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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2세 황제 호해부터 시작해 항량, 의제, 항우를 거쳐 마지막으로 유방에게 정착한 숙손통.
그 과정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의리도 명분도 없이 아부를 일삼는 별 볼 일 없는 학자 출신 관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유방을 만난 숙손통은 달라졌다. 진정 자신의 능력을 알아줄 리더를 만난 순간 아부꾼에서 능력 있는 충신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야말로 팔색조 같은 진정한 처세가의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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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입에서 나오기 위해 아부도 필요 

기원전 221년, 무려 수백 년 동안 무참한 전란과 백가만방의 사상이 혼재한 춘추전국 시대는 진나라 영정에 의해 종식되었다.
영정은 자신을 ‘시황제 始皇帝’라 칭하고 진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동시에 비극은 시작되었다. 시황제의 재상 이사와 환관 조고는 시황제의 유지를 변조했다. ‘태자 부소와 장군 몽염은 자결하고 후계는 호해로 결정한다’고 발표한 것.
효자 부소는 자결했고 충성스런 장군 몽염은 반항하다 처형당했다.
무능력한 호해는 황제가 되었다. 환관 조고는 재상 이사를 모함해 죽이고 모든 권력을 독점했다.
호해는 껍데기뿐인 황제였다. 

이 무렵 산동성 등주에 유명한 학자가 있었다.
유학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인품은 소문을 타고 중원에 퍼져나갔다. 바로 숙손통이다.
숙손통의 스승은 공자의 후예인 공부였다.
하지만 당시 ‘유가 儒家’는 큰 힘을 얻지 못했다. 공자 생전에 그가 펼친 인과 예는 힘을 얻었지만 법가처럼 부국강병의 실용적인 학문들이 패자를 꿈꾸는 제후들에게는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유가는 진나라 초기, 분서갱유를 겪는 등 학문의 주류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진나라 조정은 숙손통을 박사로 불러들였다.
숙손통은 호해의 정치적 자문에 응하는 수많은 학자들 중 한 명이 되었다. 

당시 진나라는 무너지고 있었다. 무능한 황제, 권력을 농단하는 조고, 백성의 고초를 가중시키는 대역사 등으로 도처에서 농민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중에서 진승, 진섭, 오광 등이 산동 지역을 중심으로 일으킨 반란의 세가 제법 커졌다.
그들은 ‘장초 長楚’라는 나라를 세우고 진섭이 왕이 되었다. 2세 황제는 대책회의를 열었다. 

“반군들이 기 땅을 지나 진나라에 당도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신들과 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들은 감히 황제의 영토를 침범하고 농민들을 혹세무민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역적입니다. 병사를 보내어 그들을 소탕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듣던 호해는 숙손통에게 질문했다. “박사의 생각은 어떤가?” 숙손통은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고 전국의 군현은 한 집안과 같습니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무기를 녹여 농기구로 쓰고 있습니다. 폐하의 법령으로 엄하게 천하를 다스리고 사방에서 사람이 모여드는데 감히 반란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저들이 하는 짓은 쥐나 개가 물건을 훔치는 정도입니다. 군수가 도적떼들을 잡아들여 그 죄를 물어도 될 일입니다.” 

호해는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각자의 의견을 밝히라 명했다.
“반란이다”라고 답을 하면 바로 잡아 가두었고 “도적떼이다”라고 하며 풀어주었다. 그리고 숙손통에게 비단 스무 필을 선물로 내렸다.
손숙통은 비단을 들고 궁에서 나왔다. 그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과 관리들이 조롱하듯 물었다. “박사는 아첨을 참 잘하십니다. 본받을 일입니다.” 숙손통은 한숨을 내쉬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첨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호랑이 입에서 겨우 빠져 나온 것입니다.
나는 곧 진나라를 떠날 것입니다. 여러분도 거취를 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숙손통은 바로 설 땅으로 달아났다. 

▶5명의 군주들 끝에 유방을 선택하다 

각처에서 군웅들이 일어섰다. 그 중 초나라 항량과 그의 조카 항우가 단연 으뜸이었다. 숙손통이 당도한 설 땅은 이미 항량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항량을 따랐다. 항량은 연전연승했다. 진승의 반란군도 항량에게 항복했다.
항량은 점점 교만해졌다. 그러다 참모의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 군을 공격하다가 장한이 이끄는 진나라 군의 기습공격으로 정도에서 전사한다. 

