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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증 좀 확인하겠습니다!” “네?” 졸고 있다가 해군과 마주한 나는 당황한 채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줬다. 교동도 주민들은 버스 내 유일한 외지인인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황해도 연백군과 마주보고 있는 강화 교동도에는 6.25 당시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과 그 후손이 살아가고 있다. 교동이발소, 강화약방, 교동다방. 마치 영화촬영소 같은 1960~70년대 간판들이 그대로 남은 강화군 교동도. 많은 왕족이 유배될 만큼 거리가 멀어서, 다행히 지금은 ‘유물’로 남은 것들이 보존돼 있는 곳. 방향조차 잃은 채 돌아가는 인생의 타임 워치를 잠시 멈추고 싶을 때 사람들은 교동도를 찾는다.
▶‘민통선’이라는 70년 된 슬픈 이름
“교동에서 숙박을 하신다고요? 왜요? 강화에서 하시지.” 몇년 전 <1박2일>에 나온 뒤 다리도 생기고, 관광객도 늘어났지만 평일의 강화군 교동도는 여전히 한산했다. 특유의 먼지 쌓인 오래된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 여전히 사진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교동도는 불과 2~3km 거리인 황해도 연백군과 얼굴을 맞대고 있다.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외부인들은 신분증을 보여줘야 교동대교를 통행할 수 있다. 사람들을 배로 실어 나르던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은 다리가 생긴 2014년부터 쓸쓸해졌다. 11명의 왕족들이 유배 생활을 할 만큼 대륙과 동떨어진 강화군의 서북쪽. 한번 유배되면 다시는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고립돼 있던 ‘교동도’의 지리적 위치가 이제야 피부로 체감된다. 버스에서 내리자 논밭 한가운데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길을 건너니 그제야 교동도의 ‘읍내’ 대룡시장이 나타난다. 평일인데도 카메라를 든 출사객들이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혼자 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실향민의 딸이라는 대와민속공방 주인장은 대룡시장의 형성 과정, 평화의 섬 교동도에 대한 소개를 능숙하게 이어간다. “이곳을 ‘평화의 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남북이 마주보는 중립 수역 때문이에요. 지금은 실향민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몇 분 안 남아 계시죠.” 왜 관광 인포메이션 센터가 아닌 공방에서 사람들이 차례로 쏟아져 나오는지 이제야 알겠다. 실향민의 역사와 문화 해설을 하는 스토리텔링을 진행한다는 그녀는 천연염색, 연안강정(연백에서 만들던 강정), 주먹밥, 바느질, 짚풀공예 등 체험학습도 진행한다. 전반적으로 조용한 평일의 시장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다.
▶영화 세트장 같은 대룡시장으로 시간여행
‘조선 나이키가 뭔지 여러분들이 알어? 궁금하면 500원. 일명 고무신, 얼마냐고?’ 손으로 쓴 정겨운 ‘중앙신발’ 가게의 소개 글이 정겹다. <1박2일>에서 은지원이 머리를 깎았던 ‘교동이발관’, 추억의 ‘명반’이 있는 ‘동산약방’ 뿐 아니라 드라마 <전설의 마녀> 촬영지인 ‘거북당’ 빵집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1960년대 옛 시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출사객들의 필수 코스인 대룡시장. 6.25 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 온 주민들이 한강하구가 분단선이 되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위해 고향 연백시장을 본 따 골목시장을 만들었다. 50여 년간 교동도 경제 발전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실향민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젊은이들도 빠져나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시장을 걷다 보면 눈에 자주 띄는 것이 바로 제비집인데, 고향에서 찾아오는 제비에 대한 연백군 실향민들의 특별한 애정으로 처마 밑 제비집을 치우지 않고 보호하고 있단다. 새끼 제비들을 위해 근접 사진은 금지돼 있다.
“장사 안 하는 집인 줄 알까 봐, 문을 조금 열어놨어요.” 두세 사람이 지나가면 꽉 차는 좁은 시장 골목에서 ‘교동다방’이 영업 중이다. 교동도로 시집 온 언니를 따라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는 다방 주인. 쌍화탕, 다방 커피뿐 아니라 군고구마까지 파는 다방을 도심에서 본 적 있는가. 겨우 500m 남짓한 골목 2개가 연결된, 웬만한 시골 장터보다 작은 대룡시장엔 여행 방법이 따로 있다. 일단 스마트폰, 보고서 등 번잡스러운 것들을 다 내려놓고 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낡은 간판부터 구경하자. 그리고 60년 넘게 터줏대감으로 시장 골목을 지킨 가게에 들어가서 1000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주민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된다. 백발 성성한 약방 할아버지, 65년간 잡화점을 하며 7남매를 키워내신 할머니 등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막걸리 익어가는 소리처럼 찰지다. 몇 마디 오가고 나면 ‘외지에 가있는 자식들 자랑이 이어진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85세 할머니가 농사 지은 검은 콩, 맛있다
딸만 넷을 낳았다는 할머니는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손수 농사지은 쌀을 들고 장터에 앉아 있다.
