 잔꾀와 이중적인 처세, 자기만 아는 무한 이기주의는 결코 오랜 승부의 바탕이 될 수 없다.
한 순간을 모면하는 임기웅변은 될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기획실에 김 과장이 있다. 실력과 인품에서 꽤 인정을 받고 있는 직원이다.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새로운 제품 출시를 서두르자는 영업부와 디자인과 트렌드를 면밀히 더 검토하자는 기획실 사이의 이견 조율을 맡았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영업부서의 “이번 출시 타이밍을 놓치면 회사는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는 주장을 매일 듣고 이를 디자인실, 마케팅실, 기획실에 전달하는 업무에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부서가 회사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제품 출시에 따른 성과와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자기 부서가 떠맡기 싫다는 속내였다.
김 과장은 각 부서 회의에 참석하고 종합 보고서를 올렸다. 제품 출시의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그의 보고서 내용이었다.
기획실 부장은 물론 담당 임원까지 주저했지만 그는 디자인, 마케팅, 기획실 자금조달 등에서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결국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기획실 부장은 “네가 영업부서냐”는 질책까지 했지만 결국 김 과장의 의견은 받아들여졌고 제품은 출시되었다.
타 회사보다 보름 먼저 출시된 제품은 결국 선점 효과로 이른바 대박을 쳤다.

그제서야 영업, 기획, 디자인실 등 모든 부서가 이 성공의 바탕이 자기 부서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김 과장은 드러내지 않고 다음 상품 기획에 들어갔다. 이 모든 과장을 최종 결제한 전무가 김 과장을 불렀다.
“김 과장의 공이 큰데.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나?” 김 과장은 뻔하지만 정답을 말했다.
“저는 기획실 소속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직원입니다.
부서의 이익과 성과보다는 회사의 목표가 더 중요하기에 모든 부서의 목소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이후 김 과장은 기획실 차장, 부장을 거쳐 관리와 기획업무를 총괄하는 임원까지 승진했다.
 
물론 성공담은 항상 아름답다.
하지만 부서의 이견을 조율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목소리가 큰가’가 아니고 ‘누구 목소리가 가장 이익이 되는가’이다.
김 과장은 각 부서를 오가며 심부름꾼 역할을 자처했고, 이곳, 저곳의 부서 이기주의를 맞춰주면서 전체를 조율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안목이다.
부장의 지시, 회사의 방침을 단 한 번이라도 지시자의 입장에서 살펴봐야 한다.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순간 지금은 한 그루의 나무에 불과해도 곧 숲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쉽다.
또 말하는 것보다 적당히 침묵하다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차에 올라타는 것이 쉽다.
 
하지만 조직은 직원 한 명 즉 나무 한 그루가 그 숲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떤 쓰임새로 자라는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00원을 주고, 1000원을 받는 게임은 누구나 한다.
그런데 그 단위가 10만원, 100만원을 주고 1000만원을 받는 것이라면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직장에서 인생에서 어떤 순간 1000만원 주고 1억을 받을 때도 있는 것이다.
비록 그 결과가 한참 후에 나오더라도 분명한 것은 언젠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박기종 커리어코칭칼럼니스트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9.02기사입력 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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