숙손통은 주인을 잃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항량이 옹립했던 초나라 회왕을 모셨다.
초나라 회왕은 항량이 진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옛 춘추시대 초나라 왕조를 잇는다는 명분으로 왕위에 올린 초나라 왕족이었다. 하지만 회왕은 힘이 없었다.
이미 천하는 함양의 진나라 잔존세력과 초나라와 강동을 기반으로 한 항우, 그리고 무뢰배 출신이지만 부하 덕이 있어 일국을 이룬 행운아 유방으로 삼분되었다. 

회왕은 황제, 즉 의제가 되었지만 항우는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의제는 항우가 보낸 군사들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기 싫어 자결했다.
항우는 배에 구멍이 뚫려 물이 들어와 의제가 익사했다고 발표했지만 백성들은 믿지 않았다. 유방은 항우가 의제를 살해한 대역무도한 역적이라고 꾸짖으며 이를 봉기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때가 기원전 205년이다. 

숙손통은 또 주군을 잃었다. 이번에도 그냥 자리를 지켜 자연스럽게 항우의 부하가 되었다.
하지만 숙손통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귀족 출신으로 천하 영웅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잘난 것을 알고 있는 항우는 숙손통을 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무렵 유방이 팽성에서 항우를 이겼다. 숙손통은 ‘이번에는 회사를 옮기겠다’고 결심하고 유방에게 투항해 ‘한나라의 직원’이 되었다.
진나라 2세 황제부터 시작해 항량, 의제, 항우를 거쳐 드디어 마지막으로 유방에게 정착한 것이다. 이때까지 숙손통은 그저 세태의 변화에 몸을 맡기고 생존을 위해 의리도 명분도 없이 아부를 일삼는 별 볼 일 없는 학자 출신 관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마디로 ‘무능력한 아부꾼’이었다. 

유방의 부하가 된 숙손통은 달라졌다.
그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과 관리로서의 장래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는 외형부터 변화를 주었다. 유방은 본래 무식했다. 동네 건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 먹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이보다 훨씬 큰 귀와 넓은 마음이 있었다. 유방은 좋은 충고와 간언엔 귀를 열고,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를 천하 통일 황제로 만든 가장 큰 동력이었다. 하지만 유방은 사사건건 예법을 찾는 유학자를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숙손통은 유학자 복장을 버리고 유방이 좋아하는 초나라풍의 짧고 실용적인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유방 앞에 나섰다.
숙손통은 복장과 격식에 치우쳐 굳이 1인자의 눈에 벗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방은 숙손통의 변화에 주목했다. 그를 찾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늘어났다.
숙손통은 유방에게 학문과 사상 그리고 정치적 식견을 피력했다. 유방은 숙손통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인재 추천을 지시한 것이다. 

유방이 천하를 얻은 요인은 인재의 발굴과 적재적소에 그들을 쓴 탁월한 용인술이었다.
유방에게는 번쾌, 주발, 소하 등 친구 같은 동지들이 있었다. 또한 장량, 한신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항우를 마다하고 유방을 찾은 것은 유방의 덕과 인품도 한몫했지만 인재가 또 다른 인재를 발굴하는 순환의 연결고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숙손통을 따르던 유가의 선비들은 내심 추천을 기대했다. 하지만 숙손통은 온통 무장들만 추천했다. 제자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스승님은 어찌 저희를 제치고 힘쓰는 자들만 추천을 하십니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천하가 혼란할 때는 칼과 창을 쓰는 무장이 더 필요한 것이다. 나중에 천하가 안정되면 그때 유학을 공부한 너희들이 중용될 것이다.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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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세학 | 충성과 진심도 통하는 상사에게 하라 

