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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좋아요’를 누르다가 눈 맞았다던 내 친구 P양, ‘공유’를 해주다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던 J선배. 나에게는 모두다 전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 같다.

정확히 10년 전이다. 이나영, 조승우 주연의 `후아유`라는 영화를 봤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려도 좋다. 그런 영화가 ‘있었다.’ 온라인 채팅게임을 통해 두 남녀가 만나서...그래 빤한 이야기다. 둘이 지지고 볶는 이야기다. 뭐? 그런 걸로 따지자면 `접속`이 먼저 아니냐고? 지금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몇 달 전 나도 영화 `후아유`처럼 채팅하다 한 여자를 만났다.

지난 여름이었다. 그날도 솔로 삼인방이 모여 불콰한 얼굴을 맞대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이구. 한심한 녀석들. “너희는 왜 손가락 열 개 다 멀쩡한데 여자한번 못 만나고 이러고 있냐? 너희 설마...” 그랬더니 한 녀석이 온전한 다섯 손가락을 보여주듯이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여자 만났단다. 그것도 저번 주만 해서 셋이나. 여자라고는 결혼한 친누나밖에 없는 놈이 무슨 수로 세 명이나? 네놈이? 어떻게? 누가 소개팅을 해줬나 싶어서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그럼 뭐야? 너의 사주엔 여자가 없었잖아?” 그제야 그녀석이 수줍은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페이스북으로 만났어...” “네가 갈 데까지 가는구나. 만난 여자들 다 너처럼 제정신 아니지?”

페이스북? 그 청량하고 푸르디 푸른 SNS가 헌팅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미국에 있는 마크 주커버그의 탄식 소리가 한반도 땅 끝 마을까지 들린다. 사실 생각해 보면 페이스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널렸다. ‘친구의 친구’, ‘함께 아는 친구’는 기본이고 ‘알 수도 있는 친구’는 헤어진 전 애인, 아니 사촌누나의 전 남자친구까지 곤란할 정도로 찾아주는 마법의 검색엔진으로 이미 특허까지 받은 바 있다. 사정이 이러니 전혀 모르는 사이에도 친구를 맺어 서로의 사진을 관찰하고 대화하는 이상한 지구촌 세상이 온 거다.

거짓말처럼 며칠 뒤에 내게도 비슷한 상황이 왔다. 즐겨 찾는 커뮤니티에 페이스북 친구 맺기 붐이 일었다. 아이디를 남겨놓았더니 물밀듯이 친구신청이 왔다. 그중 여자 A와 채팅을 했다. 솔직히, 재미있었다. 나도 친구처럼 제정신이 아닌 걸까. 선후배도 아니고 친구의 셋째 동생도 아닌, 관계를 정의할 수 없는 사람과의 대화.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했다.

상대는 근처에 혼자 사는 스물여섯 직장인. 여자들은 왜 남자들의 방에 대해 궁금해 할까. “그럼, 냉장고는 있어요?” “아뇨, 집에서 뭘 해먹질 않아서...” “하하 그렇게 살 수 있어요? 그럼 지금 우리 집에 수박 먹으러 올래요?” “네?” 시간은 새벽 두시였다. A는 나에게 수박만 먹이고 싶은 걸까? 지금 이 시간에 추리닝 바람으로 택시를 타 말어? 내 목표가 수박인지 A인지 판단이 안됐다. 어차피 A와 평생 채팅만 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내키지 않았다. 결국 거절했다. 그것 때문에 관계가 무너지진 않았다. 애초에 쌓은 것도 없었기에.

A와의 대화가 여름을 지나 어느덧 가을이었다. “우리 뮤지컬 볼래요? 제가 표는 다 구해놨어요.” 여자가 뮤지컬 표까지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수박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제안이었다. `섹스앤더시티`나 `안투라지`처럼 여자가 적극적으로 나오다니.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 미국드라마로 학습이 잘된, 사고가 열려있는 여성이구나! 싶었다. 얼굴 한번 안 봤지만 이미 나는 A와 뮤지컬을 본 다음에 간단하게 술을 한잔하고... 그 이후의 생각까지 회계장부처럼 꼼꼼히 생각해두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파란색 빈티지 원피스를 입은 한 여성이 다가왔다. “커피 마셔요” 하며 A가 주머니 속의 커피를 꺼내 보였다. 첫 만남부터 이런 깨알 같은 선물을 준비하는 여자라면 누가 마다할까. 뮤지컬을 보고 술을 마셨다. “저 처음이에요. 이렇게 사람 만나는 거.” 나도 두 번째일 리 없었다. A는 예상과는 달리 조용한 여자였다. 술을 마셨다고 해서 목소리가 커지는 법이 없었다. 대화는 일분일초가 아까울 정도로 할 말이 많았다. 시간은 청산유수처럼 잘도 흘러갔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다. 아차! 너무 끌었나? 서로 졸린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게 뭐하나 싶었다. 나도, A도 원하는 건 따로 있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다. 거리로 나왔다. 영등포 밤거리는 사람도 없이 불빛만 번뜩였다. 우리는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탔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지겨운 솔로 삼인방이 다시 모였다. “그냥 집에 보냈어.” “뭐? 그냥 보냈다고? 혼자 홍상수 영화 찍고 있네. 넌 여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놈이야.” 진짜로 그냥 보냈다. 아무래도 감정이 안 생겼다. 이런 가벼운 감정으로 뭘 할까. 모니터 속의 그녀가 가장 좋았다. 그 후 A에게서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세상에 평범한 사랑이 얼마나 많은데 도대체 ‘사이버 러버’가 웬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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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신정인 기자 / 취재 이광수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2.02.17기사입력 20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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