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전체 주제 보기
더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프린트      목록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일본 온조지에 모셔진 신라명신상. 장보고를 형상화했다는 학설이 제기된다

일본 교토 동쪽 시가(滋賀)현에 위치한 온조지(園城寺)는 하쿠호(白鳳·645~710)시대 창건된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이다.
이 유서 깊은 절에는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이라는 건물이 있으며 그 안에 신라명신상(新羅明神像)이 안치돼 있다. 모두다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신라선신당과 신라명신상은 일본 천태종 5대조인 엔친(圓珍·814~891)과 관련이 있다.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친 엔친은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른다.
항해 도중 배가 난파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백발 노인이 나타나 스스로 “신라명신”이라 지칭하면서 위기에서 구해줬다. 엔친이 무사히 돌아온 뒤 온조지를 다시 일으킬 때 그 노인이 모습을 드러내 “불법을 수호하도록 사원의 북쪽에 신사를 세우라”고 했다.
엔친은 신라선신당을 짓고 노인을 기려 건물 안에 신라명신상을 모셨다. 

신라명신상은 노송나무를 조각했으며 높이는 78㎝다.
소설가 최인호는 소설 ‘해신’(海神)에서 이를 두고 장보고라는 의견을 펼친 바 있다. 학계 일각에서도 ‘신라명신=장보고’설이 제기된다.
통일신라시대 동북아시아 바다 상권을 장악했던 ‘해상왕’이었지만 자객에게 암살된 비운의 인물 정도로 우리는 장보고를 기억하고 있다.
장보고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며 그의 목상은 왜 일본 천태종 본산에 남은 걸까. 

당나라 문인 두목(杜牧)의 ‘번천문집’(樊川文集)은 장보고를 두고 “명철한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서 동방의 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장보고가 의리와 용맹이 있다 하더라도 중국 사서가 아니면 그 자취가 없어져 위대함이 알려지지 못할 뻔했다”고 적혀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신라명신상이 봉안된 온조지 신라선신당.

 
장보고의 출신은 미천해 성조차 갖지 못했다. 어린 시절 궁복(弓福), 궁파(弓巴), 활보 등으로 불렸다. 중국 측 기록에는 모두 장보고(張保皐)이다.
여기서 장보고라는 이름은 궁복의 ‘궁’이 ‘장’과 비슷해 지어졌고 ‘보고’도 ‘복’에서 음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일본은 장보고(張寶高)이다.
이 일본 측 이름은 무역을 통해 거액의 이윤을 얻어 붙여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가 해도인이라는 삼국사기 기록을 볼 때 그의 출신지가 해안지방임을 알 수 있다. 청해진을 완도에 설치한 것으로 미뤄 완도 또는 그 주변일 것으로 짐작된다.
학계에 의하면 그는 당대 신라에서 자생한 대동류 유술(합기도의 원형)을 익혀 무술의 고수가 됐다.
그러나 백제 후예인 데다 평민이던 그는 신라의 중앙으로 진출할 기회가 원천 차단됐다. 

20대의 장성한 장보고는 신분제가 엄격한 신라에서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입신양명을 위해 당나라로 건너간다.
장보고는 쉬저우(徐州)의 무령군(武寧軍)에 소속돼 승마와 창술에 특출난 재주를 보여 주목 받았으며 당조정에 반기를 든 평로절도사 이사도(李師道) 군대를 진압하는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워 벼슬이 소장(小將)에 올랐다.
그러나 이사도의 군대가 토벌되고 난 뒤 뜻밖에도 무령군 감축 정책이 단행된다. 821년 장보고는 관직을 떠나 산둥반도를 근거지로 해상무역에 투신한다. 

일본 천태종 3대조인 엔닌(圓仁·794~864)은 당나라 유학시절 2년 반이나 장보고가 산둥반도에서 창건한 사찰 적산법화원(迹山法華院)에서 기거한 바 있다.
그가 쓴 ‘입당구법순례기’는 장보고와 산둥반도에 있던 신라인들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신라인 환속승 이신혜는 흥인 을미년(815) 일본에 도착해 8년 동안 머물렀다. 수정궁이 치쿠젠국 태수로 있을 때 이신혜 일행을 가련하게 여겨 먹여주었다. 장대사(장보고)가 천장 원년(824)에 일본국에 도착했다가 그들을 배에 태워 당나라로 돌아갔다. 지금 사원 농막에 살고 있는 것이 보이고 일본어를 해득해 곧 통역사로 삼았다.” 