‘1등급 리더는 2등급 참모만 쓰고, 2등급 리더는 1등급 참모를 부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스스로 똑똑하고 잘났다고 ‘자뻑’에 빠진 리더는 절대 자신보다 더 똑똑하고 잘난 부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도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상사나 부하 직원 모두 서로의 ‘용량’을 가늠하게 된다.
그리고 그 판단을 기준으로 편하고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하는 직원도 있는 한편 매일매일 악전고투와 같은 직장 생활을 하는 직장인도 있다. 그 차이는 상사의 능력, 성격, 호불호를 아는가이다. 물론 상사에게 아부하고 듣기 좋은 감언이설만 늘어놓자는 뜻은 아니다.
2차 방정식만 풀 줄 아는 상사에게 아무리 좋은 의미라도 3차 방정식과 미분, 적분을 이야기 해봤자 당신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방법은 있다. 모든 것을 2차 방정식에 대입할 수 있게 간략하고,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이다. 

“왜 부장님은 답답하게 일을 이렇게 시킬까?”를 고민하지 말자.
앞에서 시원하게 대답하고 당신에게는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상사의 수준에 맞춤형 결과를 내면 되는 것이다.
당신의 눈에 무능력하고, 우유부단한 상사라도 그는 나름의 ‘한 칼’이 있기에 그 자리에 오르고, 또 지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의 일 스타일이 계산기 대신 종이에 옮겨 쓰고 다시 계산을 하는 ‘올드하고 아날로그적’이라도 그의 계산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방법도 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흔히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를 비교한다.
천재형 맥아더의 밑에는 천재급 참모가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맥아더가 그런 참모의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아더에 비해 능력에서 못 미쳤던 아이젠하워 휘하에는 천재급 참모들이 우글거렸다.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고 머리를 빌려 쓰는 데 아이젠하워는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맥아더는 트루먼에게 해임 당했고 아이젠하워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당신의 능력이라면 어떤 장군의 밑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부서의 부장은 맥아더일까, 아이젠하워일까.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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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꾼에서 유가의 중심이 되다 

유방이 항우를 꺾고 천하를 통일했다.
하지만 유방은 말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반란은 끊이지 않았고 변방의 흉노까지 국경을 침범했다. 유방은 반란을 진압하고 공신들을 제거해 나갔다.
유방은 천하의 기운을 담고 백성을 다스릴 새로운 수도 천도를 계획했다. 

진나라 수도였던 함양도 후보지였지만 유방의 속내는 낙양에 있었다.
낙양은 바로 찬란한 중국 역사의 시작점인 주나라의 수도였다. 이때 숙손통이 유방을 찾아가 간언을 올렸다. 

“폐하, 낙양을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정하시면 안 됩니다. 새로운 수도는 군사지리적으로 천하의 요충지인 함곡관 지역으로 정해야 합니다. 함곡관은 몸을 감추면 능히 1만 군사로 10만 대군을 상대할 수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몸을 세우면 천하의 움직임을 살펴 진나라의 모든 지역을 장악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낙양은 천자의 나라 주나라의 수도입니다. 즉 지금 폐하께서는 한가롭게 천자의 모습을 추억하면서 주나라 황실의 융성함과 찬란함을 부러워하고 재현하려는 것입니다. 폐하는 제국을 건설하고 그 제국의 초석을 만들기 위한 막중한 책무가 있습니다.” 

유방은 자신의 속내를 알아챈 숙손통에게 탄복했다.
사실 유방은 주 무왕이나 성왕처럼 한마디로 ‘천자로서 폼 잡고’ 싶은 마음이 있어 낙양을 수도로 생각한 것이었다.
숙손통은 그 어떤 참모도 알아채지 못한 유방의 깊은 마음속 욕망을 꿰뚫어 본 것이다. 유방은 숙손통의 간언을 받아들여 낙양 천도를 포기하고 대신 장안으로 수도를 옮겼다. 

유방의 고민거리는 많고도 다양했다. 그에게는 제국의 안정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공신을 제거하고 나라의 틀을 세우며 크고 작은 반란도 진압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측근들의 행동이었다.
이들은 유방이 참여한 연회에서 술을 마시다 서로 다투며 칼을 빼어 책상이나 기둥을 찍는 등 기본적인 예의조차 몰랐다. 유방의 참모들 중 유일하게 장량만이 재상가문 출신으로 예의를 아는 인물이었고 나머지는 백정, 장례식장 나팔수, 하급관리 등 한마디로 하층계급 출신이었다.
유방은 ‘버릇 없는 공신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가르칠까?’ 고민했다. 유방은 숙손통을 불렀다. 숙손통은 속 시원하게 유방에게 방법을 제시했다. 

