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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출처:매경DB)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과 관련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그러나 돈줄(발권력)을 쥔 한국은행이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은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재정을 가진 정부와 발권력을 가진 한은이 손을 맞잡았으니 구조조정에 필요한 실탄은 어떻게든 마련될 것이다.

 

이제는 그 다음 고비를 넘어야 한다. 바로 문책(問責)이다. 마련된 구조조정 자금을 투입하기에 앞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작업이다.

 

흔히 구조조정의 요체는 손실 분담(loss sharing)이라고 말한다. 부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정한 후 누가, 얼마씩 책임을 짊어지느냐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구조조정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어렵고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엊그제까지 같이 근무했던 '생이빨' 같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다쳐나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일자리를 내놓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끼친 잘못을 돈으로 배상한다. 심지어 일부는 감옥에 가기도 한다.

 

기업부실의 특징은 소리없이, 때론 축포 속에서 불어난다는 점이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더 웃고 떠든다. 하지만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손실 분담을 위해 반드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게 된다. 이때부터 어떻게든 책임을 피해보려는 관련자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시작된다. 구조조정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한다면, 대략 이때부터 공중 3회전이 시작되는 셈이다.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유탄을 맞는 것은 현장 근로자들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뜨거울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일감이 떨어진 조선소에서 수만명의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누군가의 인생이, 그 가족의 삶이, 지역사회가 한꺼번에 곤두박질치는 서글픈 장면이다. 그들의 목에 걸린 죄목은 회사에 부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에도 월급을 꼬박꼬박 챙겼다는 것이다. 억울할 만하다.

 

기업 오너나 임원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근로자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이 있다. 특히 오너는 경영권 박탈에 그치지 않는다. 사재출연 압박을 받기도 한다. 주식회사에서 주주는 보유한 지분만큼만 책임진다는 원칙은 얽히고 설킨 선단식 경영을 하는 한국 대기업에선 통하지 않는다. 국민정서가 대주주의 유한책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진 지분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재산까지 어느 정도 내놔야 채권단이 자금 지원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월급장이 임원은 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다. 임기와 무관하게 자리를 내놓는 것은 물론이고, 사후적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구조조정의 진짜 복마전은 딴데 있다. 부실기업 밖에서 부실을 방관했던 사람들끼리 벌이는 공방전이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채권금융기관과 회계법인의 관계자들과 금융감독당국 및 정부 정책담당자들이다. IMF 외환위기 등 과거 사례를 돌이켜보면 부실기업에서 잘려나간 근로자, 오너, 경영진들보다 이들끼리의 공방이 훨씬 더 지저분하게 펼쳐졌다. 구조조정이라는 롤러코스터가 공중회전을 거듭하는 어수선한 상황을 틈 타 책임을 회피하려는 풍조가 만연했다. 로비와 음모가 판을 쳤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모양이다. 속칭 '한국판 양적완화' 논란의 이면에서도 엇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수조~수십조원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생겼는데 책임 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임을 물리겠다고 나서는 목소리도 없다. 아주 조용하다.

 

정공법대로라면 작금의 해운·조선사 구조조정은 국회 승인을 받아 공적자금을 조성해 해결해야할 사안이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한국은행에 손을 벌리게 됐을 뿐이다. 문제는 공적자금과 달리 한은 발권력에는 '국민 혈세'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부실을 만들고, 키우고, 방관했던 사람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전부 아니면 아무 것도 없는'(all or nothing) 게임을 꿈꾸게 된다. 어쩌면 아무 탈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바로 이 대목에서 움츠기 시작한다. 이게 이제부터 두눈 부릅뜨고 지켜봐야할 관전 포인트다.

 

한은이 찍어낸 돈도 결국은 국민이 부담하는 돈이다. 이 돈을 부실 메꾸는데 쓰기에 앞서 누가 국부(國富)를 까먹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부실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단잠을 자게 놔둬선 안된다. 부실 덩어리를 깔아뭉개고 지나갔던 회계법인과 금융감독당국,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부실기업들이 수십조원의 분탕질을 하고 있을 때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국민들이 많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침묵하게 만든 것일까. 이제부터라도 그걸 따져봐야 한다.

 

 

이진우 매일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05.09기사입력 201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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