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전체 주제 보기
더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프린트      목록

최고 권력자 황제의 측근인 환관이 권력에 맛을 들이고 간신이 되면 그 폐해는 상상 이상이다.
거의 나라를 들어먹는 지경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명나라 말기 환관 위충현이다. 그는 건달에 문맹으로 빚에 쫓기자 스스로 거세하고 환관이 된 자이다.
일개 환관의 신분에서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향유한 위충현.
그는 명나라의 수명을 단축한 주범이자 간신이며, 황제의 최측근 환관이 권력에 몸을 담으면 어떠한 최후가 기다리는지를 보여준 역사의 산증인이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중국 역사상 최고 권력자가 된 환관 

진시황제의 천하통일을 일장춘몽으로 만든 것은 아들인 2세 황제 호해가 아닌 조고이다.
한나라를 부흥시키려는 기회를 무산시킨 주범은 황호이고 북송의 몰락을 가져온 부정부패와 문란한 황실을 만든 것은 바로 동관이다.
또 있다. 명나라 말기 기세등등한 권력으로 국정을 농단한 권력자는 위충현이다.
그는 다음 황제인 숭정제에게 능지처참형을 당했지만 명나라는 이미 소멸되는 달 신세였다. 숭정제가 기를 쓰고 명나라를 다시 일으키려 했지만 명나라의 기운은 이미 다 소진된 상태라 20년 뒤 청나라에게 멸망했다. 그 주범이 바로 위충현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희대의 간신이며 환관이라는 것이다. 

물론 항상 ‘간신=환관’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인 황제의 측근에서 근무하는 환관이 권력에 맛을 들이고 간신이 되면 그 폐해는 상상 이상이다.
거의 나라를 들어먹는 지경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위충현이다.
그는 건달에 문맹으로 빚에 쫓기자 스스로 거세하고 환관이 된 자이다.
용모가 수려하고 언변이 좋아 주위의 호감을 얻었다.
그가 궁중에서 맨 처음 한 일은 똥통을 치우는 일이었다.
환관 중에서도 제일 하층으로, 위충현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똥통을 치우면서 권력과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을 키웠다. 위충현은 태자궁 태감 왕안에게 손을 써 똥통 치우는 신세를 겨우 면하게 된다.
그리고 왕자 주우교의 거처에 배치된다.
그런데 이 단순한 근무지 이동이 그의 운명은 물론 명나라의 국운까지 좌우하는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당시 황제는 만력제.
그는 40여 년이 넘는 재위기간 동안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황제’의 표본이었다.
만력제의 나이가 들자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궁중과 내각에서 암투가 시작되었다.
무능하고 의욕상실이었던 황제에게는 후궁 소생의 아들 5명이 있었다.
장남인 주상락이 황태자가 되는 것이 당연했지만 만력제는 주상락을 싫어했다.
그는 오히려 3남 주상순을 지지했다.
황제의 뜻을 알아챈 환관 세력은 주상순의 편에 섰지만 관료들은 장자상속의 예를 내세우며 장남인 주상락을 지원했다.
결국 주상락이 태자가 되었다.
만력제가 죽고 곧바로 주상락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가 태창제이다. 하지만 태창제는 황제가 되자마자 불과 몇 달 만에 급사한다.
해서 그의 아들 주우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그가 천계제이다.
15세의 천계제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키운 두 명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바로 환관 위충현과 유모 객 씨이다.
이 두 사람은 황제의 존엄과 권력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위충현의 기세는 그야말로 황제에 버금갔다.
그는 동창이라는 환관 비밀조직을 통해 모든 내각과 지방 조직을 감시하며 황제의 섭정 역할을 했다.
조정은 일자무식 문맹이었던 위충현의 사람으로 가득 찼고 그를 반대하면 모두 죽어나갔다. 급기야 살아있는 위충현을 모시는 사당이 전국에 지어졌고 황제를 칭송하는 ‘만세’처럼 위충현에게는 ‘구천세’를 외치는 간신무리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권력은 유한한 것. 평생을 살 것 같았던 천계제가 그만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그 뒤를 이은 황제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로 천계제의 친동생이다.
숭정제는 위충현의 권력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는 서서히 자신의 세력을 키운 다음 방심한 위충현을 공격했다.
숭정제는 시골에 있는 황릉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위충현을 유배보내는데 성공한다.
위충현은 황제의 숨은 뜻을 잘못 읽었다.
단순히 자신을 내치는 것으로 이해한 그는 수많은 식솔과 군대를 이끌고 내려간다.
숭정제는 대노했다. 당장 금의위 군대를 보내 위충현을 잡아오라 엄명을 내렸다.
대세가 기운 것을 깨달은 위충현은 목을 매 자결한다.
하지만 숭정제는 그의 시신을 능지처참한다. 

궁궐의 똥이나 치우던 신세에서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향유한 위충현.
그는 명나라의 수명을 단축한 주범이자 간신이며, 황제의 최측근 환관이 권력에 몸을 담으면 어떠한 최후가 기다리는지를 보여준 역사의 산증인이다. 

