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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돈이라는 무색무취의 냉철한 매개에 의해 미술이라는 형이상학적 세계가 어떻게 모습을 바꿔 나갔는지 역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기,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되기 시작하는 14~16세기 미술계에서 돈이 보여준 위력은 현대 미술시장의 DNA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부자가 되는 꿈을 그려볼 때 돈다발 가득 들어간 그림이 앞에 놓여 있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이 그린 ‘1달러 지폐 200장’ 같은 그림이 앞에 놓여 있으면 꿈이 더 잘 이뤄지진 않을까(그림 ➊).

1달러짜리 소액권으로는 큰 부자가 되는 영감을 얻기에 약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큰 오산이다. 그림의 판매가는 4380만달러(약 500억원)다. 2009년 11월 경매에서 실제로 그렇게 거래됐다. 1986년에 이미 38만달러에 거래돼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23년 만에 경매장에 나타나 경이적인 경매가를 기록한 것.

그림을 다시 보자. 우리 주머니 속 1달러는 1달러이지만, 이 그림 속 1달러 한 장 한 장은 실제로 20만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 새해를 맞아 부자 되는 꿈을 펼쳐볼 때 아마도 이보다 더 확실한 영감의 자극원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1달러 지폐 그림이 이렇게 천문학적 금액으로 거래될 수 있을까? 정확하게 말하면 직접 그린 것도 아니다. 1달러 지폐를 그림으로 그린 후 전문 판화가에게 의뢰해 찍어낸 것에 불과하니 작가가 그다지 공력을 들인 것도 아니다. 혹자는 주식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말하지만, 자본주의의 진정한 꽃은 미술이라고 본다. 주식은 걸어놓고 감상할 수 없지만 미술은 꽃처럼 바라볼 수도 있으니 기능적으로 미술이 꽃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거품의 정도로 봐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1달러의 판화가 원래의 달러 가치보다 수십만 배 이상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워홀은 이 같은 달러 지폐 그림을 1962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그림 속에 돈이 들어간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1514년경에 그려진 ‘대부업자와 그의 부인’ 같은 그림은 앤디 워홀이 그린 그림의 먼 조상뻘이 된다(그림 ➋). 이 그림 속에서 대부업자, 좀 나쁘게 말하면 고리대금업자로 보이는 남편이 열심히 돈을 세고 있고, 부인은 옆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기독교 신앙과 이자놀이가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교회법으로 금지돼 오던 고리대금업이 이제는 현실 속에서 존재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단연코 그림 앞쪽에 한가득 쌓여 있는 금화들이다. 부부의 주변에는 고급 유리병과 귀금속, 책, 이국적인 과일 등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하지만, 두 부부의 눈길은 오직 돈에만 머물러 있다. 대체로 이 그림은 사치품과 돈에 눈먼 신흥 졸부들을 꼬집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앤트워프를 중심으로 번영하는 북유럽의 상업적 부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 그림에는 신과 같은 신앙의 대상이나 삶의 귀감이 될 만한 이야깃거리가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만 워홀은 이 신성한 공간을 돈다발로 채워 버렸다. 그의 세계에는 오직 돈만이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워홀의 시도를 속물적이거나 불경스럽다고 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돈이 신의 자리를 밀어냈다기보다는 돈이 신의 모습을 닮았다고 선포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화폐는 세계의 세속적 신이다”라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화폐는 생존을 넘어서 신앙적 믿음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화폐의 가치가 우리의 믿음에 의해 유지되듯이 워홀의 작품도 (하나의 신앙 체계처럼) 그것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될 것이다.

물론 단순히 돈만 그려냈다고 해서 이 그림의 가치가 설명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워홀의 돈다발 그림은 시장경제 체계하에서 미술의 본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삶의 일상을 초월하는 무엇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워홀은 예술도 여전히 삶의 그것처럼 자본에 귀속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상업성=예술성’ 또는 ‘자본력=예술성’이라는 별로 드러내 놓고 말하고 싶지 않은 현대미술의 감춰진 생존 질서를 직설적으로 폭로한 셈이다. 현대미술계의 판도라의 상자를 워홀이 열어젖혔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예술의 상업화를 말하는 그의 태도는 너무도 거칠고 적나라해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충격적으로 보인다.

워홀은 실제로 돈을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현금을 아주 좋아해 백달러 지폐를 누런 봉투에 넣어 다녔다고 한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작가라서인지 그의 돈에 대한 솔직한 욕망은 저속하기보다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구가하는 미국이라는 사회 환경에서 워홀과 같은 작가의 탄생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워홀이 선언한 미술의 자본화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위력이 점점 더 가속화되는 것 같다. 좋은 그림은 언젠가는 제값을 받을 것이라는 오래된 신념은 점차 힘을 잃고, 대신 ‘비싸게 팔린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는 본말의 전도가 일상화되고 있다.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단절되면서 작가들은 점점 더 시장만을 조급하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미술의 시장 종속화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미술의 생태계를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술성이라는 것은 단시간에 판단되지도 않을 뿐더러, 상품성뿐 아니라 상상력과 실험성 등 다양한 잣대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워홀이 선언한 바와 같이 인류의 삶에 시장경제가 도래한 이후 미술도 자본을 떠나 고귀하게 존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워홀의 직설적인 주장과는 달리 미술과 돈은 다양한 접점을 갖고 다채롭게 교류하는 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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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2.01.21기사입력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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