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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칩 작가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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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해볼까.

당신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얼마만큼 믿는가? 과연 당신이 아는 세상은 진짜인가? 아니, 당신의 삶은 실재한다고 믿는가? 영화 `매트릭스`나 `인셉션`이 대히트하는 이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 때가 있다. 다소 철학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우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때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보고 듣고 믿는 이 세상이 만약 진짜가 아니라면, 회사를 가고 돈을 벌고 밥을 먹고 사랑을 할 의욕이 들겠는가.

지난 9월 말 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우연히 황선태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그의 작품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었다. 많은 관객들이 그의 작품 앞에만 서서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수백 점의 작품이 걸려 있는 행사장은 극도로 소란했지만 황선태의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고요했다. 남들의 시선과 소음, 피곤한 파티장에서 벗어나 구석진 방문을 열고 내밀한 방안으로 들어가 잠시의 적요를 음미하는 모습이었다.

숨 좀 쉬자. 싶을 때 시끄럽고 복잡한 공간에서부터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으로의 순간 이동. 그것은 타는 듯한 답답한 갈증 상태에서 들이키는 맑고 시원한 물 한잔의 느낌이랄까. 많은 관람객들이 이상하게도 황 작가의 작품 앞으로 몇 번이나 이끌려왔다고 고백한 이유다.

모호하고 아련하게 거기 있는 풍경

오랜만에 내게 휴식과 위로를 준 작품을 창작해낸 작가가 궁금해서 경기도 장흥에 위치한 황선태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참, 작품을 보여드려야죠. 좋은 때에 잘 오셨어요. 평소엔 작업실이 이렇게 깨끗하지 않거든요.”

그는 느릿느릿 벽으로 걸어가더니 작품에 달린 스위치를 켰다. 아, 그 순간. 순식간에 추상적이던 개념이 생생하게 공기 냄새가 나고 소리가 나는 실재로 변했다. 드라마가 갑자기 솟아오르고 건조함이 촉촉함으로 바뀌었다. 딸깍 하고 스위치가 켜지는 그 잠깐의 순간에. 스위치를 켜는 순간 그림 배경에는 은은한 빛이 배어든다. 감흥 없던 선들로 이루어진 평면 그림을 순식간에 생명력이 충만한 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눈앞에서 마법사의 마술을 보는 것 같은 체험이었다.

자세히 보니 배경의 빛은 작품마다 모두 색이 각기 달랐다. 어떤 작품은 이른 아침의 빛 같았고 어떤 작품은 정오의 강렬한 태양빛처럼 느껴진다. 정교한 빛의 질감은 진짜처럼 빛나고, 무색무취였던 유리 표면의 무채색은 방 안의 냄새와 공기를 머금고 있는 그림자가 됐다. 딱딱하고 수학적인 선들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공간으로 완성됐다. 사실 물체의 윤곽선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편의상 구별하기 위한 가상의 선일 뿐이다. 인간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빛은 실제로 존재한다. 따뜻하고 우리가 색채를 분별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를 가진 진짜다. 작가는 바로 그 두 가지 요소를 하나의 작품 안에 함께 녹여 보여준다. 그는 우리가 진짜라고 알고 있던 세계를 다시 의심하게 만들고 어깨를 흔들어 다시 각성하게 만든다. 알 수 없는 전율이 작품으로부터 내게 흘러들어왔다. 스위치를 켠 순간부터 한참 동안 작품을 어쩐지 계속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어 그는 작업실 뒤편에 있던 자신의 작품들 중 하나를 골라 포장지를 벗겨 보여줬다. 마룻바닥에 초록색 화분이 놓여있는 작품. 평범한 사물을 평범하게 배치한 듯 했지만 이상하게 전혀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아련한 풍경. 명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어떤 간절함과 애틋함을 담고 있었다. 뿌연 유리로 인한 것인지, 그 안에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분명히 거기 존재하고 있는 묘한 세상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황 작가의 작품에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세상은 칼로 자른 듯 명확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시선. 그의 작품을 자세히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더욱 그렇다. 허나 그럼에도 두 눈 씻고 보아도 그것은 분명히 거기 존재하고 있다. 알쏭달쏭하지만 이 신비로운 사실이 헛되게 보이는 세상의 아름다움이고 위로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눈부신 듯 눈을 흐리게 떠보자.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 수많은 집들의 지붕을 내려다보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그는 세상을 그렇게 한 걸음 떨어져서 사물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외로운 마음이 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이렇게 쓸쓸하고도 아름답구나.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것

보통 알려진 작가들은 결국 어느 정도 한정된 소재나 기법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의자만 그린다든지 꽃만 그린다든지 하는 식이다. 하지만 황 작가는 자신이 어떻게 마케팅 될 지 고민하기 보다는 마음 가는대로 작업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이 그의 체질에 맞고 더 재미도 있었다고. 덕분에 전시가 거듭될수록 변화무쌍한 작품들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로 만든 책, 간유리 너머 놀라운 공간감이 느껴지는 사진 작품.(지면 사진만으로 감상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작가 황선태를 특정 작품이나 이미지로 일관되게 기억하지는 못할 수 있다. 누구는 그의 작품을 ‘유리책’으로 기억하고, 누구는 ‘공간이 있는 사진’이나 ‘빛이 있는 공간’으로 각자 다르게 기억하곤 한다. 작가의 이름을 인지시키는 마케팅에는 효과적이지 못한 셈. 하지만 그 결과물들은 어김없이 보는 이들의 흥미와 영감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혹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의 작품은 뇌리에서 잊지 못했다. 결국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각기 다른 표현 방법에도 불구하고 통일성을 가지며, 그의 작품이 걸리는 전시는 히트한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는 갤러리들이 그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던지는 이유이다.

칸트는 ‘예술’이 현실에 대해 재인식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황 작가의 작품은 정말 현실을 다시 인식하게끔 만든다. 존재감이란 것은 나를 살아있게 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꿈처럼 허무해질 테니.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조심스럽고도 강력하게 묻는다. 지금 당신이 보는 것은 진짜이며, 당신은 실존하고 있는지.

물론 대답은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정답을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내가 사는 세상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대한 답하려고 생각하는 순간의 우리는 어떤가. 평소에 그냥 흘려 보내버리고 마는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껴보려는 순간, 우리는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다.

 
 ■ 작가 황선태는 누구?
1972년생. 1997년에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이후 2004년 독일 할레 북 기비센슈타인 미술대학을, 2006년에 기비센슈타인 미술대학 Aufbaustudium을 졸업했다. 독일에서 4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2008년 귀국해 현재까지 12번의 개인전, 47회의 주요 그룹전을 개최했다.
2005년 Opelvillen 유리미술공모전 특별상을 비롯해 독일 뢰벤호프 예술포럼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8년 제11회 신세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독일 라이너쿤체재단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아트페어에 23회나 초대되는 등 현 미술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12월15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서울 인터알리아 ‘Poster Poster’전, 12월14일부터 18일까지 코엑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10주년 특별전, 2012년 바젤 Leonhard Reuthmueller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Korean Collective Basel’ 등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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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미(아트 칼럼니스트·봄봄 대표 bomi1020@empal.com)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2.01.03기사입력 20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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