“이거 내가 직접 낫으로 다 거둔 거야.”
“할머니, 힘 안 드세요?”
“… 콩도 있고 현미도 있어.”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찹쌀 가져갈래?”
귀가 어두우신지 소리를 질러야 답을 하신다.
“내가 올해 여든 다섯이야. 꼭 아들 같네. 내가 딸만 넷이라 아들을 못 봤어.”
보드라운 쌀겨가 눈에 들어온다. 교동도엔 높은 산이 없어 일광 시간이 길고, 미네랄이 풍부한 간척지 토양에 농사를 지어 기름지다. 시장 곳곳에서 교동도가 고향일 법한 아티스트가 그린 대형 벽화들이 눈에 띈다. 110년 역사의 교동초등학교가 시장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를 울려준다. 1906년에 개교한 학교로, 이승복 동상과 효자 정재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동네 할아버지들은 전부 여기 졸업생이다. 많이 돌아다녔나 보다. 배꼽시계가 신호를 준다. 새우젓에 갈비를 끓여 만든 강화의 대표음식 젓국갈비를 먹고 싶었으나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단다. 아쉬워하던 내게, 옆 자리의 단체 손님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까짓것, 막걸리까지 시킨 내게 주인이 다가와 “혼자 오면 다들 막걸리 시켜서 먹고 간다”며 한 잔을 따른다. 23살에 결혼, 실향민이었던 부모님의 고향에서 식당을 열었다는 그녀는 저녁이 다 되서야 화개산 산책을 가겠다는 오빠를 말리는 중이다. “오빠 지금 가면 늦는다니까. 산속에 해 빨리 지잖아.” 역정을 내지만 그 말을 안들을 오라비인걸 알고 하는 말이다. 화개산 번개 산책을 가는 최 사장을 따라 나섰다.
▶유배될 만큼 먼 섬, 덕분에 ‘보물’로 남다
1년 중 3분의 2는 캠핑카로 여행을 떠난다는 최 사장님은 산 입구까지 안내를 해준다. 고려시대 목은 이색선생이 전국 8대 명산으로 꼽았다는 화개산은 날씨가 좋을 때는 개성 송악산까지 가까이 보인다. 이곳을 최 사장님은 저녁마다 오른단다. 고라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더니 과연 초심자인 내 눈에도 쉽게 들어왔다. 교동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그가 ‘국민학교 시절 잘 가던 한증막’이라며 한 무리의 돌무더기를 가리킨다. 조선 후기부터 쓰던 한증막이다. 1970년대까지 사용됐다니 우리 민족의 찜질방 문화가 얼마나 유서 깊은지 알려준다. 황토와 돌로 만든 굴 안에 마른 소나무 가지로 불을 지피고 온도가 높아지면 재를 꺼낸 뒤 생 솔가지를 바닥에 깐다. 땀을 낸 후 옆 시냇물에서 냉수로 몸을 식혀 한증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선조들은 병환과 피로를 다스렸다. 교동에는 이곳뿐 아니라 수정산을 비롯 여러 종류의 한증막이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터만 남아 있다. 한증막 옆에는 연산군 유배지가 쓸쓸히 서 있다. 폐위된 이후 이곳으로 유배됐다가 이듬해 31세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머무른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위리 안치’라는 글자가 보인다. 사람들의 출입과 유배자의 거주지를 제한하기 위해 주변을 탱자나무 가시덤불로 막았다는 뜻이다. 역시 지금도 가시덤불이 집 주변에 가득했다. 조금 걷다 보면 서해 바다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교동읍성이 나타나고, 지방 백성을 교육하던 교동향교 담을 끼고 돌면 작은 약수터가 나온다. 머리가 맑아지고 공부를 잘하게 해준다는 소문 때문에 교생들이 마셨다는 약수터다. 나도 약수물에 목을 축여본다. 과연 머리가 맑아질까. 해질녘 황해도의 연백평야까지 보이는 해발 259m 화개산 팔각정에 오르면 낙조로 물드는 강화도의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교동도 최고의 전망이다. 연백군이 눈앞에 잡힐 듯이 보이는 곳에 실향민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는 망향대가 보인다.