“이럴 때 유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유생들은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기는 어렵지만 나라가 창업된 뒤 ‘어떻게 나라의 질서와 예법을 만들고 지킬 것인가’라는 점에 그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노나라 출신 유생들을 모아 조정과 왕실의 의식을 제정하겠습니다.” 유방은 숙손통에게 권한을 맡겼다. 그리고 당부했다. “어렵고 복잡해 지킬 수 없는 것이 아닌 실용적으로 만들라.” 

숙손통은 노나라에 사람을 보내 유생 30여 명을 뽑았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주나라 때부터의 예법을 익히면서 이를 현실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숙손통은 노나라 선비들에게 수모를 당했다.
그들은 “당신은 지금까지 많은 주군을 섬기면서 그 앞에서 아첨을 일삼았던 선비였다. 지금 조금 편해졌다고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우리는 동참할 수 없다”고 숙손통의 제안을 거부했다. 숙손통은 개의치 않았다.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고루한 선비들이다”라고 그들을 평가했다. 

한 고조 7년 10월, 유방은 장락궁에서 의식을 열었다. 공신, 제후, 장군들은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일렬로 섰다.
승상 이하 모든 문관들은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도열했다. 이들은 모든 의복을 갖춰 입었으며 그 색깔과 문양은 계급과 신분 별로 엄격하게 차별을 두었다.
유방 즉, 고조는 만조백관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근엄하게 앉았다. 고조가 술잔을 하사하자 술이 모든 신하들에게 한 순배씩 돌았다. 신하들은 절을 한 뒤 고조의 술잔을 받고 한 잔 씩 예를 갖춰 올렸다. 장엄한 음악이 흐르고 분위기는 엄숙했다.
또한 고조의 옆에는 감찰관인 어사들이 대기했다가 예법을 어기거나 버릇없는 짓을 하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해 밖으로 내보냈다.
모든 신하들은 고조에게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고조는 대단히 만족했다. 

“이제야 황제의 고귀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숙손통은 참으로 힘든 일을 잘 해냈다”라고 치하하며 그를 태상으로 임명하고 황금 500근을 내렸다. 숙손통은 고조에게 청을 올렸다. 

“폐하, 예법을 간략하게 해 황실에 적용시킨 유생들에게 벼슬을 내려주십시오.” 고조는 이를 승낙하고 유생 모두에게 낭관 벼슬을 하사했다.
숙손통은 유생들을 모아 고조에게 받은 황금을 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는 유생과 제자들에게 “때를 기다리면 벼슬을 주겠다”던 오래 전 약속을 지킨 것이다. 유생들은 숙손통의 넓고 깊은 마음에 감사하고 더욱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숙손통은 일약 유방의 측근이자 수십 명 낭관의 좌장이 되면서 한나라 조정의 한 축이 되었다. 

훗날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숙손통은 학자로서 곧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단지 형세와 상황에 맞춰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그것이 아첨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임을 얻은 후 자신의 뜻으로 일을 진행하는데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숙손통은 의례를 제정하고 또한 세태의 변화에 맞추어 예법을 제정해 마침내 한나라 유학의 중심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곧은 길도 가까이서 보면 본래 꾸불꾸불한 길인 경우가 많다. 즉 너무 곧으면 부러지고, 유연하면 휘어질망정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숙손통이 보여준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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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황제의 측근으로 활약한 바른 처세 

고조는 병상에 누웠다. 이때 고조의 후계다툼이 벌어졌다. 고조에게는 조강지처 여황후가 있었다.
태자는 여황후의 아들 영이었다. 하지만 고조의 총애를 독차지한 사람은 후궁 척부인이었다.
척부인에게도 아들 조왕 여의가 있었다. 척부인은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삼고자 온갖 모략을 꾸몄다.
박기종 커리어코칭칼럼니스트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6.11.17기사입력 201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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