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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는 흔히 나오는 말이다.
기업 인수합병(M&A) 등의 경쟁에서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최근 유통업계에서 이 ‘승자의 저주’ 대신 유행하는 말이 ‘증설(增設)의 저주’다.
출시 초기 제품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설비 증설에 나서면 인가가 떨어져 업체가 낭패를 보는 현상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이다. 

2014년 처음 선보인 허니버터칩은 ‘달콤한 감자칩’ 열풍을 일으키며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출시 당해에 약 200억원, 지난해 약 900억원이 팔리며 최대 히트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상황이 이렇자 해태제과 측은 지난 5월 강원도 원주시 문막에 제2공장을 준공했다. 공장 증설과 동시에 해태제과 측은 연매출 2000억원으로 키울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에 머물고 있다. 최근 허니버터칩의 월매출은 80억가량으로 1공장만 가동했을 때와 비교해도 4억~5억원 상승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해태제과 주가 역시 지난 5월 상장 이후 주당 6만원까지 상승했지만 최근에는 2만원 아래에 있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한때 품귀 현상을 빚으며 중고 사이트에서 웃돈에 거래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강원도 문막에 제2공장을 증설할 즈음부터 인기가 식으면서 예상 매출이 반 토막 날 위기에 처했다. 해태제과 상장을 앞두고 주가 부양을 위해 무리하게 수요예측을 한 게 원인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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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칠성의 클라우드 

▷‘허니버터칩 전철 밟을라’ 벌벌 

주류업계에서도 허니버터칩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은 제품이 회자된다. 

롯데칠성의 토종 맥주 브랜드 ‘클라우드’다. 롯데칠성은 2014년 4월 기존 맥주와 차별화되는 깊고 풍부한 맛을 내세운 클라우드를 선보였다.
클라우드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돌풍을 일으키며 출시 9개월 만에 1억병 판매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롯데 측은 즉시 10만㎘던 충주 공장의 생산 능력을 30만㎘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증설에 돌입, 올 연말 완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로 부상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수입맥주 바람과 함께 최근 청탁금지법 시행과 혼술 문화 확산 등으로 국내 맥주 소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맥주 생산량은 소비량 대비 1.3배 많아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맥주 공장 가동률도 하락세다. 롯데칠성은 클라우드를 내놨던 2014년 98%였던 가동률이 지난해 69%로 떨어졌다.
하이트진로 역시 2010년 65%에서 지난해 42%까지 하락했다. 올해 공장 가동률은 더 떨어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 3분기 롯데칠성 맥주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또한 하이트와 OB를 합치면 7월 누계 기준으로 전체 국산 맥주 매출이 전년 대비 5~6% 감소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업체들의 설비투자 경쟁은 지속되고 있어 2018년이면 맥주 생산량은 1.8배까지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국희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류 소비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들이 계속해서 국내 선두업체들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 등 국내 주류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회식형 음주 문화에 유리한 희석식 소주나 레귤러 맥주에 집중돼 있지만 최근에는 혼술로 대표되는 가정용 소비 시장이 고속성장했다. 소주는 그나마 가격 인상 효과가 있지만 올해 3분기 국내 레귤러 맥주 시장은 10% 감소한 것으로 추정돼 기업 실적에 부담이 될 것”이라 지적했다. 

지난해 여름 과일맛 소주 트렌드가 주류 시장을 강타하자 과일을 활용한 저도 소주가 잇따라 등장했지만 이들의 인기도 불과 반년에 못 미쳤다.
제품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체 소주 매출에서 과일맛 소주 비중은 지난해 여름 10%대를 넘었지만 최근에는 5%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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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는 단골 희생양 

▷제품 라이프사이클 줄어든 게 원인 

이전에도 증설의 저주 희생양은 있었다. 

2011년 8월 출시됐던 꼬꼬면은 출시된 해에만 8000만개 이상 팔리며 한때 라면 시장점유율 20%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 500억원을 투자한 공장 증설 이후 판매량이 급감해 팔도에 큰 손실을 안겼다.
지난해 4월 농심 짜장라면 ‘짜왕’을 시작으로 형성된 굵은 면발 라면도 오뚜기와 팔도, 삼양라면 등이 합세하며 주목을 끄는 등 인기가 예상됐지만 파장은 6개월여에 그쳤다. 

장수 제품이 많았던 식품업계에 반짝 인기를 끌다 사그라지는 제품은 이 외에도 많다. 

올 상반기 전국을 바나나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바나나맛 파이 역시 인기가 주춤하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 3월 ‘초코파이 정(情) 바나나’를 내놨다.
출시와 함께 바나나 트렌드를 업은 초코파이 바나나는 4월 한 달간 2000만개가 팔렸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오리온은 출시 한 달 만에 생산라인을 늘렸지만 열기는 곧바로 식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오리온 바나나맛 파이의 5월 매출은 전월 대비 9.5% 감소했다. 6월에는 아예 반 토막이 났다.
롯데제과 역시 ‘몽쉘 초코&바나나’를 출시한 후 1500만개 판매고를 올리자, 생산설비 규모를 150% 이상 늘렸지만 이후 판매는 내리막으로 돌아섰다.
이마트 관계자는 “바나나맛 제품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지난여름 각 유통 채널들이 증정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재고 처리에 나섰을 정도”라고 상황을 전했다. 

▶소비자 입맛 변화 빨라져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전환해야 

이처럼 히트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의 주기가 너무 짧아지자 고민이 커진 곳은 해당 업체들이다.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내놓자니 부담이 커지고, 제품의 수요예측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비자 탓을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라면 업체의 한 간부는 “먹방과 쿡방, SNS의 영향으로 소비자의 식품 선호도가 다양해진 데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신제품이 단기간에 판매가 늘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제품으로 교체되기도 쉬워졌다.
이런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선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토로했다.
실제 제품 유행 주기가 점점 짧아지자 아예 새 제품보다 장수 브랜드에 새옷을 입히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오리온은 대표 감자칩 제품인 ‘스윙칩’ 라인에 ‘간장치킨맛’을 새로 더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간장치킨은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맥주 안주로 사랑받고 있는 메뉴로 이 같은 트렌드에 착안한 것이다.
1989년 출시 이후 28년간 국내 우유탄산음료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롯데칠성음료의 ‘밀키스’가 식품업계 하반기 트렌드인 ‘청포도’를 만났다.
농심 또한 2011년 판매가 중단된 ‘보글보글 찌개면’을 업그레이드하여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을 선보였다.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은 요리 수준의 라면의 트렌드에 맞춰 제품이 업그레이드돼 다시 나왔다. 

무분별한 미투(me too)제품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태제과의 한 관계자는 “무분별한 미투 제품이 양산되는 것도 제품의 인기를 빠르게 꺾는 요인이다. 유사한 제품이 마구잡이로 나오면서 기껏 연구개발이나 기획을 통해 만들어낸 제품의 희귀성이나 맛의 특별함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게 돼 결국 시장 전체가 가라앉는다. 업체들이 남의 제품을 베끼는 데 열중하는 대신 자사의 특성을 살린 장수 제품을 만들려는 업체의 연구개발 노력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참에 국내 식품업계의 생산 방식을 스마트하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나홍석 맥쿼리증권 상무는 “농심 신라면, 진로 참이슬처럼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인기를 끌 식음료 브랜드는 나오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때그때 유행 주기에 맞춰 제품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전략을 잘 설계해야 한다. 생산 방식 역시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김병수 기자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11.07기사입력 2016.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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