이 시기에는 신라 노예가 중국 연안 지대 곳곳에서 매매되고 있었다. 816년 당나라는 신라인을 노예로 삼는 행위에 대해 금지령을 내렸지만 노예 매매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장보고는 신라 42대 왕인 흥덕왕 3년(828) 돌연 신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당나라로 건너온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귀국한 그는 왕에게 해적들에게 납치돼 노예로 팔리는 참상을 전하며 완도에 군사 거점을 세울 것을 청했다.
왕의 승인이 떨어지자 1만명 병사를 모아 청해진(淸海鎭)을 세우고 대사(大使)로서 군사를 지휘해 해적을 소탕하고 서남부 해안의 해상권을 거머쥔다. 

세력이 강해진 그는 신라 중앙정계로의 진출 욕구가 불탔다. 흥덕왕 사후 왕경에서는 치열한 왕위 다툼이 벌어진다. 김제륭이 상대등 김균정을 죽이고 43대 희강왕으로 왕위에 올랐다.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이 청해진으로 피신해오자 장보고는 그를 숨겨줬다. 희강왕 역시 재위 3년 만에 김명(44대 민애왕)에 의해 피살된다.
김우징은 장보고에게 “나를 도와준다면 내가 왕위에 올라 당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며 도움을 청하자 장보고가 군사 5000명을 내줘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왕(45대 신무왕)에 추대한다. 

이 공으로 감의군사(感義軍使)의 직책과 식읍 2000호를 하사받았다. 하지만 신무왕은 장보고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않는다.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이 즉위한 뒤 장보고는 더욱 세력을 확장해 일본에 무역 사절을 파견하고 당에도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를 보내면서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 삼각무역의 최대 거물로 부상한다. 

장보고는 문성왕에게 또 한번 자신의 둘째 딸을 왕비로 삼아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맞서 중앙귀족들은 장보고가 미천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한다.
노예 매매의 원천 차단과 청해진의 무역 독점에 불만이 컸던 서남해안의 군소 해상 세력들도 가세해 왕을 부추겼다. 

장보고의 요구가 노골화되자 신라 조정이 선수를 쳤다. 장보고는 조정 측에 가담했던 염장이 그의 막하로 들어온 것을 기뻐하며 마련한 주연에서 염장의 칼에 맞아 피살된다. 동북아 해상을 호령했던 절대 실력자로서는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속일본후기’는 조와 7년(841) 11월 중에 죽었다고 했다. 851년(문성왕 13) 신라 조정은 청해진을 폐쇄하고 주민들을 전북 김제로 집단이주시켰다.
장보고가 죽은 후 청해진은 붕괴됐고 동아시아 바다를 하나로 통일했던 거대한 제국도 허무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근본이 불분명한 데다 반란의 이미지까지 덧씌워진 장보고는 우리 역사에서 잊힌다. 

일본에 남아 있는 신라명신상은 과연 장보고일까. 당나라로 오갈 때 장보고 선단의 항로를 이용했고 중국에 머물 때도 장보고 신세를 톡톡히 졌던 엔닌은 귀국 후 신라명신(新羅明神)의 가호로 안전하게 귀국했다며 신라명신을 위해 적산선원(赤山禪院)을 세우게 했다.
적산선원은 엔닌이 입적한 지 24년 후 제자들에 의해 교토시 북쪽 히에이산(比睿山)에 건립됐다. 법화원에 있던 것과 똑같은 신라명신상과 그림을 일본으로 모셔와 장보고를 추억했다.
국보 신라명신상이 보관돼 있는 온조지를 부흥시켰던 엔친도 장보고 도움을 얻어 당나라를 오가며 불법을 공부했던 사람이다. 

통일신라시대 때에는 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해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반드시 우리나라를 거쳐야만 했다.
따라서 당대 일본에선 중국으로 가기 전 ‘신라국신’에게 뱃길 안전을 기원하고 당에서 돌아온 뒤에는 ‘신라국신’에게 감사하기 위한 의례를 치렀다.
실제 804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당나라에 파견됐던 일본 천태종 개조(開祖)인 사이초(最澄·767~823)는 규슈 후쿠오카에 신라국신에 제사지내는 ‘신궁원’(神宮院)을 만들었다. 

이런 점으로 미뤄 온조지 신라명신상이 장보고를 중심으로 한 신라 해상세력이 모셨던 해상신일 가능성이 있지만 장보고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도 없다. 

 

배한철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11.07기사입력 2016.11.0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프린트      목록

최신 컨텐츠
라이프
1863년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고종(1852~1919..
여행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11월 중순부터 형형색색의 조..
푸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동의보..
푸드
옆구리 시린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누군가는 썸을 타며..
라이프
한나라 무제는 주부언을 파격적으로 등용했다. 주부언은..
이슈
프리미엄고속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항공기의 비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