▶살기 위해 거세하고 환관이 되다 

1568년 허베이성 창저우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위충현의 본명은 위사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그저 빈둥거리는 동네 건달이었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도박이었다.
위사는 매일 도박판을 기웃거렸고 그 결과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결국 도박 빚을 갚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살기 위해 관청에 자수한다.
태형, 유배, 군 입대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 거세하고 환관이 되기를 자청했다. 22세 때의 일이다.
그는 처자식을 버리고 북경 자금성으로 들어간다.
이때 환관으로서의 이름은 이진충이다. 자금성에는 수 천 명의 환관이 있었다.
환관은 직책과 직급도 다양했고 위계질서가 대단히 엄격했다.
제일 수장은 태감으로 그의 권력은 내각의 수장과 견주어도 결코 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황제를 직접 모시는 건청궁 소속의 환관들은 그 안에서도 성골이었다.
하지만 죄를 대신해 환관이 된 이진충이 할 수 있는 일은 남들이 꺼리는 궁중의 변소 청소였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똥지게를 날랐고,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서 온종일 근무했다. 

하지만 이진충도 재주가 있었다.
그는 풍채가 좋고 용모도 호남형인데다 말주변도 좋아 금방 상관들이 아끼는 환관이 되었다. 그는 뇌물을 쓰고 아부를 해 지겨운 변소청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어린 왕자인 주유교의 시종 환관이 된다.
주유교의 아버지는 주상락으로 만력제의 장남이었지만 만력제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주유교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고 또한 그의 처소에는 항상 돈과 음식이 부족해 이진충은 궁을 다니면서 어린 주군을 위해 먹을거리를 장만하곤 했다.
이진충은 극진히 자신의 주인인 주유교를 모셨다. 

주유교는 어머니가 아닌 유모 객 씨의 손에 컸고 항상 이진충을 곁에 두었다.
이진충은 당시 “당금 황제도 만세, 태자도 만세이지만 우리 소공자께서 황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황하가 맑은 물로 변하는 것일거야”라고 한숨 쉬며 말하면서도 주유교에 대한 충성심만은 대단했다.
그만큼 당시 정세는 주유교가 황제가 되거나, 권력핵심부로 진출하리라는 전망은 전혀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
만력제의 반대 의사에도 관료와 학자들로 이루어진 당파인 동림당은 주상락을 태자의 자리에 앉히는 데 성공한다.
졸지에 주유교는 왕자에서 황세손으로 신분이 격상되었다.
이진충에게도 서서히 빛이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주유교는 환관 이진충에게 성을 찾아주고 ‘현명한 충신’이라 되라는 뜻의 이름 ‘위충현’을 하사한다. 

▶황제를 대신해 섭정의 권한을 행사하다 

만력제가 죽었다. 주상락이 황위를 이으니 바로 태창제이다.
조정의 권력은 태창제를 옹립한 동림당이 장악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랄까.
태창제는 황제의 자리에 앉아 호령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몇 달 만에 병으로 죽고 만다.
태창제의 혈육인 주유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바로 천계제로 이때가 1620년, 황제의 나이 불과 15세였다.
궁에 들어와 똥지게나 지던 위충현은 한순간에 황제의 최측근이 되었다.
대식이란 제도가 있다. 환관과 궁에서 근무하는 여인이 부부처럼 짝을 이루는 제도였다.
황제의 유모 객 씨의 대식이 되기 위해 위충현과 위조, 두 환관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이 격해지자 천계제가 개입했다. 천계제는 유모 객 씨에게 물었다. 

“폐하, 위조는 사람이 경박해 싫습니다. 위충현이 대식으로 적당할 것 같습니다.” 

위충현은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날개까지 달았다.
황제의 신임에다가 ‘황제의 여인’인 유모 객 씨라는 지원군을 얻은 것이다.
유모 객 씨는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나이는 40세가 넘었지만 외모는 갓 스물을 넘긴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야사에는 객 씨가 천계제의 유모이지만 아마도 천계제의 ‘숨겨진 여자’였을 수도 있다고 전한다.
위충현과 객 씨는 황제를 움직여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평소 목공예와 고양이, 전쟁놀이, 말 타기를 좋아하는 천계제를 위해 고양이를 모아놓은 ‘모야방’을 설치하고 전국의 명마를 자금성으로 모았으며, 또한 산수화를 좋아하는 천계제를 위해 서호를 비롯한 강남의 풍경을 그려 환심을 샀다.
그리고 천계제가 직접 만든 목공예품을 시장에서 팔아 1만전을 받아오는 등 위충현은 국정보다는 개인적인 취향에 천계제의 관심을 모으는데 집중시켰다. 

위충현은 건청궁 황제의 집무실을 장악했다. 즉 문지기가 된 것이다.
그의 허락 없이는 어느 누구도 황제를 만날 수 없었다. ‘문고리 실세’인 셈이다.
천계제는 위충현을 환관의 최고 수장인 사례감 병필태감으로 임명했다.
병필태감의 자리는 단순히 환관 수장이 아니었다.
그 역할은 황제의 뜻을 받들어 공식 서류에 붉은 색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었다.
황제 대신 위충현의 의중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흘러갔다.
1623년 위충현은 ‘동창 東廠’의 장관을 겸했다.
동창은 환관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비밀경찰이었다. 동창의 역사는 깊다.
명을 창업한 홍무제는 환관들의 정치 참여를 막기 위해 환관들에게 한문 교육을 금지했다.
박기종 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6.09.08기사입력 2016.09.1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프린트      목록

최신 컨텐츠
라이프
1863년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고종(1852~1919..
여행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11월 중순부터 형형색색의 조..
푸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동의보..
푸드
옆구리 시린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누군가는 썸을 타며..
라이프
한나라 무제는 주부언을 파격적으로 등용했다. 주부언은..
이슈
프리미엄고속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항공기의 비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