▶인심이 살아있는 강화 교동도 여행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금시간이 오후 5시였어요. 예전엔 일몰 후 30분 이내에는 섬을 빠져 나와야 했는데 요즘은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만 통행불가예요.” 외지에 살다가 다시 고향 교동도로 와서 카페를 열었다는 30대의 카페 주인은 강화까지 나오는 차편으로 흔쾌히 터미널까지 태워준다. 도보와 오토바이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터미널 건너편에는 강화풍물시장이 있다. 노량진 시장처럼 1층에서 회를 주문, 2층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데 향토음식인 순무 김치를 놓치지 말 것.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조금 싸가라며 포장을 해주신다. 오직 강화에서만 나온다는 6년근 인삼과 약쑥도 챙겼다. 강화 고인돌을 보고 난 뒤 신미양요 격전지 중 가장 치열했다는 ‘광성보’로 향한다. 섬에 닿기도 전 미군의 엄청난 포격으로 초토화가 됐지만 몰래 군사들을 숨겼다가 상륙하는 미군에 맞서 싸운 어재연 형제. 결국 무기의 열세로 우리 쪽은 대부분 전사했지만 미군 역시 소득 없이 물러갔다. 미군의 상처뿐인 승리였다.
내일은 강화8경 중 하나인 적석사에 올라 낙조를 봐야지. 뚜벅이 여행의 좋은 점은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맘대로 있다가 내킬 때 버스를 잡아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낙조를 즐기다 해안순환버스에서 내리니 1900년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한옥성당인 강화성당이 보인다. 조마가(트롤로프) 주교가 1891년 선교사로 내한, 전통 한옥으로 지은 가장 오래된 교회이자 일제 침략의 상처를 간직한 곳이다. 1900년 준공 당시에는 가운데 흰 천으로 ‘남녀 7세 부동석’의 가림막을 달았단다. 섬의 느린 속도는 강화로 나오면서부터 조금씩 빨라진다. 3대 낙조라는 동막해변의 낙조 역시 재빨리 지나가니 놓치지 말 일이다. 대룡시장 할머니로에게 산 서리태 2kg을 들고 낑낑대며 숙소로 오르는 길, 생판 모르는 남을 강화도로 나가는 딸 차편에 태워 보내는 식당 주인의 인심에 대해 생각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생활에 지쳤을 때, 섬을 찾으라는 그 구태의연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곳이다. 비록 없는 물건들이 더 많고 화려한 펜션도 없지만 1인당 경작지 넓이가 전국에서 가장 큰 교동평야가 있고, 도시에선 사라진 1970년대 시골 인심이 그대로인 곳, 교동도로 오시라.
강화 교동도 잘 곳
카페 여행작가 농가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로, 여행 전문가인 주인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프랑스 프리미엄 커피 말롱고를 맛볼 수 있고, 양고기 바비큐와 천연염색 체험도 가능하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강화대로 158-13/ 032-934-1033
아삭아삭 순무 게스트하우스 독특한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는 강화도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www.asacasac.com
수정민박 농가 분위기를 살린 민박집으로,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를 맛볼 수 있다. 인천시 강화군 교동서로 340번길 125-4 / 032-934-8929
펜션 브리즈 지난해에 생긴 동막 해변의 스파 펜션으로, 낙조를 보며 즐기는 스파가 일품이다. 펜션 1층 ‘카페바오밥’에서는 글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해안남로 1545 / 010-9876-8006
강화 교동도 먹을 곳
삼호정 돼지갈비에 새우젓을 넣고 끓인 강화도 특산 ‘젓국갈비’가 유명하다. 젓국갈비(4인) 3만5000원, 김치찌개/육개장/갈비탕/설렁탕 7000원, 백반 6000원.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 22번길 17/ 032-932-5272
풍년식당 강화도 새우젓으로 끓인 젓국갈비 9000원(2인분 이상). 토종닭 한방 닭백숙 5만5000원, 육개장 7000원. 032-932-4629
카페 더 뷰 예술적으로 생긴 회색 건물이 수평으로 이어진 갤러리 카페로 동막해변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퓨전 비스트로로 음식과 음료를 판매한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해안남로 1525 / 032-937-2340
B4 Tea 통창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과 실내에 전시된 그림들이 일품인 애프터눈 티 전문 카페. 아름다운 다기에 담겨 나오는 고급 홍차를 맛볼 수 있다. 장소 관계로 5인 이상은 받지 않으니 주의할 것. 070-4459-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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